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사람에게 자동차란? "Rhapsody in Auto"
미국의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있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도시에서 이용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다. 같은 장소여도 차로 가면 30분인데,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래는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은가?) 이런 환경이다 보니, 미국에서 자동차는 진정한 의미의 생필품이다. 없으면 불편한 게 아니라 생활자체가 불가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자동차는 종종 신발에 비교되기도 한다.
3억이 넘는 인구수에 집집마다 차를 한대 이상 모두 보유해야 하니 매해 팔리는 자동차의 수도 상당하다. 신차 판매기준 1년에 1,600만 대 수준(한국의 약 10배)이라고 하니, 미국이 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듯하다. 정확하진 않지만(개인 간 거래가 많아서) 중고차 거래 대수도 신차 판매 수와 비슷하다고 하니, 미국사람들은 1년에 거의 3천만 대 이상의 차를 구매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운전하다 보면 전 세계 거의 모든 메이커들을 볼 수 있다.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브랜드는 당연하고, 일본, 한국, 각종 유럽 브랜드들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처음 와서는 도대체 무슨 차를 사야 하는지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기왕 미국에 왔으니, 한국에서 못 보던 브랜드를 타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고르려니 선택지가 너무 많아 어렵다. 한국과 차량 판매 시스템도 다르고 딜러쉽을 찾아가서 네고하고 이런 과정도 골치 아프다.
*참고로 한국처럼 딜러샵에 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트림과 옵션을 주문하면 차를 전달받는 구조가 아니라, 제조사가 각 딜러사에 이미 제조된 차의 정보를 넘기고, 딜러가 고객이 원하는 조건과 최대한 비슷한 재고를 찾아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테슬라 같은 일부 브랜드에서는 최근 온라인 쇼핑처럼 고객이 직접 주문하는 시스템도 출시하고 있다.
자동차는 사실 취향의 영역이기도 해서, 사람마다 원하는 브랜드나 모델이 다를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겉멋이 들어서 작은 사이즈에 핸들링이 좋은 유럽차만 신봉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이 좁고, 커브가 많은 한국의 도로 성격에는 사실 유럽차들의 그런 점들이 잘 맞는 게 사실이다. 미국에 온 후 이러한 나의 취향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내가 사는 일리노이 기준으로, 이 동네는 커브길이란 게 거의 없다. 모든 도로는 직사각형으로 반듯하며, 도시를 벗어나 타 지역으로 갈 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와 마주하게 된다. 뉴욕이나, 덴버 등 일부 개성이 강한 도시를 제외하곤 아마 대부분의 미국 동네는 비슷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날카로운 핸들링은 차량을 구매하는 데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브랜드가 좋다, 어떤 모델이 좋다고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미국에 살러 오는 한국인들을 위해 소심한 조언은 한마디 하고자 한다. 돈이 아주 많은 경우가 아닌, 그냥 평범한 상황에서 말이다. 미국에서 차 선택할 때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할 점은 바로 '내구성'(Reliability)이다. 쉽게 말하면 웬만해선 고장이 나지 않는 차가 좋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또한 Re-sell value로도 연결되는데, 차를 되팔 때 중고차 가격 방어가 더 잘된다는 점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시동을 거는데 차가 시동이 안 걸린다. 각종 경고등이 뜨는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눈물을 머금고 비싼 우버 택시를 불러서 간다. 그리고 카센터에 차량 수리를 맡기려면 회사에 휴가를 내야 한다. 시급제로 일하는 사람에게 휴가는 하루 수입이 없어짐을 뜻하며, 직장인들도 아까운 연차 하루가 날아간다. 차량 수리비는 또 어떠한가, 간단한 점검과 수리하는 데에도 기본 수백, 수천 불이 나간다. 그러다 보니 미국 도로에는 범퍼가 깨친 채로, 헤드라이트가 없는 채로, 깨진 창문을 대충 비닐로 붙이고 다니는 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위에 말한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수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사소한 문콕, 흠집들은 한국에서라면 바로 어디 가서 touch-up를 했겠지만, 미국에서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다닌다.
미국에서 돈 많은 사람들은 '랜드 로버'를 많이 타고 다닌다. 고장이 잘 나기로 악명이 높은 브랜드이지만, 의외로 판매량이 높다. 누군가 그 이유를 분석한 걸 들어봤는데, 어차피 그 차를 타는 사람들은 고장 나는 거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고장 나면 차고에 있는 다른 차를 며칠 타도 되니 말이다. 이러한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면, 미국에서 차 살 때 꼭 '내구성' 좋은 차를 사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일본차 신봉자는 아니지만, 수십 년째 매년 발표되는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Reliability 순위 탑 20에는 대부분 일본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도요타, 렉서스, 혼다, 스바루 등) 다행히도 한국의 자랑스러운 현대와 기아도 순위에 있으며, 포드를 제외한 악명 높은(?) 미국 브랜드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즉 Ram, Jeep, GMC, 크라이슬러 등 미국차들은 잔고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라이프 스타일이라, 미국에서 차는 집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중요도는 사뭇 다르다. 한국처럼 주위 시선에 신경 쓰이거나, 내가 타는 차가 '내 위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 되는 그런 사회분위기라면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그냥 튼튼하게 고장안나고, 나와 내 가족을 잘 운반해 주면 그만인 존재인 것이다. 하차감(?) 이란 단어는 글쎄,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에게는 옛날옛적 얘기가 돼 가고 있다.
*일본차들이 고장이 잘 안나는 이유는 일부 전문가 의견으로는, 큰 배기량을 최대치의 힘을 쓰지 않고 일부러 출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고장이 잘 안나는 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힘숨찐' 같은 것이다. 작은 엔진을 쥐어짜서 터보를 추가해서 최대의 출력을 내고자 하는 최근 트렌드와는 정반대 입장인 것이다. 또는 일부 미국차처럼 조립 품질(졸면서 조립하나;;)이 떨어져서 고장이 잦거나,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