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5시리즈 G60
2023년 5월, BMW의 비즈니스 세단 '5시리즈'의 풀체인지 모델이 정식으로 공개되었다. 코드네임은 G60, 라이벌 구도에 있는 차세대 E클래스 W214가 공개된 직후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E클래스와 5시리즈는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매스컴에서는 5시리즈와 E클래스의 디자인을 앞서 비교하고 있다. 두 차량은 '디지털 친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보인다. 21세기 모빌리티 산업은 UI 디자인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혁신이 강조된다. 하지만 성격의 차이는 여전하다. 자동차의 성격이 하드웨어 세팅에만 의존하던 시대부터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각기 다른 브랜드 정체성을 추구해 왔다.
디자인으로 접근하는 성격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졌을지도 모른다. 자동차 기업의 'Digital Friendly'란 얼마나 직관적이고 간결한 디자인을 구현했는지 평가한다. 익스테리어보다는 하드웨어와 유저의 커넥션을 담당하는 '인터페이스' 분야에서 더욱 강조되는 역량이다. 단지 디지털 친화라는 접근 자체가 하이-테크 감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산업 디자인은 '미니멀'을 추구할수록 공정기술이 복잡해지고 단가가 상승한다. 단순히 단조롭고 투박한 디자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면의 굴곡이나 단차, 도장면 등 디자이너가 의도한 셰이프를 얼마나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양산화했는지가 중요하다. 오랜 BMW의 역사를 함께 해온 8세대 5시리즈의 디자인을 분석해 본다.
최근 BMW의 스타일링은 구 'E바디' 시절의 디자인 언어를 떠올리게 한다. 'E60'은 21세기 자동차 산업에 진입한 뒤 처음으로 공개된 5시리즈이기도 하다. 과거로 갈수록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과 같았다. 특히 수입차 내지는 프리미엄 세단은 소유자의 재력과 지위를 상징했다. 아무리 스포츠 성향을 강조하는 BMW라도 준대형 세단은 보수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고의 프레임을 타파한 인물이 '크리스 뱅글'이었다. 자신을 '파괴자'라 칭하던 뱅글은 플래그십 세단 7시리즈를 굴곡이 많은 디자인으로 변화시켰고, 뒤이어 5시리즈에도 스포티한 감각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이런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 성향을 '해체 주의'라 표현한다. 보수적인 직선은 대부분 사라졌고, 유선형의 바디라인 속에 키드니 그릴과 엔젤아이만이 BMW의 헤리티지를 지켜내고 있다. 특히 노즈의 볼륨을 강조하고, 우뚝 솟아 있는 트렁크 리드는 기존 프리미엄 세단의 단정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5시리즈를 상징하던 직선형의 캐릭터라인, 호프마이스터 킨크는 그대로 잔존한다. 시간이 지나고서 바라보는 BMW의 해체주의는 그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디자인의 '권위'를 추구하던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접근이었을 것이다.
5시리즈는 오랜 헤리티지를 내세우면서도 각 세대별로 유사점을 남겨왔다. 이는 곧 수 십 년 역사의 연결고리가 된다. 인간의 신장을 닮아 '키드니'라는 별명이 붙여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분할형 헤드램프에서 유래한 '엔젤아이'는 BMW의 패밀리룩을 대표한다. 이번 G60 5시리즈도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쿼드램프 스타일 DRL이 적용되었다. 물론 차이점도 분명하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싱글프레임 타입으로 크기가 상당히 확대되었다. 반대로 엔젤아이를 계승하는 직선 형태의 DRL은 형상 짧고 굵게 간결화되었다. 상기 차량은 고성능 감성을 지향하는 M 스포츠 익스테리어 패키지가 적용되어 있다.
확대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레이더나 카메라 장비를 내장하기 위한 형태였다. 심미적으로는 고성능 차의 인상을 남긴다. 이번 5시리즈는 키드니 그릴의 윤곽을 따라 보닛 형상에 깊은 굴곡을 새겼다. 그만큼 전면 디자인에서 키드니 그릴의 비중은 높아진다. 게다가 그릴의 윤곽선을 직선으로 보정하면서 면과 면 사이의 구분은 더욱 확실해졌다. 미래 전기차 시대에는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디자인에서 배제하는 기업들이 있다. BMW는 반대로 내연기관 자동차와 차세대 전기차의 연결고리 중 하나로 '그릴' 형상을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오랜 역사를 지닌 레거시 브랜드들의 특권과도 같은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 키드니 그릴에는 '아이코닉 글로우'라는 LED라인이 내장되어 있다. 디지털 기기로 변화하는 미래 이동수단에도 BMW의 키드니 그릴은 디자인 정체성을 답습하기 위한 좋은 키포인트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이전 세대에 비해 헤드램프의 비중은 많이 작아졌다. 직선형 DRL로 수평성을 강조하던 이전 모습과 다르게, 수직형 DRL과 사선형의 윤곽선을 띈다. 이러한 디자인은 차폭감이나 안정성이 다소 약화되더라도 날렵함과 역동적인 인상을 부여하기 유리하다. 그렇듯 전면 디자인에서 차지하는 헤드램프의 비중이 작아진 만큼, MSP 범퍼의 블랙 하이그로시 면적과 에어 인테이크 형상은 더욱 과장될 수 있었다.
E60 5시리즈와 G60의 디자인이 유사하다고 전술했다.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디자인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BMW의 전형적인 디자인 레이아웃에 더불어, 색다른 감성을 자극하는 스포티한 헤드램프와 그릴 디자인은 '해체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면서도 한층 미래적인 인상을 받는다. 직선 프레임을 갖춘 라디에이터 그릴은 모서리 마감이 훨씬 정교하고, 헤드램프의 깊이감이나 선명함도 훨씬 개선되었다. 특히 이번 5시리즈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이 커지고 헤드램프의 포지셔닝이 변화하며 보닛의 파팅라인과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원론적인 완성도가 훌륭한 공산품이 되었다.
예상대로 측면 디자인도 미니멀리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복잡한 굴곡이나 주름 대신 간결하고 직관적인 면을 강조했다. 도어 캐치는 도어패널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플러시 타입이다. 그러면서도 해체주의의 행동양식과 같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잇는 전통적인 캐릭터라인은 남아있다. C필러라인과 반대로 꺾이는 도어 프레임 형상도 마찬가지다. BMW는 이를 '호프마이스터 킨크'라 칭한다. 하지만 하이그로시 패널을 C필러에 별도로 부착하며 킨크 형상의 존재감은 약화되었다. 이는 쿠페라이크를 추구하는 차세대 5시리즈의 디자인 감각에 비롯한다고 본다.
정확히 측면에서 바라보면 너무 단조로운 디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틀어보면 도어패널과 리어 범퍼 하단부가 음각으로 꺾여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차체 볼륨이 더욱 살아나기도 하고 꾸준히 언급하는 '스포티'한 감각이 강조된다. 상대적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의 위치가 낮아지고, 테일램프의 포지션이 높아지며 정차 시에도 차가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듯한 공격적인 스탠스가 연출된다. 반대로 이전 세대의 '롱노즈 숏데크' 비율 감각은 다소 약화되었다. 특히 전장이 10cm 가량 급격하게 늘어났는데도 디자인으론 크게 체감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캐릭터 라인과 벨트라인이 높은 경사를 지녔고, 헤드램프도 높이가 강조되다 보니 반사적으로 보닛의 길이가 짧아 보이는 것이다.
뒷모습은 쿠페라이크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우선 트렁크 리드가 상당히 짧아졌다. C필러가 이전 세대에 비해 길고 완만한 느낌이며, 앞서 언급했던 호프마이스터 킨크 형상의 변화가 C필러 면적을 좁아 보이게 했다. 테일램프의 포지션이 높고 트렁크 리드의 높이도 높은 편이라 그나마 트렁크 데크의 형상은 명확하다. 만약 트렁크의 높이가 더 낮았다면 사실상 패스트백에 가까운 실루엣이 그려졌을 것이다. 트렁크 데크의 포지션이 높다는 건 앞서 '저돌적인 스탠스'에 기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리어 쿼터에서 바라보는 벨트라인의 각도는 더욱 경사져 보인다.
또한 트렁크 리드의 전폭을 좁게 디자인했다. 덕분에 리어펜더의 볼륨감이 상당하다. 꾸준히 상승하는 벨트라인 대비 캐릭터 라인은 각도가 완만하다. 그만큼 휠 하우스를 강조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고, 단조롭던 바디 패널에 입체적인 반사광을 형성해 준다.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테일램프와 리어범퍼의 파팅 라인을 통합했다. 테일램프는 수평 형태의 직선을 강조한 형태다. 무난한 모습이지만 LED 라인의 두께가 상당히 얇아지면서 정교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나마 복잡한 면처리로 입체감을 강조하는 범퍼의 형상이 '해체주의'를 마무리 짓는 듯하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점은 측면과 후면을 구분하는 모서리 라인이 굉장히 날카로운 편이다. 시선에 따라 강렬한 대비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간단하게 살펴본다. 여타 최신 BMW 모델들처럼 D컷형태로 꺾여있는 스티어링 휠과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적용된다. BMW는 이 대형 디스플레이에 수많은 기능들을 통합시키고, 물리 버튼을 최소화했다. 자연스레 차종별 인테리어 디자인의 차별화는 둔화된다. 그나마 대시 패널을 두껍게 장식하는 'LED 인터렉션 바'를 계단식으로 구성하며 차이점을 남긴다. 센터스택에는 당연 컵홀더와 수납공간이 위치하고, 계단식으로 기어노브와 I드라이브 다이얼이 배치된다. 시각적으로 볼 때 이전 세대에 비해 확실한 발전이 있다. 바로 '에어벤트'가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조장치를 위한 에어벤트는 항상 실내 디자인의 완성도를 저하시켜 왔다. 하지만 BMW는 크래시 패드 사이에 에어벤트를 스며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감췄다. 앞으로는 실내 디자인의 발전은 레이아웃의 변화보다 UI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다. 직관성을 중시 여기던 BMW가 물리 버튼을 포기하고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급 차종을 중심으로 양산화하는 인터렉션 바는 확실히 탑승객과 자동차의 커넥션을 키워주는 역할을 맡았다. 디지털 중심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OTA 등 업데이트로 새로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 옵션 구독제는 반갑지 않다.
BMW의 브랜드 철학은 '운전의 즐거움'이다. 이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알고 있다. 반대로 BMW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쫓아야 하는 기업이다. 프리미엄 세단의 수요를 공략하는데 너무 진취적인 디자인이나 불편한 승차감은 상품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 보니 보수적인 제품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기도 하다. 특히 E세그먼트 이상의 대형 세단에 가까워질수록 보수적인 성격은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크리스 뱅글이 주도했던 과거 E바디 7시리즈의 파격적인 디자인은 수많은 충성 고객들의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최근의 BMW가 보여주는 '해체주의' 디자인도 플래그십 모델을 중심으로 공개되고 있다. 분할형 헤드램프를 적용한 G70 7시리즈, 플래그십 전기 SUV IX, 이후 XM 등 출시 때마다 디자인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뒤따른다. 그에 비하면 G바디 5시리즈의 변화는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최신 BMW의 디자인 동향이 결국 브랜드의 본성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다. 분명 디자인에 대한 언론사나 소비자들의 평가가 꾸준히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차세대 5시리즈의 디자인이 이전에 비해 날렵하고 스포티한 성격을 지향한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해 보인다.
사진: BMWGROUP
글: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