가끔 나는 중학생때까지 살았던 옛날 집에 대한 꿈을 꾼다. 그 집은 단층의 단독주택이었고, 온갖나무들로 둘러싸여있었다. 그래서 밖에서는 집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당은 없었다. 집의 앞공간에는 붉은벽돌로 만든 구부러진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다. 고급 초콜렛 박스에 서로 다른 맛의 초콜렛이 각자의 자리에 하나씩 들어 있는 것처럼 앵두나무, 벚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등 서로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한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우리가족과 친척에서 아이가 한명씩 태어날 때마다 아버지가 그것을 기념해서 한그루씩 심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꾸는 꿈은 이렇다. 그 집에 내가 지금 실제로 키우고 있는 각종 장미와 붓꽃들을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땅에 채워 심는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는지 다시 그 집에 내려가서 확인을 한다. 그런데 장미들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고 겨울을 겪으면서 사라지고, 살아있는 것들은 그 전보다도 더 작아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집은 담장이 없고, 개나리는 황매화 처럼 얇은 가지가 빼곡하게 자라는 작은 나무들로 둘러쳐져 있어 사람들이 들어와 장미들은 캐가기도 하고, 자동차들이 부정주차를 하면서 짓밟기도 했다. 대충 그런 내용이다. 어쩌면 슬프고 허탈한 내용이다.
하지만 어느 장미들이 죽었고, 어떤 식물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나는 비관적이지 않다. 그냥 그렇구나. 아주 전부 살아남을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으니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다. 라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장미들이 죽거나 뽑힌 자리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한다. 다시 흙이 드러나고 생긴 빈 공간을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굉장히 긍정적이고 신나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되었으니 새로 심자라고 무미건조하게 생각하는 내가 꿈에 나온다.
꿈 속에서 나는 실망하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다. 그 집은 이제 더이상은 없다. 그 집은 허물어지고 그 지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고 해도 집을 찾기는 커녕 터의 위치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년에 한번 정도 그 집에 대한 꿈을 꾼다. 그곳에 내가 지금이라면 심을 수 있는 것들을 심고 그것이 잘 자랐는지 다음해에 확인을 한다. 집이 사라진지 수십년이 지났고 주소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장미를 살리는 데 실패를 하면서도 꿈에 그 집을 찾아간다. 실망이나 희망 같은 큰 감정이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