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 일단 겸손해지기 이전 버전 (2)
내가 자주 쓰는 '귀엽다!' '예쁘다!' '잘생겼다!' 하는 표현의 공통 정서는 '사랑스럽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통념에서든 우리나라에서 '사랑스럽다'라는 표현은 지극히 문어체적인 표현이라,
아무리 현실계에서 문어체를 제대로 구사하는 특이점의 소유자인 나라도, '사랑스럽다'는 인류애의 시각을 거침없이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할 순 없다.
가뜩이나 이렇게 실생활 속에서 싱싱한 채로 만나는 사교계 (학술적으론, 당근사교계 /식류문 /맛집탐험강/ 사교모임목 /친목과 /이웃속 /지역모임종) 사람들에겐 이국의 언어처럼 낯설고 어이 없는 표현일 수 있다.
여하튼 세 번째 남자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거듭 생각했다.
'정말, 정말, 정말 귀여운 아저씨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저렇게 귀여운 아저씨가 있다니. 히햐!? 귀여운 아저씨 앞에 더 귀여운 아저씨도 있네?'
귀여운 아저씨 앞엔 더 귀여운 아저씨. 이 표현 역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내 눈에 그랬다는 거지, 만인의 눈에 그리 보이리라는, 상식적이지 않은 기대의 표현이 아니다. 나의 '귀여운'이라는 표현에는 이처럼 성글지만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술을 잘 못하고, 뭔가 매사에 심드렁하면서도 이따금 따뜻한 세 번째 남자를 처음 봤다.
세 번째 남자와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번 만났다. 그때의 나는 이전 회차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두 번째 남자를 기다리던 시기였다.
작년 12월, 내 남사친 중에 한 명은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넌 천사 아니면, 바보야.'
이때 내 천사 혹은 바보 같은 애정의 상대는 두 번째 남자였다.
몇 개월 흘러, 세 번째 남자에 대해서도 우연히 이 남자 사람 친구에게 털어놨다. 남사친은 다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진짜 천사 아니면 바보인데.... 이제 알겠다. 바보네.'
세 번째 남자와의 일화나 대화는 밝히지 않겠다. 이 글에서 밝힐 수 있는 건 내 심정밖에 없는데, 정확히 이 남자에 대한 내 의식은 이렇다.
나는 첫 번째 남자가 나에게 쓰레기 같은 폭언을 퍼부었을 때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떠났을 때 가장 많이 울었지만, 곧 헤어짐을 이유를 알아차렸고 그에게 못 해준 것들을 떠올리며 간간이 맘 아플 때를 겪었을 뿐이었다. 그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진한 전우애 말고는 느낌이 없다.
두 번째 남자가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두 달 잠수 이별로 끝냈을 때도 화나지는 않았다. 그가 내게서 흥미가 식은 걸 느끼는 순간엔 울었지만, 첫 번째 남자만큼 오래 울진 않았다. 나는 그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론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건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슬프고 괴롭고 힘들어야 하는 건 누군가에게 상처 입힌 그들이어야지, 내가 아니다. 내 문제가 아니다.
세 번째 남자는 다르다. 세 번째 남자도 내게서 첫 번째 남자와 두 번째 남자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건조하게 대꾸했다.
'자기 복을 자기가 찬 거지.'
같은 표현을 두 번째 남자 역시 처음으로 만난 날 했기에, 나는 앞으로 이 표현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이 세 번째 남자에게는 진짜 상처 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는 이 남자가 남긴 내상을 치료해야 했다.
며칠 전, 나는 바로 그날 세 번째 남자와 오랜 시간 통화했다는 한 친구에게 몹시 혼났다. 세 번째 남자가 원인은 아니었다. 친한 사람들 안에서 내가 어떤 원성을 듣고 있는지, 혹은 말하는 친구를 어떻게 실망시켰는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 안에서 세 번째 남자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맞은편에 앉았던 귀여운 아저씨 2의 이야기도 나왔고.
나는 나를 혼낸 그 친구를 많이 아꼈고 아끼기에, 그 친구가 건넨 원색적인 비난들에 충격 받았다. 처음에는 내 성격답게 많이 울었고, 왜 이런 어이없는 오해를 받는지 화가 났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혼자 잠잠히 생각해 보니 나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아니, 많았다.
나를 혼낸 그 친구는 나와 친했다. 그 아이가 그날 단지 혼자만의 섭섭함을 표현한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친구의 품성상, 혼자만의 판단으로 그렇게 손윗 사람인 나를 적나라하게 나무랄 리도 없다.
아마도 내 존재의 불편을 토로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착한 그 친구가 그날 그렇게까지 폭주할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친구가 그날 세 번째 남자와 오래 통화했다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무슨 말을 나눴건 둘의 입장에서 할 말을 꺼낸 거로 여긴다. 그건 둘의 문제다.
당시 내 문제는 너무 좋아하는 친구에게 오해를 받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곧 슬퍼졌다. 사랑이도 위독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첫 번째 고양이의 몸에서 생명이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걸 매일 매일 봐야했다. 아이가 떠나기 전날, 나는 계속되는 간호에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그런데도 고양이의 기척에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 새벽 4에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가려고 땅에 엎드려 누운 채 버둥거렸다. 나는 고양이를 안고 바닥에 누워 엉엉 울었다.
나는 아이의 생명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근하기 직전, 아이에게 마지막 뽀뽀를 하고 돌아서며 언니에게 부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아무 때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전화주세요. 어디에 있든 달려올게요.'
몇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그렇게 됐다.
내 첫 고양이는 등에 나비 문양을 달고 한겨울에 찾아온 천사 같은 아이였다. 나에게는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해준 청신한 구원자였다. 나는 심지어 사랑이를 유기했던 전 주인에게까지 감사하며 살았다. 첫번째 고양이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거라고. 네가 나에게 알려준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난 11년 동안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며 살지 못했을 거라고. 네가 없었다면,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고.
한여름에 떠난 내 작은 고양이는 내게는 가장 오래된 가족이었다.
그날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며칠 동안 처방만 받고 먹지 않던 약을 한 번에 먹었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를 없애려고 먹은 건 아니다. 그런 작용을 하는 약도 아니다. 다만 긴장도만은 풀어주는 약인데, 술을 한 잔도 못하니까, 내가 비교할 수 있는 건 술로 멘탈이 흔들릴 때와 비슷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보통 때는 쓸데없는 이완이 싫어서 받아만 놓은 약이었다. 그랬던 것이 그날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같아 과용했다.
술꾼들이 술을 마시면 그런다던데, 내 정신도 점점 흐릿해졌고 판단력이 좋지 않았다. 그 점은 차마 부정하지 못하겠다. 나는 엉망이었다. 그리곤 뜬금없이 세 번째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하게도, 내가 받은 답변은 가히 좋지 않았다. 답신은 주고받은 내용상 단 한 줄로 정리될 수 있다.
-더는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말았으면.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죄송하다는 사과로 메시지를 끝냈다. 한 5분 정도는 멍해졌고, 이어 곧 알아차렸다. 이 남자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정치적으로 행동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 졸업 후에도 신문사와 사회단체에서 일했다. 선배 중 몇 분은 실제로 정치권에서 일한다. 그런 나에게조차 그의 대응 방식은 상당히 '나빠 보였다.' 한 번도 아니고, 꾸준히. 여러 번.
세 번째 남자는, 나를 세상 다시 없을 은은하게 '도른 자'처럼 늦은 밤까지 기다리게 했다. 연락할게, 라는 말로 씹어버리고...
그 결과, 나는 혼자 그렇고 그런 오해를 하는, 중세 사교계의 숙녀들이나 걸렸을 법한 도끼병에 걸린 애가 됐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이보다 더한 협잡 같은 정치적 대응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사는 언니가 옆에서 보고 들은 걸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또 내게 남은 뭔가가 없었다면, 난 나 자신마저 광기로 이상해진 거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점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내가 이성의 짧은 호감이나 호기심 표현을 일일이 '나에게 반한 것'으로 몰고 갈 정도로 바보였던가?
아무리 천진난만 한들 이성의 친해지려는 농담과 꼬드기려는 감언이설을 구별 못할, 철없는 사람이었을까?
그런데도 기다리라고 말하고 연락하지 않고 기다리게만 한 그 남자를 끝까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두둔했던 내가 얼마나 친구의 말처럼 '바보'처럼 느껴졌겠는가?
무엇보다도.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남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생각으로 나를 볼 뿐인데. 그들 각자가 정의하는 나조차 일다경의 시간 동안 변화하고 있는데. 그들은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있을까? 나도 진짜 나를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데?
여기에 다시 고양이가 등장한다. 내 첫번째 고양이 사랑이.
이 모든 시각은 사랑이를 만난 그해부터, 언젠가는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랑이를 위해서 열심히 배우고 이해했다. 죽음은 없다는 거. 삶은 환상이라는 것. 어린 나이 때부터 겪은 친구들의 죽음들, 그게 끝이라도 믿었는데, 그 믿음은 사실이 아니었고 그들은 정말 떠난 게 아니라는 것.
11년 동안 배웠다. 그러므로 사랑이에게 쓰는 편지에도 '모험을 잘 떠나고 있길 바라. 곧 다시 만나자.' 라고 남길 수 있었다. '상냥한 고양이가 되어주세요.'라고 덧붙이기도 했고.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우리가 안고 있는 죽음의 인식은 그냥 '생각'일 뿐이다. 드러나는 진실은 오직 하나, 죽음까지 포함해서 삶의 일부라는 것뿐이다.
물론 아직도 나는 사랑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하루에 몇 번씩 통곡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가 어디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은 이제 잘 안다. 미안해 하면서도 미안하지 않다. 내가 너무 바쁘게 일해야 했던 것도, 첫 번째 남자가 떠난 후에도 계속 잘 돌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그런 판단과 감정과 현상까지 모두 인연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바이런 케이티 식의 표현에 의하면, '사랑이는 잘 있습니다.' 이다. 이 문장은 자기 기만이나 부정이 아니다. 나는 실제의 사랑이를 안을 수 없어 내 '마음'이라 부르는 그 허상 안에 깃든 비애를 보면서도, 한편으론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이 말을 꺼냈다. 바이런 케이티는 어머니를 보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내 이야기 없이 그녀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
당신이 당신의 생각(판단)이 진실하다는 걸 믿지 않을 때,
당신은 자유로워집니다.
-바이런 케이티 / 기쁨의 천가지 이름(도덕경 해설)-
여기까지가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에게 얽힌 이야기다.
읽고 보니 별거 아니네, 할 독자분들이 대다수일 것 같다. 맞다. 별거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삶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지루한 일상.
땀이 물처럼 흐르는 계절.
여름에 나는 첫 번째 남자와 두 번째 남자와 세 번째 남자와 첫 번째 고양이를 마음에서 내려놨다. 그들을 어디에 내려놨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생물처럼 돌아다니는 마음이 어느 결에 이 지루하고 담담한 생활 속에 찾아올 때쯤, 과거 속의 그들과 한 번씩 조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고, 너무 덥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생생한 계절이다.
여름의 색은 이토록 찬란하게 빛난다. 퇴근길, 창살처럼 꽂히는 햇살과 염분기 가득한 땀을 느끼면서 나는 생각했다.
여름은 얼마나 무례한 계절인가, 하고.
나는 왜 이 무례한 시절에 울고 또 울고 계속 우는 걸까, 하고.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겪는 이 깊은 슬픔을 관조한다. 내가 그들을 내려놓은 자리가 어디쯤인가 가끔 반추하며. 그 회상의 부질없과 헛됨에 때때로 실소 짓고. 그 시간의 밖으로 나와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TO. 세 번째 남자님께.
어떤 식으로 불려도 또 여전히 불편해 할 테니까, 간단하게 끝낼 게요.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상처 입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에요. 어떤 쓰레기의 쓰레기 같은 말에도 상처 입은 적이 없어요.
다만, 이건 내가 잘 아는 사람일 때 이야기에요.
당신 말처럼, 한두 번밖에 안 본 사이끼리 무슨 그런 말이 오갔겠어요.
내가 이 백열의 온도에 어떻게 된 거겠죠.
한 사람을 아주 판타스틱한 사람으로 만들어놨어요. 좋은 작업이었어요. 굉장히 멋졌어요. 기록과 이야기를 쓰는 게 나의 일 중 하나라는 걸 몰랐으니 그랬을 거로 여겨요. 영장류 중에 다소 지능이 높은 쪽에 속하는 저를 몰랐으니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연애, 사교와 같은 정치질을 빼고는 다방면에 재능이 많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억력이죠. 또 다른 하나가 기록이고요. 마지막으론 마음만 먹으면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화술이고요. 내 여러 직업 중 하나가 무당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제가 당신에게 사과하고 물러난 이유는 단 하나예요. 당신처럼 바쁜 사람에게 불필요한 일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당신도 스스로 했던 말을 가끔 복기해보길 바라요.
'자기 복을 자기가 찬 거지.'
나는 당신이 어느 날 전화를 받으며 태도를 싹 바꿔서 '아, 누나.'라고 느닷없는 호칭으로 대답했을 때부터 느꼈어요. 이 사람, 주변에 의식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사람이구나.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잘 지내지 않기를 바라요. 벌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무당으로서 하는 말이에요.
그냥 잘 지내지 못할 거예요.
당신이 일상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대단히 바쁜 시간을 보내는 건 알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의 불편을 감지하시게 될 거예요.
살다 보면, 그래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당신이 지켜야 할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든 게 내 영역을 빠져나간 후에야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은 그쯤 되어야 행복해질 거고요. 그때가 되어야 일각도 통제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즐거워질 거라는 말은 아니에요. 나는 현명한 만족을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나는 나를 때린 사람, 나를 모욕한 사람, 나를 학대한 사람에게조차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당신에게만은 다정하지 않게 인사할 겁니다.
내게, 아무리 아이 같은 눈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를 알려준 유일한 표본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