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어쩌다 미혼 (1)

잘생긴 남자 사람 동생과 10년 연애와 나

by 반야

재작년 이맘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이자 동생 P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꽤 오래 전부터 친했지만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신 그 긴 시간 동안 통화만은 종종했는데, 2년 전에 우리는 결혼을 이야기했다.


당시 P는 물었다.

'누나, 우리가 십 년 전쯤에 둘 중에 누가 오십이 될 때까지 결혼을 안 했으면 우리가 결혼하기로 했죠? 누나였나요, 나였나요?'


답은 P였다. P는 나보다 5살 어린 남성으로, 2008년 경 탭댄스를 배우러 간 곳에서 탭댄서의 소개로 알게 된 사진가였다. 그때의 P는 키가 크고 매우 잘생긴...흠, 미남으로... 나는 그에게 졸업 사진을 포토샵으로 손보는 대신, 십 만원을 받기로 했다. 다만 그가 매우 잘생긴...(미남이므로) 나는 십 만원을 일 년 동안 만원 씩 직접 만나서 주는 대가로 10년을 달라고 요구했다. 외모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심지어 목소리와 이름까지 미남형인 P의 예의바름이 재미있어서 건넨 우스갯소리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MBTI에서 극I(내향성)을 가진 INFP로 나온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내성적이고 낯가림 심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렇지만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해하고 그런 시간을 편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나도 가끔 이런 돌발 행동을 저지르고, 또 혼자 그 대범함에 놀란다.

(놀라기만 할 뿐이다. 요즘에는 플러팅이라는 단어로 퉁칠 만한 저런 말을 버젓이 꺼내서 혼자 놀라긴 해도 별로 신경쓰진 않는다. 사실 당시에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낮은 텐션으로 조곤조곤 꺼낸 말이었다.)


아무튼 잘생...(이 표현에 늘 말줄임표가 붙는 걸 너무 신경쓰지 말자)기고 몸매도 썩 많이 괜찮은 남자 동생 친구는 그렇게 나랑 기이한 친구 관계가 됐다. 우리는 우울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명상과 운동과 조용하고 단순한 생활들로 많이 나아지고 있었고, P는 한창 힘든 때였다.


둘 중 한 명이 짝이 없이 50살이 되어버리면 우리 둘이 그냥 결혼해버리자, 는 농담도 당시에 나왔다.

그 통화의 내용을 똑똑히 기억하는 나는 P에게 차분하게 거짓말했다.


'나.'

'진짜? 진짜 누나가 50살 되면 우리가 결혼하기로 했나요? 내가 아니라?'


그럴 리가.

너겠지. 내가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을 리가 있니. 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은데.

나는 부드럽게 강조했다.


'너 아니고, 나.'


한동안 말이 없었다. P는 잘생긴 목소리로 웃으며 투덜거렸다.


'아, 누나는 농담은 진심처럼 이야기하고, 진심은 농담처럼 이야기해서 아직도 적응이 안 돼요.'


'농담 아닌데? 진짜 진심인데? 결혼해야지, P야. 우리 결혼해서 너네 가족과 내 가족들의 중간 지점인 대전에 신혼집을 나란히 이어진 두 개의 방으로 얻어서, 결혼하되 각자 생활하기로 했잖아.'


너무 온화하게 말했나? P는 언제나처럼 또 헷갈려했다.


'누나는... 아, 진짜 모르겠어요. 저도 혼자 오래 살았더니 누구랑 같이 사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은데... 서로 옆 집에 사는 건 또 뭔가요? 결혼했으면 같이 살아야죠.'


'그래서, 할 거야?'


'뭘요?'


'결혼.'


P는 나와 가끔 만났고, 그렇게 오래 통화하며 지냈는데도 여전히 내게 적응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P의 상황은 좀 좋아졌다. 우리도 나이 먹는 중이었다. 30대 중반, 초반에 만나서 여기까지 왔으니 성격도 익은 감처럼 물러지기도 했다.


그날, 나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진심을 밝혔다.


'결혼해야지. 아쉽겠네, P. 나는 내년에 결혼할 거니까. 얼마나 아쉽겠어, 나 같은 여자를 놓친 게......'


'와, 진짜 결혼해요? 축하드립니다, 누나! 몇 년 동안 만나셨던 그분하고 하는 거죠?'


P는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제가 누나 많이 존경하는 거 알죠? 제 주변에 멘토라고 소개하고 다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남자분이라고 해도, 저한테는 누나가 더 소중해요. 누나가 선택했기 때문에 저도 축하드리는 거예요.'


'고마워.'


나는 또 다시 진담을 농담처럼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 남자가 내 첫 남자고 내년이면 이분이랑 10년 째야.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


그다음으로는 많은 축하와 진담 같은 농담과 농담 같은 진담이 오갔다. 욕 같은 덕담과 덕담 같은 욕도 오고 갔다. 나는 P에게 청첩장을 보내고 결혼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


작년 이맘 때였다.

어지간하면 오랜만에 통화할 때는 P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 룰이 바뀌었다.

작년 6월 20일. 내가 P에게 전화했다.


'나 이제 오십이야.'


내 말에 P는 어리둥절했다.


'누나, 결혼은요?'

'그래? 내가 결혼한다고 했나? 너랑 나랑 하는 거 아니었어?'


P는 단막극의 짧은 광고 시간처럼 막간을 보내곤 대꾸했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에어콘을 켜고, 내 옆에 앉은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며 평온하게 말했다.


'그 남자가 떠났어, 오늘.'


턱시도 고양이 탁구가 기지개를 켰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어콘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1층 베란다 앞 화단엔 떠난 이가 죽은 줄 알고 남겨놓은 행잉 포트에 작은 박하 잎이 싹 텄다.


오십 살. 나는 처음으로 사귄 남자와 10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내가 그에게 절대로 넘기지 않은 4마리 고양이와 나, 그리고 습기로 가득한 장마철 1층 월세집만이 남겨졌다.



* 탁구가 어렸을 때. 저 손은 내 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