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어쩌다 미혼 (2)

첫번째 남자 (1)

by 반야

앞서 첫번째 남자와의 헤어짐을 내가 '담담하게' 보냈다고 서술했다. 물론 P와 통화할 때는 담담했다.

P가 물었다.


'두 분, 왜 헤어지셨는데요? 왜? 괜찮아요?'

'어. 괜찮아.'


괜찮기는, 그럴 리가.

첫번째 남자와 이별했던 순간의 나는 초연하지 않았다. 옹졸한 자존심으로 뻥쳤다. 정확히는 미토콘드리아 만큼도 담담하지 않았다.

(이 시점쯤에 미토콘드리아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일요일 밤이었다. 활어 같은 싱싱한 표현력으로 묘사하자면, 나는 '개같이' 오열했다. 통곡하고, 내장에서 쏟아질 듯한 욕설을 삼키며 1분 거리에 사는 언니B에게 전화했다.


몇 분 후 언니가 달려왔다. 언니가 첫째 고양이와 막내 고양이를 안고 자신의 집으로 달리는 동안, 나는 셋째와 넷째 고양이를 안고 달렸다. 당시 1살 정도 되어 체중이 제법 나갔던 셋째 고양이 탁구는 (이 탁구라는 고양이의 순서는 나중에 다섯 째로 바뀐다) 내게 안긴 채로 몇 미터나 가야 했다. 막내는 가방에 담겨 등에 업혀 있었다.


고양이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고양이를 그냥 안고 뛰는 것은 굉장히 무리다. 고양이는 작은 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들은 안기는 걸 싫어한다. 안겨서 낯선 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건 더 싫어한다. 마지막으로 낯선 공간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탁구가 내게 안겨서 싫어함을 표 내는 것 만큼, 나도 그 상황이 싫었다!


비속어를 쓰고 싶을 만큼 격렬하게 싫었다. 나는 산발을 한 채 슬리퍼를 신고 빗속을 뛰다가 비와 땀에 젖어 무릎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어두컴컴한 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배에 힘이 들어가길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탁구는 벗어나겠다며 발버둥을 치고, 그런 탁구를 놓쳤다가는 찾기 힘들걸 알기에, 나는 고양이가 비를 맞지 않으며 도망가지 못하게 꽉 끌어안고 버텼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처럼 똘똘하고 귀여운 탁구는 그 귀여운 발과 발톱으로 내 턱과 가슴을 얼마나 할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울음으로 승화된 내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이별의 광란 앞에서 얼마든지 추해질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첫번째 남자를 설명하자면, 그와 나는 10년 동안 같이 살다가 잠깐 헤어졌다가 다시 또 같이 살다가 또 떨어졌다가 같이 살기를 반복했다. 내가 지내고 있는 이 동네에서는 그 남자와 4년을 살았다. 주변인들은 죄다 이 남자를 남편으로 알았고, 뭐, 법적 관계로 따지면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을 표현할 때는, 남편이라고도 말했다가 첫번째 남친이라고도 말했다가 첫번째 남자라고도 말했다가 여러 표현을 거치는데, 이 참에 정확히 말하자면 '서류상에 등재하기로 했으나 하지 않았고, 이후로 끝내 등재된 적은 없지만 잠깐 남편일 뻔했던 나의 첫번째 진지한 남자친구였던 남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구태하고 너무 길다. 나의 참신한 표현력을 사랑하던 그 사람도 실망할 만한 표현이다. 그러니 깔끔하게 첫번째 남자라고 표현하겠다. 앞으로 몇 번째 남자까지 나올 예정인지 흥미진지하게 여길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세번째 남자까지 나올 예정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첫번째 남자는 굉장히 괜찮은 남자였다.

.

.

.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남성과 청년의 마지막 시기와 중년까지 거쳐온 내가 너무 안쓰러워진다. 또한 이렇게 말하는 게 상대와 나를 위해서 서로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다. 매우 매우 지적이고, 괴이할 정도로 똑똑했고, 잘생...하...겼고, 운동도 잘했고, 인내심과 끈기와 세상에 대한 통찰과 이해력을 지닌 사람이다. 외모나 인격이나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또, 지나와 생각해 보면 이별의 절반은 내 책임이다. 비록 그 남성이 헤어질 당시 44세였고, 나는 49세라는 점에서 분명히 좋은 시절을 이 인간과 보내고 버려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런 감각은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49세라는 나이가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구애를 받기에는 적지 않게 나이든 감이 있다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의견에는 동의한다.


이때 우리가 헤어지게 된 배경에는 내가 '실직'과 '파산'을 동시에 겪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2024년 6월 말에 인간이 겪는다는 삼대의 고통인 '실직' '파산' '이별'을 겪었다.


(이번에 쓰고 있는 '이별'말고도 '실직' 시리즈와 '파산' 시리즈도 기대하셨으면 좋겠다.)


하여, 6월 말, 이별하던 그날, 첫번째 남자의 이삿짐 차에 모든 것이 실리고, 그가 함께 기르던 네 마리 고양이를 차례대로 안아준 후에 나를 꼭 끌어안고


'행복해야 해. 나는 자기가 내가 늙고 병들면 병수발하고 똥오줌 다 치워줄 사람이라는 걸 알아.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아. 하지만 우린 헤어지는 게 맞아.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해. 그러니까 어딜 가든 꼭 행복해야 해. 연락은 하지 말고.'


말하며 바이바이하고 떠난 후.

나는 그와 함께 살던 집에서 1초도 버티기 힘들었다. 하필이면 그날 비도 왜 오는지. 왜 6월의 화창해야 할 저녁에 해는 그렇게 일찍 지는지. 게다가 언니 네 집으로 달려가는 그 길은 왜 단 한 번도 가로등이 켜진 적이 없는지!


이후 내가 일주일 동안 한 일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그날 밤 나는 집 앞에 있는, 근방에서 유일무이한 편의점에 가서 친했던 편의점 사장님께 술도 한 잔 안 마시고 30분 동안 오열하며 진상짓을 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옆에서 그만 가자고 할 때도 나는 말했다. 괜찮아, 이 사장님도 여기서 장사하신 지 20년이나 됐다는데 술 한 잔도 안 마시고 새벽 1시에 와서 이렇게 꼬장부리는 진상은 처음이실 거 아냐, 그죠?

사장님은 웃으면서 그렇다고 하셨다. 이후로 그 사장님은 내가 어떤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는지 꼬박꼬박 점검하고 살피며 코멘트해주시는 자상한(?) 보호심이 생겼다.

다음으로 한 일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옆집 할머니와 새벽 2시까지 읍소한 것이다. 이후 할머니에게도 역시 나를 태워주거나, 나와 집 근처에서 헤어지는 남성들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스캔하고 나를 보호하려는 깊은(?) 애정이 생겼다.


이후에도 나는 온갖 바보 같은 짓을 벌였다.


여섯 명의 점쟁이에게 재회운을 점쳤고, 친한 무당 언니들에게 전화했고, 생전 하지도 않던 폰 게임에 빠져 돈을 몇 십 만원이나 쓰고, 고양이들에게 '너희들의 아빠는 소멸했다'라고 진지하게 털어놨고, 울며 시간만 축냈다. 정확히 의사가 '너의 안압이 더 높아져서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하다'라고 말할 때까지. 그리고 함께 스트레스를 받은 우리 고양이들 네 마리와 언니네 고양이 두 마리, 총 여섯 마리가 모두 감기에 걸려 아플 때까지.


그러다 보니 한 달이 흘렀다. 형편상 언니네 집과 우리 집, 양쪽 집의 월세를 내고 있던 나는 고양이들의 치료비로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이사할 비용도 없어진 걸 눈치 채고 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그때까지도 나는 첫 번째 남자가 왜 나를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분은 왜 떠난 건데요?


첫번째 남자와 동갑인 P도 작년에 물었다. 나는 답했다.


-몰라.

-네?

-모른다고. 어젯밤까지도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는데, 오늘 낮에 잠깐 언성을 높이다가 갑자기 혼자 울컥해서 나간 거 같아.

-누나가 뭐라고 했는데요?

-거의 아무 말도 안 했지, 나는.


나는 화가 나면 입을 다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한다.


그러니까 작년에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겪기 힘들다는 세 가지 고통을 한꺼번에 겪으면서도 누구에게나 제법 의미가 있을 듯한 '첫번째'라는 수식어의 남자와 헤어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당시에도 어렴풋이 내가 이 이별을 통해 얻은 것도 있으리라는 건 알았다.


추리자면 몇 가지나 얻었다.


동네 사람들의 과잉 보호와

땡볕에 거의 혼자 이삿짐을 나르느라 생산된 지 49년만에 생긴 기미와

15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첫 번째 남자와 사귀면서부터 등한시했던 명상의 위대함과

폰 게임에 중독되면 위험하다는 경고와

당근 마켓의 지역 모임,

마지막으로 잠깐 잃을 뻔했던 인류애와 겸손함이다.






"잠깐, 겸손함요?"


이건 오늘 P와의 통화에서 P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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