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조작가로 산다는 건
2022년 1월, 나는 졸업과 취업 사이 잠깐 뜨는 공백이 싫어 덜컥 일을 하기로 결심해다. 연말부터 새해까지 교육원 홈페이지와 기승전결 카페를 오가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조작가를 지원했고, 여러 차례 이력서와 자개소개서를 보낸 끝에 보조작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보조작가 생활이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은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이 맞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이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일을 하게 된 게 너무나 행복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심연에 떠돌고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쏟아낸 대본을 보니 심심한 지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대사보다는 지문에 집중된 정적인 드라마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인물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는 점을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 씬 구성, 장면 연출, 대사, 그렇게 집중했던 대본이었지만 실전에서 배우고 나니 정말 많은 게 달라보였다.
보조작가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인품이다. 나는 뾰족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무른 성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내 성격이 작가를 하기에 어쩌면 힘겨운 성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의견을 종합하며, 그럼에도 자기 주관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기 작품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과 증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드라마는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닌 만큼,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항상 어떻게 사람 좋고, 현명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보면 늘 정답은 같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고, 내 글을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상 정말 어려운 지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와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반성한다. 늦어지는 퇴근에 내 글을 쓰거나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글을 쓰며, 좋은 글을 읽으며 더 단단해지기로.
다행히 보조작가를 하는 데에 글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는 좋은 분을 만났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 개척해야 한다. 평생의 꿈은 드라마 작가이자, 좋은 선배이고 때로는 선생님이 되는, 필자의 인생을 단단하게 채워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인간관계가 어렵고, 잘하는 게 어렵지만. 그럼에도 분명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