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쑤퉁, '쌀'

― 쌀은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이는가

by 백조히프 김재민

⏹ 작품을 읽기 전에


'쌀'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굶주림과 생존의 압력 속에서 인간이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를 숨가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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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림에서 시작된 주인공의 삶


우룽의 인생은 기근에서 출발한다. 대홍수로 생계터전를 잃은 그는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수 없게 되고, 굶주림을 피해 도시로 향한다. 선택이라기보다는 떠밀림에 가깝다. 그는 화물열차에 몸을 실어 도시로 들어온다.


사흘을 굶은 채 도착한 우룽은 인간이라기보다 노동도구같은 존재로 취급된다. 그는 와장가의 펑씨 쌀가게에 몸을 의탁한 채 먹고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몸으로 배운다. 굶주림 앞에서 쌀은 생존 그 자체이며, 쌀을 쥐고 있는 자가 권력자임을 인식한다.


⏹ 쌀가게라는 생활공간


쌀가게는 단순한 일터가 아닌, 힘의 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펑씨의 두 딸을 둘러싼 사건들은 우룽에게 인간관계가 어떻게 거래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큰딸 쯔윈은 뤼대감의 정부가 되고, 임신한 뒤에는 우룽과 강제로 혼인한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빼앗긴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결혼도, 출산도 보호와 돌봄의 약속이 되지 못한다. 펑씨가 죽은 뒤 우룽이 치윈을 취하는 장면 역시 애정의 결실이 아니라 소유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 악의 전성기로 접어든 우룽


시간이 흐르며 우룽은 쌀가게를 완전히 장악한다. 그는 악랄한 수단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을 제거한다. 이 시점에서 우룽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버티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쌀을 통해 사람을 지배하는 인물이 된다.


둘재 딸 치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역시 이 세계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큰 아들 미셩이 여동생 샤오완을 쌀더미에 파묻어 죽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건은 아니다. 앞선 삶의 방식이 아이에게까지 이어진 결과다.


⏹ 끝없이 소모되는 여성들


이 소설에서 여성들은 한결같이 소모된다. 쯔윈, 치윈, 두 며느리 모두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성(性)은 거래의 일부가 되고, 출산은 관계를 묶어 두는 구실로 사용된다. 죽음조차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채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작가는 이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나열한다. 그 차분한 서술 방식이 오히려 더 불편함을 남긴다.


⏹ 중일전쟁과 허망한 귀향


일본군의 등장과 부역자 빠오위의 출현은 개인의 비극이 시대의 폭력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빠오위에게 잔혹하게 고문 당하고 두 눈이 먼 우룽은 산송장이 된 몸으로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평생 모은 돈으로 쌀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 한 칸을 빌려 금의환향을 꿈꾼다. 그러나 그 귀향은 종말로 가는 길이었다. 기차 안에서 우룽이 죽자, 차이셩은 아버지의 금니를 빼내며 기뻐한다. 이 장면은 우룽의 인생이 남긴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맺음말-백조히프(김재민)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잔혹 무비를 보는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쑤퉁은 암만 먹고살기 힘든 아싸리판 난세라 하더라도, 부모자식과 친족 사이에 남아 있을 법한 최소한의 사람다움마저 거침없이 밀어낸다. 주요 인물들은 끝까지 야수성의 극단으로 내몰린다.


어째서 쑤퉁은 작심하고 인간 말종들의 지옥도 전개를 끝까지 밀어부치려 했을까. 참 불편했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받는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작가정신에는 일말의 경이로운 구석도 있다.


'쌀'은 공감하기 어렵지만, 쉽게 외면할 수도 없는 소설이다. 바로 그 양가적인 인상이 이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 같다.


◆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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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히프(김재민), 독일 경영학 박사, 전 경성대학교 교수


‘인문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는 글’을 쓰며,

경제 경영·문학·역사·철학·예술교양을 넘나드는 사유의 지평을 탐구합니다.

현재 브런치에서 《국내외 명작 단상 시리즈》를 연재 중이며,

크몽에서는 『러시아 문학』, 『독일 문학』, 『프랑스 문학』,『영미 문학』, 『한국 문학』 등

e-Book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네요.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통해 시대를 읽고, 시대를 통해 인간을 해석한다는 신념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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