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다, 조림인간

이제 그만 쫄아라

by BAAM

제한시간 90분


흑백요리사 마지막 미션은 자신을 위한 요리였다.

평생 내 모든 능력과 정성을 타인을 위해 쏟아왔지만

그걸 나 자신에게 준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정성을 쏟을 수 있지?

평생 남을 위한 요리를 해온 사람들이 그 미션 앞에서 멈칫했다.

안성재가 최강록에게 물었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냐고.


최강록은 조림으로 유명한 셰프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우승한 이후

조림핑,조림인간, 연쇄조림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기대가 그를 규정했다.

그래서 조림을 잘 못하면서도

잘하는 척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타인이 심어준 자아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위한 요리에서만큼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척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그 기대를 채우며 사느라 정작 살면서

자기를 위해 90초도 써본 적이 없었다며,

그 말이 그렇게 울렸던 건

어느 요리사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마지막이 되어버리는 자신


평생 타인의 필요에 반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읽어내는 법은 능숙하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타인을 배려하고 품는 법은 부지런히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 자신은 늘 삶의 목록 맨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그 마지막 자리는 여유가 생긴다고 절로 찾아오는 곳이 아니다.

세상의 강한 양념에 가려져 있던 내 안의 작은 기척,


“나야, 들기름.”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나를 위한 시간은 영원히 당겨지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


말하지 않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으로 향한다.


처음엔 그냥 좀 예민해진다.

별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별것 아닌 일에 무너진다.


그다음엔 무감각해진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잘 모르겠는 상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터지거나, 아예 꺼져버리거나.

강한 척, 괜찮은 척, 혼자 해결하는 척.


그 척이 쌓이면 나중엔 진짜 감정이 뭔지도 모르게 된다.

자신에게 배려를 돌려주는 법을 잊는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입맛을 맞추느라

정작 내 마음의 냄비가 까맣게

타 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를 너무 오래 방치해왔다.


바닥이 눌어붙어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불을 줄이고 말해주자.

'이제 그만 쫄아라.'

세상이 원하는 농도가 되기 위해

너 자신을 바짝 태워 없앨 필요는 없다고.




나라는 요리의 첫 번째 손님


혼자 짊어지며 살아온 게 맞다.

자기 자신이 마지막이 되는 삶을 살아온 것도 맞다.

근데 그 자리에 계속 있기로 한 선택은 결국 본인이 했다.


원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떠나지 않은 것도 나였다.


타인이 심어준 자아를 계속 입고 있기로 한 것도 나였다.


그 선택을 한 나를 이제는

내가 제일 먼저 알아줘야 한다.

타인한테 쏟던 그 정성과 능력을,

한 번쯤 나 자신에게 돌려봐도 된다.


수고했다, 조림인간. 오늘만큼은 좀 조림에서 쉬어라.
근데 이제... 나를 위한 정성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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