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어쩌다 미혼 (번외) (1)

번외 편 -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 일단 겸손해지기 이전 버전으로 (1

by 반야







나와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사랑받는 고양이'

/ '어쩌다 미혼'의 번외편입니다.

/ 앞의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 주변인들은 누군지 알 만한 사람들이 등장할 수도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약간의 각색이 들어갑니다.









50살, 어쩌다 미혼 -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





번외편 제목을 적고 보니, 상당히 그럴 듯하다. 괜히 뿌듯해진다. 내가 고양이와 살면서 세 남자를 잘 꼬드겨... 어쩌고 하는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 글을 읽어주실 정도로 지적이고 명철한 분들이라면 벌써 예리하게 눈치 채셨겠지만 내게는 지금까지 세 남자가 있었다. 아니, 있을 뻔했다. 습관이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뻥을 칠 뻔했다.

진지하고 깊게 만나 사귀었던 애인은 한 명 뿐이었다. 이름하여 '첫 번째 남자'.



1. 첫번째 남자, 지금까지는 유일무이한 남자


나는 첫 번째 남자첫째 고양이 '사랑받는 고양이'를 같은 해에 만났다. 첫 남자는 그해 가입한 독서모임에서, 첫 고양이는 그해 겨울 눈밭에서.


첫 번째 남자와 나를 연결해준 대상이 고양이다. 당시까지는 내게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 남자는, 내가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자,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만난 고양이에 대해 털어놨다.


- 강원도에 산골짜기 마을에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오래되어 버려진 폐차들이 있었어요. 그 중 한 차에 뒷자리에 고양이가 햇빛을 받으면서 엄청 평화롭게 자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서 살짝 쓰다듬었는데... 고양이는 사실 죽어 있었어요. 고사된 거죠. 바싹 말라서 제가 만지는 순간 갑자기 고양이의 털이 민들레 홀씨처럼 파사사 날아가고... 앉아서 자는 것 같은 자세의 고양이 뼈만 남았죠.


독서 모임에는 열 명 가량의 남녀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글썽인 건 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난 언제나 그렇듯이 그 이야기만 기억 날뿐, 눈물을 글썽인 건 기억하지 못한다.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던 건 기억난다. 그 고양이는 누구를 기다리다가 죽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날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친구가 자기 집 마당에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아서 밥을 주고 있노라 말했다. 편의점에서 비싼 밥을 사서 먹인다는 말에, 나는 그러다가 네가 고양이들에게 먹힐 수도 있어, 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길 고양이용 큰 푸대 사료를 그에게 보냈다.


당시 나는 그럭저럭 잘 벌 때였다. 하고 있는 일도 많았고, 잘 되어갔고, 사진을 잘 봐서 알겠지만 (후훗) 나름 예쁘장하게 생겨서 인기도 많....


...을 뻔했었었다.


얼마나 거짓말하기 힘든지, 우리나라 말에는 없는 과거분사 시제로 말했다. 아무튼 너무 예쁘지도 않고 너무 못났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잘 대해주면 바로 후다닥 넘어올 것 같은 평균율의' 외모로서 감히 선언하자면, 의외로 이런 인물이 인기가 많다. 여기에는 '게임 이론'이 잘 적용된다. 모두가 데이트를 청할 것 같은 미인에게는 경쟁자가 별로 몰리지 않는 데에 반해, 대충 '저 여인에게는 나밖엔 없겠군.' 하는 스타일에게는 경쟁자가 몰린다.

(이 시점쯤에 과거 페이지의 '미토콘드리아'때 여러분이 겪으셨던 각자의 컬처 쇼크와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게임이론'에 대해선 서로 묻지 말기로 하자.)


중요한 건 내가 평생 구애 시기를 겪는 남성들에겐 '대충 저 여인에게 구애하는 이는 나밖에 없겠군. 그럼?' 하는 이미지로 다가서기 쉬운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나는 명실공히 상당히, 의도가 무서울 정도로 상냥하고 친절하다. 이상형 또한 '안 때리고 소리 안 지르는 남자'였으니 얼마나 괜찮은가.


39살 무렵의 나는 그랬다. 전에 없이 밝고, 명랑하고, 조용하면서 신중하고, 그러면서도 활기 차 있었다.

난 언제나 남초 학교, 남초 직장을 다녔다. 35살 전까지는 같은 회사의 남자 직원들에게


-내가 연애를 하려면 뭘 바꿔야 할까?


라고 질문하면 모두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했다.


-성.... 별.


(성격 아니다. 성별 맞다. 내가 잘못 적은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잘못 읽은 것도 아니다.)


그랬던 내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심하게 겪으며, 마지막으로 그래도 한 번만 더 용기를 내어 살고 싶어서 선택한 게 명상이다. 명상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의 궤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과거에 발레, 서예, 그림, 피아노 연주 등을 잘했는데, 그때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했다. 발레와 가장 가까운 요가를 하며 평안을 얻었고,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쓰며 평화를 기억해 냈고, 명상을 하며 모든 소리와 고요, 그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게 됐다. 커다란 통찰을 얻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평온해졌다. 어두운 길을 걸어도 겁에 먹지 않게 됐고, 나를 구성하는 게 뭔지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때 그 시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순간, 내가 겪었던 심한 중증의 우울증에게까지 감사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버려진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양쪽에 날개를 달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내 손에 머리를 대고 잠들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 뭔지를 조금 느꼈다. 애초에 그건 아가페든 에로스든 필로아든 뭐든 구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랑에는 조건이 필요 없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깨닫는 순간, 그건 모습이 어떻게 변하고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을 무언가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전까진 막연하게 배워온 대로의 '이상형'을 그리고 '애인'을 찾으려 했던 맘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우주의 선물이란 언제나 그렇듯, 같은 시기에 또한 중요하고 아름다운 말이 나를 두드렸다.


우리들은 모두 고체화 된 빛일 뿐이다. -데이비드 봄 (물리학자)-



나는 물리학을 배웠다. 양자역학은 A를 받았다. 고체물리 유체역학 같은 현대물리학 분야에서 이해력을 갖췄다. 수리 능력은 좀 많이 떨어졌지만.... 현대물리학 분야로 넘어오면 물리학은 점점 어려운 리만 수학을 언어로 쓰면서 개념적으로도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대하듯이 변한다. 그리고 그 모든 혼란은 빛의 이중성에서 시작된다.


물리학을 배웠든 아니든, 빛의 이중성과 양자역학, 핵물리, 혹은 그 모든 지식을 모르더라도 상관없이, 인간도 그저 진동하는 빛이자 에너지 덩어리라는 걸 직관적으로 아는 이들이라면 데이비드 봄의 저 말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인간은 태양과 같다. 태양도 가스가 태워지며 연료를 내는데, 멀리서 봤을 땐 마치 구형으로 이뤄진 물성계의 물질처럼 보인다.


우리는 모두 빛이다. 에너지의 덩어리다. 어느 결 하나, 스펙트럼 하나 다르지 않은, 빛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나 우리의 눈에 그저 물성을 가진 강체로 보일 뿐이다. 과학과 감정, 뇌과학의 이해가 이쯤까지 이르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도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다.


삶은 과연 존재할까? 최근에는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은 나머지 이상해진 미국인 '일론 머스크'의 시덥지 않은 말처럼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세상을 차원으로 구별하여 제법 살아있는 존재처럼 살아가는 척하는 건 아닐까? 노자나 장자의 말처럼 이건 그냥 꿈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닐까? 죽음은 꿈에서 깨어나는 삶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며 실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만 집중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역시 우리가 실존할 수 없는 세상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지금' '이 순간'을 명확히 알아차린 적이 있을까?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가 삶에 대한 답을 강요받지 않던 시절.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지극히 작으면서도 경계선 없이 넓은 세계관을 그냥 알고 있던 그 시절. 언어로 무언가를 명명하기 이전, 무언가를 '명'하고 '상'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던 그 시절.


명상을 하면 이런 것들의 답을 찾게 된다. 어쩌면 명상을 안 하더라도, 이런 개념들과 인연이 닿게 되면, 부처가 말한 '번뇌즉보리' 煩惱卽菩提 /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를 알게 된다.


나도 한때는 변증법적 유물론자였다. 나도 한때는 불가지론자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쯤에서 불가지론자가 뭔지 궁금해하지 말자.) 그러나 누구든 답을 찾는 자는 결국 알게 된다. 답은 밖에 있지 않다. 답은 안에 있다. 우리는 몸'만'이 아니다. 통증 또한 그렇다. 우리의 몸은 자기 자신을 잘 돌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돌봄에 문제가 생길 때 통증으로 신호를 보낼 뿐이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나도 간혹 다시 착각하곤 하지만, 몸은 내가 아니다. 생각도 내가 아니다. 감정도 내가 아니다.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충만한 감사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만족감으로. 그게 나이고 바로 당신이다.


내가 첫 번째 남자를 대한 태도도 그랬다. 내가 나를 대하듯, 고양이에게 그랬듯, 나는 첫 번째 남자의 존재 자체에 감사했다. 인세의 아름다움과 추악함, 공정함과 편견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세상을 그저 사랑한다는 사실을 마음 놓고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하루에 일정 시간만 되면 발작적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 벅차는 일이 생기는데, 그걸 마음놓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들이 있다는 게 더없이 기뻤다. 내가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차서 세상 모든 걸 귀여워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키스하고 포옹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런 것들은, 잘못 보면 광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저렇게 군다. 오죽했으면 고양이들조차 한심하게 쳐다본다...-_-


뭐, 그렇다고 내가 한없이 그 남자에게 잘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랬으니 헤어졌겠지만.


우리가 같이 지내는 10년 중 8년은 경제적인 가장 역할은 내가 거의 했다. 집도 내가 구하고, 집세도 내가 내고, 고양이들도 내가 보살피고, 일도 내가 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다. 일찍이 남자다움의 역할을 배워 온 그 남자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벌어오라고, 반은 내라고, 일 좀 하라고 그렇게 말했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존심이 높고 인내력과 지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더욱 자기를 미워했을 것 같다.


나는 인간 사이의 오해와 다툼은 모두 '나를 용서하지 못하여' 생기는 것으로 여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나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어서' 생긴다는 의미다.


첫 번째 남자가 고양이를 돌보는 문제로 싸우다가 10년 만에 울컥해서 의리없이 집을 나가버린 것에는, 우리 둘이 너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관계였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 글을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고결하게 한마디 남기자면.


TO. 네가 너란 걸 알고 있을 너, 나의 첫 번째 남자에게.

다른 건 몰라도 첫째 사랑이가 그렇게 아픈 데도 떠나버려야 했을 마음을 내가 모르는 거 아니고, 병원에 보낼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진 우리 상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진 것도 알겠고.

무엇보다 그래도 괜찮다는 거.

내가 당신 욕을 좀 많이 하고 다녔지만..-_- (넘 당연하지 않아, 앙?)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당부한 것처럼 정말 행복하길 바라고, 그토록 꿈꿨던 구속 없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길 바라요. 내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었지만, 당신은 나에게도 빛이었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눈나가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충고하건대, 어차피 그럴 맘으로 떠났겠지만, 돌아올 생각은 1도 하지 말고, 응?

Good luck. 행운을 빌어요.



2. 두 번째 남자, 일단 비속어 몇 개.


역시 나의 글을 재미있게 읽으실 정도로 지적 소양과 교양이 풍부하신 분들이라면, 타임라인이 꽤 흥미롭게 느껴지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첫번째 남자와 헤어진 게 2024년 6월 말인데, 이 글을 적고 있는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 사이에 두 번째, 세 번째 남자까지 있었다는 건데...음.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전혀 아니다. 난 서른 아홉 무렵에나 마음의 문을 열고 남자를 제대로 사귄, 이 시대의... 빼어난 바보다. 그런 사람이 돌연 페르몬을 뿜뿜해서 첫 사람과 헤어진 지 일 년 만에 남자를 두세 명씩 만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가 많긴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드라마를 잘 안 본다. 드라마의 여주들처럼 예쁘거나 재주가 좋거나 그렇지도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째 남자와는 사귀지 않았다. 사실 사귀지 못했다.


일단 첫 남자와 그렇게 헤어지고 한 달만에 언니와 언니 고양이들 두 마리까지 우리 집으로 모두 이사한 이후. 토요일 저녁. 나는 더는 울고 있기에 민망했다. 청소하던 언니가 '그만 좀 울고 사람들 좀 만나봐.'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안산으로 이사와서 산 지 15년 중 10년 동안을 첫 남자와 함께 지냈다. 안산에서 다닌 일자리도 신문사였다. 모두 여자였고, 나이 차이가 꽤 됐다. 고민하던 나는 전 남친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정리하러 유명한 중고 마켓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지역 커뮤니티를 발견하곤, 룰루랄라 첫 모임에 가입하고 첫 번개를 나갔다. 나는 살면서 이제까지 나이트클럽도 딱 한 번 갔다가 1시간 만에 도망나오고, 클럽은 가 본 적도 없고, 술을 한 잔도 못하며, 3인 이상이면 노래도 안 부른다. 그만큼 숫기도 없고 내성적이며 주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극한 내향성 인간이다.


결론적으로 타인을 만나느니, 골방에서 명상 수행이나 하며 책을 읽고 책을 쓰고 고양이를 기르고...동료 기자들과 이야기 나누며 '죽어가는'(혹은 이미 죽은) 화초에 물을 주고 금붕어를 보는 게 마음 편했던, 그런 사람이다.


음악도 안 듣고, 남들 다 보는 넥플릭스 그 무언가도 웬만해선 잘 안 본다. 사람들은 나를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걸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술집에서 갑자기 서예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상하고, 클럽에서 발레를 하는 것도 괴상하고, 사람이 셋 이상인 곳에서 설장구를 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튼 그런데도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떤 모임에 가입해서 거기 나갔다. 대학교 때조차 아는 사람이 없으면 동아리도 들지 않았는데.


일단 나갔다. 10명 중 여덞 명이 여자였다. 아주 좋았다.


후에 알고 보니 내가 가입했던 지역 모임들이나 네이버, 카카오 모임 커뮤니티 들에서 불륜도 잘 생기고 뭐 그러는 것 같은데, 운이 너무 좋고 우주의 초월적인 과잉보호를 받던 나는 첫 번째 가입한 모임도 건전 그 자체였고, 두 번째 가입한 지금의 모임도 건전 예쁨 그 자체다.


첫 번째 모임의 방 식구들은 다 좋았다. 가끔 서로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있고, 또 울컥하는 기분들도 있을 수 있는 바, 다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방장도 괜찮은 사람이었고 언니 오빠들도 좋았다. 동생들도 좋았고.


두 번째 남자는 거기서 만났다.

처음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내가 십대 때 꾼 꿈과 관련이 있었다. 하얀 차를 타고 와서 하얀 옷을 입은 키가 큰 남자가 태워줄게라는 말을 했는데 그 남자가 이 남자였다. (이 이상한 직관력은 나중에, 훨씬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래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될 거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남자를 만나려고 나간 모임도 아니었다. 술도 안 마시고 노래도 안 부르고 조용하기만 한 내가 술과 만남을 목적으로 한 친목 모임에 나가는 걸 아직도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오해도 많이 받지만,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저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 말고, 원체 집순이로만 생활하는 습관도 그렇고 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 첫 모임에서는 나를 좀 많이 못난이로 취급해서 남자가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 모임에는 미인들이 좀 많았고, 나는 약간 먼지나 공기 같은 존재였다. 사실 집에서 나오지 않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인지, 그런 먼지 취급이 그리 싫지 않았다. 먼지도 햇빛에 반짝일 때 보면 별처럼 예쁘다.


그러던 중에도 종종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있곤 했는데 (역시 게임이론을 잘 이해하고 블루 시장을 잘 개척하는 개혁자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두 번째 남자도 그런 남자 중 하나였다. 그는 이 모임을 좋아했고, 이 모임에서만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꼰대'의 향기를 좋아했다. 나도 그 꼰대의 향기가 좋았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의 나는 꼰대는 아니지만, 꼰대들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나도 동안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물리적 나이에 맞게 따뜻한 마음으로 잘 익었다는 표현도 좋아한다. 마흔을 넘기고 오십에 다다를 무렵이라면 외모에 대한 칭찬보다 인성에 대한 칭찬이 더 좋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예뻐도(심지어 예쁘지도 않다!) 어차피 어느 바닥을 가도 나보다 예쁜 애들은 수두룩 빽빽하니까. 그리고 우리 이쁜이들은 잘 알겠지만, 이쁘다는 말은 하도 들어서...(생략의 긴 호흡을 주시합시다) 똑똑하고 성격 좋다는 말을 선호한다. 나이 오십에 예쁘면 뭐하겠는가.


아무튼 두 번째 남자와 나는 그런 점에서 일치했다. 그리고 주변 언니들의 독려가 있었다. 그러던 중, 10월 첫째 주, 우리 방의 방장이 오랫동안 진행하던 가게를 문 닫게 되었다. 우리는 고별 파티를 준비하면서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 설마했던 첫번째 남자가 지나갔다.


나는 죄 지은 것도 없지만, 그를 피했다. 그 남자에게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술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고, 뼈만 남은 그 남자를 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마주하기엔 너무 오래 같이 있었고, 같은 부분이 훼손됐다. 그런 관계들은 가급적 긴 세월을 거친 후에나 만나는 게 좋았다. 해골로 유적이 되어 발견될 쯤이나, 다음 간빙기와 간빙기 사이에 만나는 게 낫다.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그곳으로 오고 있는 두 번째 남자를 불러냈다. 두 번째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누나 되게 예뻐요.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런 멘트들이 자칫 플러팅(*나는 아직도 이 말의 정확한 뜻을 모르겠다)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렇지만 그때의 나도 그걸 직감적으로 플러팅(*여전히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의미의)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날 밤을 계기로 만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남자는 내가 첫 번째 남자에 대해 들려줬을 때 메마르게 웃으며 뇌까렸다.


-그 자식. 자기 복을 자기가 찬 거죠.


이후에도 잘 만났다. 그러다가 한달 쯤 지났을 때 나는 직감했다. 초기에 내가 곁을 주지 않았을 때는 당근 톡으로든 카카오톡으로든 계속 말을 걸던 그가, 카카오 메시지에 답이 드물어지기 시작하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뭔가 변하고 있었다. 나는 연애 상대의 열띤 마음이 시들해지는 모습을 십 년에 걸쳐 보아왔다. 같은 괴로움을 모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왜냐면 그 사람은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일했는데, 나는 그렇게 오래 일한 사람을 존경한다. 그것도 몹시 경쟁력이 센 분야에서, 자기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일정한 취미 생활도 없이 일하고 가족을 돌보는 그를 몹시 좋아했다. 그가 자기만의 영역을 가졌으면 했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게 될 날이 오길 바랐다. 한 편으로 당시 나는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생불이라고 불리던 나조차 욕이 나올 만큼 개 같은 회사였다. 가구를 만들어 인터넷 택배로 파는 이 회사에는, 93년 생 대표의 딸이 몇 년이나 다녔는데 삐뚤어진 애사심을 가졌으면서도 타인에게 제멋대로의 수준을 요구하는 그런 곳이었다. 경력직을 경력직으로 뽑아놓고도 그 경력을 공유하지 못하는 자들의 100% 인정을 받아야 하는, 한마디로 자기들 말로는 '미국 같은' 회사라는데, 미국인들 틈에서 자란 나로서는 그냥 웃어넘기게 되는 코메디 같은 회사였다. 다른 모든 나이 든 인간들도 이 아가씨의 말에 로보트처럼 움직이고, 자신들의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일평 일평을 가하고 일정한 시퀀스도 나누지 않은 걸 기획서라고 들이대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소리나 지르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측면에서는 아름다운 회사였다. (한마디로 니들은 거지같다는 뜻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한 사람으로서, 한때 경영진으로서 느끼는 바는 단 하나다. 사람을 중히 여기지 않는 회사는 다닐 필요가 없다. 아무리 고연봉을 주더라도, 그 회사는 당신을 부속으로 쓸 뿐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이 가구 회사가 바로 그런 회사다.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잡아야 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며, 3년 짜리 10년 짜리 다른 보직의 사람들이 20년 차를 평가해서 만장 일치를 받아야 하는, 아주 골때리는 구조의 회사다. 어디가 미국식이라는 건가? 어디가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는 걸까? 만장 일치에서 벌써 독재의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데.


그런 회사에서 따돌림과 심한 대우를 받는 것도 몹시 힘들었다. 바로 그런 때에 두 번째 남자가 있어줬다. 나는 눈치가 보여서 탕비실도 사용하지 못했는데, 계단에 숨어서 울고 있으면 그가 응원해줬다. 처음에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고민할 때 다니라고 응원해준 것도 그였기에, 그만두던 날도 몹시 축하해줬다. 그리고 미안해 했다.


나는 그를 만나면 가끔 물었다.


-나를 좋아하기는 해요?


그러면 그는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며 답했다.


-아니 어떤 남자가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보러 바쁜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요?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럼 우리 이제 그만 제대로 사귀죠?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응했다.


-그럼 12월부터.


나는 처음 가입했던 지역 모임을 나왔다. 당시 그 모임은 여러 일로 시끄러웠다. 나중에는 괜찮아졌다고 들었지만.


연애는 목적이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이 얽히다보면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라 나도 그런 저런 오해 끝에 나오게 됐다.


두 번째 남자는 연말에 몹시 바빴다. 나는 회사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터라 몹시 심심했다. 같이 사는 언니와 노래방을 가고 싶은데 언니도 바빴다. 언니의 일이 끝나길 기다리다 지친 나는 두 번째 남자에게 연락했다.


-나, 다른 지역 모임 들어가도 돼요? 너무 심심해서요.


두 번째 남자가 말했다.


-아,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아요. 다른 남자들이라면 허락하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서 사귐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되진 않았지만, 연애 경력이 별로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로 당근 모임에 들어갔다. 남녀 연애 커플이 위주가 아닌, 가족 같은 분위기의 예쁜 모임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들어가자마자 두 시간 뒤에 벙이 열려서 나가게 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쉬고 있을 때였고 심심했다.


그곳에서 정말 좋은 동생들을 만났다. 너무 예쁘고 착하고 잘 노는 친구들이었다. 나를 환영하며 예뻐해줬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 안에는 K 언니도 있었다.


K 언니와 나는 독서를 좋아하고, 집이 근처라는 이유로 자주 만났다. 언니는 수학을 공부했던 것 같다. 여러 모로 말이 통해서 좋아졌는데, 하루는 K 언니가 내게 만나는 남자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두 번째 남자와 곧 연애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남자를 어떤 이유에서 좋아하게 됐는지 그 남자의 상황을 설명했다. (좀 특수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11월 말 토요일. K 언니가 다시 불러냈다. 눈이 조금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웃으며 언니를 만났고 언니가 물었다.


-남자 친구랑 잘 되어가?


난 별다른 의식 없이 답했다.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분 집에 다시 일이 생겨서요. 당장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K언니가 답했다.


-그 친구 이름이 J 맞지?

-어? 언니 알아요?

-응.


K 언니는 드라마 퀸처럼 다소 조작된, 인위적인 태도로 털어놨다.


-내가 먼저 알았어, J. 8월쯤에. 연애 안 하고, 결혼 안 하고, 잠만 자는 사이로. 그러니까 엔조이로.


나의 첫 소감은 약간 '역시 그런 거군.' 이런 느낌이었다. 두 번째 남자는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남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연애 멍청이라고 해도 그런 걸 모를 정도는 아니다. 나하고 있을 때는 최선을 다했지만, 도통 나에게 시간을 내지 않았다.


실제로 언니와 만나기 바로 전날, 어떤 사람으로부터 우연히 두 번째 남자의 복잡 다단한 여자 관계를 듣게 됐다. 그 인간은 나를 만날 때도 다른 여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나는 두 번째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오랜만에 급하게 전화했다. 우리는 잠깐 다퉜지만, 나는 결국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니까 이 모든 상황을 오해로 끝내고 그의 집안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K 언니가 뒤에서 너 몰래 두 번째 남자를 만나고 있었노라 고백하기 직전, 전날까지도 나는 그에게 '기다릴게요.'라고 말했고, 그 남자는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나로서는 내가 가장 힘든 때에 함께 있어 준 사람을 그 사람이 가장 힘든 때 버린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 남자를 10년이나 의지하며 살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일단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가고 길게 간다.


성격도 그런데,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도 다시 터지다니.

K 언니가 여전히 연극 배우 같은 투로 말했다.


-내가 네 말 듣고 J 한테 물어봤어. 그랬더니 J 가 너랑 사귀기로 한 거 맞대. 근데 미안한데 반야야, 내가 그때 내 마음을 깨달았어. 나 J를 좋아해. 그래서 너랑 진짜 사귀면 가만히 안 둘 거라고 했어.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더더욱 가만히 있었고, 언니는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 (아니, 일부러 연기한 건 아니라고 여긴다)


-근데 난 너도 정말 좋아해. 너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너 혹시 J 하고 연락돼? 오늘 아침에 내가 너랑 만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뒤로 연락이 안 돼.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K 언니는 내게 미안해서 사실을 밝히기로 한 것도 아니고, 나를 위로하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두 번째 남자가 잠적하니까, 그 사람하고 마지막까지 연락한 나에게 찾아온 거였다. 오직 그 남자의 행방이 궁금해서.


상당히 아메리칸 스타일이었다. 이거야말로 그놈의 가구 회사가 울부짖던 미국식이 아닌가.

(근데 사실 미국의 중산층들은 의외로 이런 것들에 쿨하지 않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결국 언니의 손을 잡고 현신하는 부처답게, 생불의 자애로움을 담아서 말했다.


-언니, 지난 두어 달 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냥 말하지 그랬어요.


그리고 나서 나는 모임에는 언니의 일을 비밀로 하고 그냥 두 번째 남자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을 했으니까. 은근히 K 언니가 나를 의식하며 두 번째 남자에게 혹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물을 때는 조금 짜증나기도 했지만, 항상 상냥하게 웃으며 말해줬다. 아직요. 연락 안 왔어요.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새해가 다가왔고, 너무나 매력적인 남자들이 많이 접근했지만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멍청하기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남 부끄럽게 만들 연애의 멍청이다.


그리고 1월 31일. 내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느닷없이 K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J 가 어제 나 찾아왔어~.


또 뭐라고 했는데? J 가 자기를 착하다고 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나에게만은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응.

J도 마음 고생 많이 했더라고.

등등.


내가 답했다.


-알아요.

-어? 알아? 어떻게?

-어제 명상하다가 봤어요.


언니는 신기하네 어쩌네 말하고, J의 바뀐 연락처를 알려줄까 하고 떠들었다. 나는 통증 때문에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곱게 대답했다.


-언니도, J도 정말 철이 없군요. 두 번 다시 제게 연락하지 마세요.


이렇게 두 번째 남자는 나를 만나서 급하게 바빠지고 집안에 일이 터지더니 갑자기 두어 달 사라졌다가 내연녀에게 돌아갔다.


나는 문지방에 발가락을 부딪힐 때 빼곤 욕을 잘 하지 않는데 그날만은 속 시원하게 욕했다. 개의 이름과 생식기 등이 다발적으로 들어간 조합형 비속어 언어력을 구사했다. 그날 난 하필 아팠다. 아파서 욕이 나왔다. 아플 때 욕을 하면 심리적 통증이 감소한다는 과학적 결과가 있다.

...다들 넘어가자.


이제 정말 흥미 진진한 세 번째 남자가 등장한다.


그 전에 앞서.


두 번째 남자와 K언니까지도 모임에 있는 사람들 중 우리 지역에서 친목 모임을 하는 이들이라면 어쩌면 알 만한 인물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이 가리려고 노력은 했지만 (사실 별 노력 안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읽는 분들 중엔 내 지인들도 있으니 알지도 모르겠다. 알아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도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까 그런 선택을 했을 거고. 뭐, 지극히 유럽 스타일이고 좋지 않은가.


두 사람의 안녕을 빌어줄 만큼 마음이 넓지는 못해도, 지금에서는 이해를 하는 척이라도 한다.


먼저 K언니.

언니가 잘 있기를 빌어요. 행복하시길 빌어요. 언니가 찾는 성숙함과 행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이제쯤은 아셨기를 바라요. 봐요, 언니는 집도 있고, 아이도 있고, 남자친구도 생겼고, 술도 마실 줄 알고, 노래도 잘하죠. 미모는 좀 떨어지지만 (미안해요. 솔직히..) 매력은 넘쳐요. 다만, 다음 번에 혹시나 혹시나 마주칠 일이 있다면 너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킹캉스커트 레깅스는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아하게 꾸미시면 더 예쁠.........(하, 거짓말은 못하겠네요.) 더 좋아 보일 거예요. 제 눈에 예쁜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 빌어먹을 J에게만 예뻐 보이면 되죠. 음, 벌써 다른 분 만나셨을라나? 뭐, 누구를 만나든 행복하세요.

그 마당에서 만난 사람들 중 언니랑 J만 제가 출판을 많이 한 출판 작가라는 걸 아셨죠.

제가 모임 밖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저를 아주 이상하고 남자만 밝히는 그런 애라고 뒤에서 떠들더군요. 진짜 남자를 밝히기나 했으면 좋겠네요... 어딜 가서 멍청하다는 소리나 안 듣게.

언니가 뿌린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니는 불평 불만이 좀 많긴 했지만, 지적이고 자신의 매력을 잘 아시는 분이며 품위 없으신 분은 아니셨던 것 같으니까요.

저는 사실 언니에게도 말했지만, 언니와 J를 매장시킬 수도 있을 만큼 필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두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이건 넓은 우주의 관점으로 봤을 때 백혈구에게 잡아먹힌 세균의 사건 정도밖에 안 되니까요. 그런 소동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계속 사랑해요. 다행인 일이죠.

잘 지내세요. 건강하시고요. 자기 스스로를 늘 용서하시고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두 번째 남자에게.



두 번째 남자.

당신, 잘 지내길 바라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인생에서 자기 삶을 온전히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슬픈 일이지만, 당신에게도 당시만의 시간이 완연하게 주어질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주길 바라요.


-나는 바라는 게 없어요. 당신이 나를 차보다만 귀하게 여겨줬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었어요. 언제나 그랬듯, 존재했음에 감사하고, 힘이 되어주어서 더욱 감사해요.

또한 그때도 이야기했듯이, 결국 사람들의 관계가 비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라는 말... 지금도 그때도 진심이에요.

당신에게 더 매달리는 사람, 당신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 당신이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갔을 거로 생각해요. 나도 가끔 그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잘 지내세요. 건강하시고요. 언젠가 미안한 생각이 들면 사과 전화 한 통은 해주시고요.

내 고양이들 예뻐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짐으로 대하지 않아줘서 너무 감사해요.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등장까지, 내게는 항상 고마운 사람이었어요.


플러스 미소와 비속어 몇 개~ 하트 앤드 퍼큐.




3. 세 번째 남자와 첫 번째 고양이


내가 올해 1월 31일까지 제법 바람둥이인 두 번째 남자를 기다렸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는 앞에 전했다. 세 번째 남자 역시 그런 식으로 전개될 거로 예상된다.


세 번째 남자는 작년 12월 초에 만났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말하면 다들 알 테니까 생략하겠다.

이쯤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좋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남자10년 동안이나 사귀고 같이 살다가 결혼까지 하자고 하더니 갑자기 집을 나갔다. 두 번째 남자가 될 뻔한 남자사귀기도 전에 잠수를 타고 두 달이나 사람 속을 긁더니 다른 여자에게 갔다, 세 번째 남자가 생기면 이젠 만나자마자 잠수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맘을 주기 시작하면 그들은 갑자기 몹시 바빠지거나, 해외로 발령이 나거나, 혹은 갑자기 가족이 아파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거나, 출장을 떠나고, 이사를 가고, 심한 경우 투옥...(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된다고들 한다. 혹은 난데없이 스님 사주라고 무당인 나에게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내게는 남자들의 접근을 막는, 투명한 결계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세 번째 남자는 그런 고민 중에 만났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송년회 자리였고, 나의 소회는 이렇다.


'굉장히... 굉장히... 귀여운 아저씨다.'


'귀엽다'라는 말에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사람들을 좋아하기에,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너무 사랑스럽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동년배나 심지어 나이가 들어도 그렇다. 내 눈에는 남녀노소의 러블리함만 보인다. 이상하게 서툰 부분들, 수줍어하는 부분들, 특히 어색해 하면서도 다정하려는 노력들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미술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의 시각으로 보건대, 어떤 남녀노소도 그들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빈번하게 '귀엽다', '잘생겼다!' '예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정말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보듯이 자기들을 본다고들 말한다. 이건 정말 고칠 수 없는 병이다. 나는 당신들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럽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 '사랑스럽다, 귀엽다, 잘생겼다, 예쁘다'를 플러팅으로 듣는다니. 하긴 나도 두 번째 남자가 너무 그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하고 생각했으니까.


요즘은 그런 지적들을 많이 들어서 자제하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저 시기 때는 내가 쓰는 이 특정한 표현력을 바로 그 자리에서 해석해주고 오해를 풀어주는 분들이 많아서 나는 아낌없이 아무나 사랑했다. 정말 좋았다. 다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재미있고 예쁘기만 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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