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쫄아라
흑백요리사 마지막 미션은 자신을 위한 요리였다.
평생 내 모든 능력과 정성을 타인을 위해 쏟아왔지만
그걸 나 자신에게 준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정성을 쏟을 수 있지?
평생 남을 위한 요리를 해온 사람들이 그 미션 앞에서 멈칫했다.
안성재가 최강록에게 물었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냐고.
최강록은 조림으로 유명한 셰프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우승한 이후
조림핑,조림인간, 연쇄조림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기대가 그를 규정했다.
그래서 조림을 잘 못하면서도
잘하는 척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타인이 심어준 자아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위한 요리에서만큼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척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그 기대를 채우며 사느라 정작 살면서
자기를 위해 90초도 써본 적이 없었다며,
그 말이 그렇게 울렸던 건
어느 요리사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평생 타인의 필요에 반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읽어내는 법은 능숙하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타인을 배려하고 품는 법은 부지런히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 자신은 늘 삶의 목록 맨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그 마지막 자리는 여유가 생긴다고 절로 찾아오는 곳이 아니다.
세상의 강한 양념에 가려져 있던 내 안의 작은 기척,
“나야, 들기름.”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나를 위한 시간은 영원히 당겨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으로 향한다.
처음엔 그냥 좀 예민해진다.
별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별것 아닌 일에 무너진다.
그다음엔 무감각해진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잘 모르겠는 상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터지거나, 아예 꺼져버리거나.
강한 척, 괜찮은 척, 혼자 해결하는 척.
그 척이 쌓이면 나중엔 진짜 감정이 뭔지도 모르게 된다.
자신에게 배려를 돌려주는 법을 잊는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입맛을 맞추느라
정작 내 마음의 냄비가 까맣게
타 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를 너무 오래 방치해왔다.
바닥이 눌어붙어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불을 줄이고 말해주자.
'이제 그만 쫄아라.'
세상이 원하는 농도가 되기 위해
너 자신을 바짝 태워 없앨 필요는 없다고.
혼자 짊어지며 살아온 게 맞다.
자기 자신이 마지막이 되는 삶을 살아온 것도 맞다.
근데 그 자리에 계속 있기로 한 선택은 결국 본인이 했다.
원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떠나지 않은 것도 나였다.
타인이 심어준 자아를 계속 입고 있기로 한 것도 나였다.
그 선택을 한 나를 이제는
내가 제일 먼저 알아줘야 한다.
타인한테 쏟던 그 정성과 능력을,
한 번쯤 나 자신에게 돌려봐도 된다.
수고했다, 조림인간. 오늘만큼은 좀 조림에서 쉬어라.
근데 이제... 나를 위한 정성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