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는 시간들의 증명

by BAAM

그거 한 번 해봐


살면서 그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머리를 좀 잘 만지면, 요리를 좀 하면, 뭔가 눈에 띄면.

칭찬처럼 들리는데 뒤에 뭔가가 붙어있다.

마치 그 길은 쉬운 것처럼.

그걸로 정착할 수 있을 것처럼.

딱 맞는 자리를 찾은 것처럼.


노래 잘 한다고 가수 해봐, 라는 말은 잘 안 한다.

그 문이 얼마나 좁은지 다들 아니까.

오디션이 있고, 연습생이 있고,

그 앞에 수만 명이 줄 서 있다는 걸 아니까.

근데 다른 건 조금만 싹이 보여도 그 말이 나온다.

마치 그 길은 문이 없는 것처럼.


칭찬이 아니었다. 사실은. 빨리 하나를 정하라는 말이었다.

너는 왜 아직도 떠돌고 있냐는 말이었다.

나는 하나를 정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정해도 오래 못 갔다.

관심이 생기면 들어갔다가, 어느 지점에서 나왔다.

생계도 그랬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보다

그냥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게 된 것들이 더 많았다.



꾸준함이라는 재능


10년, 20년 같은 걸 해온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지금도 그렇다.

같은 일을 10년 한 사람한테는 그 시간 자체가 증거가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숫자가 말한다. 나는 그 숫자가 없다.

그래서 더 오래 설명해야 하고, 더 오래 증명해야 하고,

그게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래 들여다보다가 알게 됐다.

저게 의지가 아니라는 걸.

하기 싫어도 버티는 사람이 있고,

버티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전자가 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후자는 버틴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하고 있다.

꾸준함은 미덕이기 전에 기질이다.

그리고 기질은 재능이다.

타고난 손재주나 음감처럼,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것도 타고나는 것이다.


10년을 버텨온 사람한테 어떻게 그렇게 했냐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한다.

그냥 했다고. 딱히 대단한 게 아니라고.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부럽다.



재미없으면 못 했다


나는 애매한 재능이 여러 개 있었지만 갈고 닦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 재미가 없어지면 손이 안 갔다.

억지로 앉아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몸이 거부했다.

피아노랑 바이올린을 꽤 오래 했다.

남들처럼 시작했고, 남들보다 조금 빨리 그만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계속 했더라면.

지금은 감각이 다 죽어서 취미로라도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손이 기억을 잃었다. 그게 아깝다.

오래 한 만큼 어딘가 남아있을 것 같은데, 꺼낼 수가 없다.

의지의 문제인 줄 알았다. 오래. 그냥 내가 나약한 거라고.

더 독하게 마음먹으면 됐을 거라고. 근데 어느 순간 알았다.

의지가 아니었다. 재미없는 걸 계속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없는 기질이었다.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가끔 생각한다. 어렸을 때 누군가 잡아줬더라면.

강요가 아니라, 큰 그림을 보고 이걸 계속 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해줬더라면

네가 지금 포기하려는 거 알지만 조금만 더 해봐, 라고 말해주는 사람.

아니면 어딘가에 들어가서 트레이닝을 받았더라면.

시스템 안에서 억지로라도 버티는 법을 배웠더라면.

선택지가 없을 때 사람은 버티게 된다.

그 환경이 나한테 있었더라면 달랐을까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없었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나은 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애매하게 있던 것들이 제대로 갈고 닦아졌더라면 하는 생각.

가끔 그게 올라온다.



말뚝 방목과 방목


남들이 우물을 팔 때 나는 풀을 뜯어먹으면서 지냈다.

이 구역 저 구역. 머물 만큼 머물다가 떠났다.

한 자리를 깊이 파지 않았다.

깊이 팠더라면 뭔가 나왔을 것 같은데,

어느 지점에서 손을 놨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랬다.

억지로 계속하는 법을 몰랐고,

그게 문제라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전까지는 그냥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끝나면 저게 있고, 저게 끝나면 또 다른 게 있을 거라고.


한 자리에 묶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묶인 게 아니었다.


줄이 길었던 거다.

이 구역 저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풀만 뜯어먹고,

그 자리가 헐거워지면 다음으로 넘어갔다.

뿌리를 건드리지 않았다.

표면만 훑고 지나갔다.

그러니 흔적이 없었다.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우물을 판 사람들은 다르다.

한 자리에서 계속 팠다.

처음엔 흙이고, 그다음엔 돌이고,

손이 까져도 팠다. 재미없어도 팠다.

다른 구역이 궁금해도 거기서 팠다.

그렇게 어느 순간 물이 나왔다.

물이 나오면 그게 증거가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깊이가 말한다.

그게 전문가가 되는 방식이고,

그게 꾸준함이라는 재능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한테는 그 기질이 없었다.




해석하기 나름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때 계속 팠더라면 지금쯤 물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가끔 올라온다. 아주 가끔이 아니라, 생각보다 자주.

근데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우물을 파는 대신 지형을 돌아다녔다.

어디에 물이 있는지, 어디가 그늘인지,

어느 구역이 막혀 있고 어느 길이 열려 있는지.

그게 당시엔 낭비처럼 느껴졌다.

하나를 못 버티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지형이 됐다.

돌아다니며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내가 서 있는 땅이 됐다.


꾸준함이 재능이라면,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재능일 수 있다.

다만 증명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물은 깊이로 증명된다.

지형은 어딘가에 닿았을 때 비로소 증명된다.

그 전까지는 설명이 안 된다.

왜 이걸 했다가 저걸 했는지, 왜 오래 못 했는지.

납득이 가는 서사가 없다.

그냥 못 버티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제는 방향이 생겼다.

어디로 가는지 안다.


그 방향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오래 걸렸다고 볼 수도 있고,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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