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어쩌다 미혼 (번외) (완)

번외 편 -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 겸손 버전.

by 반야
약 3, 4개월 무렵의 탁구. 천재 고양이로, 어린 시절에는 체리 옷을 자주 입었고, 목각 인형 같은 포즈로 자곤 했다.




















외전은 나의 첫번째 고양이와 고양이로 끝나는 세 남자의 이야기였다.



나는 처음부터 브런치의 글을 자기 치유의 목적으로 시작했고, 출판이든 뭐든 관심이 없다.


다만, 읽는 분들께 두서없는 글로 혼란을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 윤문과 퇴고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이 글의 속성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존 독자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무리는 깔끔하게 정리될 예정이니, 이 글을 읽어주시는 아량이 넓은 독자분들은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권선징악이나 설레는 로맨스나 인생을 즐기는 장년의 아름다움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사람도 언제나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읽는 분들의 마음에 찰나의 상으로 남겨졌으면 한다. 더불어 비슷한 마음 꺾임으로 울고 웃으며 이제는 평탄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고.





지금까지는 겸손해지기 이전의 버전이었다. (물론 여러분은 내 이야기만 들었으므로 그래도 충분히 겸손... 아니, 착한 버전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진짜 최근의 내 버전, 겸손 버전으로 돌아와 장면을 재구성하겠다.


한창 시절, 사랑인 척하는 그분.


sticker sticker

(나의 겸손 버전은 대충 이런 모습이다.)


첫째 고양이 '사랑받는 고양이' (사랑이)는 2025년 7월 3일 11시 48분에 고양이에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랑이는 유기묘로, 처음 데려와서 돌봤던 2014년 겨울부터 꾸준히 아팠다. 길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신장의 건강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아슬아슬하게 나왔다. 사랑이가 가족이 되고 몇 개월 뒤, 나는 부산 집에 며칠을 다녀왔다. 아이는 그 며칠 동안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급성 신장병 진단을 받고 입원했는데, 24시간 동물병원이 아니었던 까닭에 나는 2박 3일을 집에도 못 들어가고 병원 바로 옆의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아이와 만났다. 당시 나는 유기된 기억을 가진 사랑이 곁에서 내가 자리를 비운 게 발병 원인이라 판단했다.


담당 수의사는 사랑이가 이틀을 못 넘기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게 사랑이라는 걸 알려준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에 쓰러졌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민망하다.) 하지만 몇 천 만원이 드는,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대수술마저 동의했다. 그때의 내 시절인연은 그걸 다 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았다.


이후로도 사랑이는 자주 아팠다가 괜찮아지길 반복했다. 그때마다 내 감정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명상만으로는 비애를 다룰 수 없게 됐다.


'사랑'이 짐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사랑'이 굉장한 무게가 됐다. 외전을 시작하며 내가 사랑이를 통해 '사랑'이 뭔지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맞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이 가진 다른 감정도 함께 습득했다.


39년 만에 내가 전심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뭔가는 곧 지켜야 할 뭔가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그것들과 분리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이별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잘못되지 않을까 매번 걱정했다. 그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 죄스러웠다.


사랑이와 사랑이가 몰고 온 첫 번째 남자. 그들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게 되자 그것이 사라진 이후를 상상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어도 이렇게 그리운데, 이 대상을 더는 볼 수 없다고? 이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그런 이별을 맞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지?


어떤 인연이든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인데도,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헤어나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충분히 사랑하면 괜찮을까? 내가 할 만큼 다 했다고 여기면 나아질까? 다음 사랑을 만나면? 대체할 무언가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었다.

나는 첫 번째 남자가 떠나고 실직과 실연과 파산을 한번에 겪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내가 별 내용도 없는 세 번째 남자 이야기까지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첫 번째 남자와 두 번째 남자에게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세 번째 남자에게도 주어진 시간 내에선 할 만큼 했다. 세 사람 모두의 불가해한 대우마저 참을 만큼 참았다. 심지어 미친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에게도 할 만큼 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과 마음을 들였다. 이때도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남자에 대해서, 대부분은 내게 말했다. '네가 너무 착하고 참기만 해서, 그들이 그렇게 나온 거다'라고. '남자들은 잡은 물고기에 미끼를 주지 않는다'고. '네가 여우처럼 굴어야 그들은 넘어온다'라고.


나는 때론 덜 착해지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참지 않았다. 바보처럼 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번번히 미안해지고 우는 쪽은 나였다. 매번 상대에게 사과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홍어처럼 숙성되고 나서야, 첫 번째 고양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진실을 깨달았다. '마음'에 있어서, 최선 따위는 없다는 걸. '마음'에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넣는 순간부터 그 무게가 더해진다는 걸.


'마음'에 있어서, 누군가와 평화롭게 헤어질 방법은 없다. 비록 그 대상에게 상처를 덜 받을 수는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슬픔이 없어지진 않는다.


다음 상대를 만나면 괜찮아질까? 진짜 내 상대를 만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것 역시도 답은 아니다. 나에겐 아직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다음 남자까지 있지만 아무것도 서로를 대신하진 못한다. 이 고양이와 저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고, 이 남자와 저 남자는 다른 남자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항상 이렇게 괴로워야하는 걸까. 무엇이든 끝이 있는데?


14살 때부터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 나는 그 비통함을 잊고자 많은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명상이란 명상도 다 해봤다. 그러나 어떤 것도 이별의 고통을 대신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내게 사랑이라는 덩어리를 통조림처럼 가지고 온 고양이가 마지막 숨을 뱉고 다른 것으로 변한 후. 몇 시간 후에야 나는 완연히 알게 됐다. 슬픔에 저항치 않으면 된다는 걸. 슬픔을 슬픔으로 느껴주면 된다는 걸. 고양이건 첫 번째 남자건 세 번째 남자건 누구든, 처음부터 조건 없이 사랑했다고 여긴 내 '전제'가 틀렸다는 걸.


내가 조건 없이 헌신적이긴 했다. 연애 같은 건 특히 어떤 스펙도 보지 않고 순정적이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돌봤다. 친구 말처럼 나는 천사이거나 바보일 수 있다.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에서는 그렇다.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한 나의 마음을 '조건 없이 퍼주는' 사랑으로 오해했다. 그런 사랑을 하면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잘못 판단했다.


하지만 만약 애인이나 고양이, 반려동물들이 떠나는 것을, 그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망한다면, 그건 정말 자연을 거스르는 엄청난 조건이 아닌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때만 널 사랑할 거야. 왜냐면 네가 떠나면 난 너무 괴롭고 슬퍼지니까.'


이 문장에는 조건이 분명히 있다. 어떤 형태로든 '나'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근데 그럴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생명이 있을까? 심지어 우리도 우리 몸을 떠나는데? 끝이 분명한데,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은 결국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정신으로나 신체로나 완벽한 어른이 된 자식을 내보내지 않으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좋아. 나는 너의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로서 너를 사랑해. 네가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하지만 네가 어떤 이유로든 나를 떠난다면 더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


가능하긴 한가?

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나 안다.


우리가 무언가를 조건없이 사랑한다는 건, 그 대상이 늙고 병들어도 사랑한다는 의미다. 결국 실재하는(혹은 그런다고 생각하는) 형상조차 진짜 사랑과는 관계 없다.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든, 심지어 우리 자신도 모습이 변하고 끝내 이 형상에서 벗어난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내 방 벽에는 내 예쁜 필체로 붙은 메모가 있다.


'당신이 누구든, 나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봤고, 지금 이 순간에야 막 만났습니다.'


그 문장을 적을 당시, 깨어 있는 마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 그래서 대부분에게 친절할 수 있었고 다정할 수 있었다. 어떤 욕이나 오해를 먹어도 용서가 됐다. 이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했든, 나는 1초 전까지도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상대는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현실이자 사실이라고 믿는, 너무나 일반적인 '나'와 같은 사람이니까.


같은 메모의 아래엔 올해 초 한 문장이 추가됐다.


'나의 죽음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낙엽이 떨어지는 이치와 같을 뿐.'


올해 초엔 아버지가 기르시던 고양이가 '떠났다.' 그 아이도 16살이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아프면 늘 병원에 데리고 가셨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하셨다. 아버지도 여든을 넘기시고 암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였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갈 때가 되면 가는 게 순리지. 나비도 괜히 병원 들락거려서 더 힘들게 할 필요 없다.'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셨고, 결국 나비는 홀로 새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당시 나는 매주 나비를 보러 부산까지 오갔다. 나비가 밥을 한 끼만 굶어도 걱정이 되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그런 나비가 고독하게 떠난 게 너무 슬퍼서 통곡했다. 그러다가 법문을 듣게 됐다. 이날, 법문에서 들은 말이 죽음과 우주의 관점이었다. 아, 맞는 말이었다. 내게 '나비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면 나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나비에 대한 '회상'을 이야기할 때만 나비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또한 인과율의 관계로 날줄과 씨줄처럼 얽힌 우주에서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며 자신의 몸에서 잎을 떨어내는 나무와 같다. 자연의 이치에 지나지 않는다.


젊을 때는 좋은 말을 들어도 실제 적용하진 못했다. 세상과 싸우는 법, 이기는 법, 남보다 많이 쟁취하는 법, 실패하지 않는 법, 남보다 앞서는 법, 많이 버는 법만 배우려 했다.


요새야 알게 됐다. 좋은 말을 들으면 그냥 적용하면 된다는 걸. 나는 법문에서 들은 말을 즉시 '나비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입했다. 일기장 첫줄에 '나비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적고, 다음 줄에 '그 생각에 대한 다른 의견'이라 이름 붙이고 적었다. 몇 번을 들여다보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쯤에서 내가 일기를 적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여러분이 없기를... 아니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잖아요?)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 '시각'을 인지하는 인간들만이 '흐른다'고 정의내린다. 매 초마다 깨어 있는 이들에겐 시간이 상대적이다. 언젠가 차에 부딪힐 때, 난간에서 뒤로 떨어질 때 나도 느낀 적 있다. 시간이 갑자기 뚝 끊어지더니 느려지고 멈추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기억들이 주르륵 흘러간다.


내 고양이도, 아버지의 고양이도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고양이들에게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시점쯤에 모든 생명체는 이른바 천체 우주에서 이야기하는 '사건의 경계선(이벤트 호라이즌)'에 있는 것과 같다. 뭔가가 블랙홀에 끌려들어가는 순간, 어떻게 해도 더는 되돌릴 수 없는 불복귀지점을 과학에서는 '사건의 경계선'이라고 한다.


상태로 말하자면 모습이 바뀌는 임계점이고, 인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임종의 경계선이다. 그 경계선을 넘어가서 돌아온 생명은 없다.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생명은 있겠지만, 그것도 말 뿐이니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스티븐 호킹이 묘사한 사건의 경계선은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거나 '과거의 일이 눈앞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론상, 시간(혹은 시간을 존재하게 하는 빛)까지 블랙홀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죽음은 나쁘지 않다. 좋지도 않다. 모든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우리가 '시각'이라는 걸 인지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넣은 때부터. 인류는 시간의 개념을 터득한 그때부터 '죽음'이 서사 혹은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에너지의 상태 변환이라는 말이 너무 길고 어렵게 느껴져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 처음부터 죽음과 삶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처럼 느끼는 건 오직 인간만 그렇다. 자세히 보면 그냥 무엇이든 때가 되면 모습을 바꾼다. 당신이 힘 하나 들이지 않아도 계절이 오가듯, 지구가 자전하듯, 파도가 치듯이.


그것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자, 내게 더는 '너 없이는 나도 없고 어쩌고'가 성립되지 않았다.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면 헤어질 때 괜찮을 지도' 역시 답이 되지 않았다. '너를 대신할 무언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거두고 나면 남는 건 하나였다. '낙엽이 제 때에 떨어졌다.' '계절이 되어 산이 눈으로 덮혔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았다.' '잠에서 깨어났다.' 바로 이런 이치만이 남게 된다.


불교에서는 '중생심'과 '불심'을 나눠서 말할 때가 있다. 스스로 부처임을 깨달았으니 부처 그 자체가 될 때가 있기도 하고, 중생의 몸에 들어와 있으니 매 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중생심의 마음으로 세속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는 의미다.


언니의 메시지를 받고 회사에서 부리나케 뛰쳐나와 집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미물이었다. 중생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가진 서사로 애통해 하는 보호자였다. 언니도 그랬다. 언니는 온통 눈물 젖은 얼굴로 통곡했다.


'사랑이는?'

'지금 막 갔어....'


나는 쓰러져 오열했다. 목 놓아 울었다. 울면서 사랑인 척하고 있었던 사랑이의 몸을 내려다봤다. 언니가 물었다.


'어떻게 하지, 이제?'

'장례식장을 알아본 게 있어요. 화성에 있는......'


언니는 내가 장례식장에 연락하는 동안 계속 울었다. 사랑이를 쓰다듬으면서 모든 걸 자기 탓으로 여겼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우리는 검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장례식장은 내가 처음에 아기들의 장례를 치러주던 그곳이 아니었다. 그쯤의 나는 천천히 중생심을 내려놓고 그 순간에 깨어 있었다. 그러자 곧 아무것도 상관 없어졌다. 사랑이의 장례는 점심 시간 이후에 치러졌다. 사랑이가 떠난 사랑이의 몸은 바구니에 담겨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만큼 예쁘게 빗질이 됐다.


장례지도사(?)가 등장해서 우리를 안내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사랑이와 마지막을 보내게 하며 편지를 쓰라고 권했다. 나는 전 회차에서 말한 대로 사랑이에게 다소 늠름한 편지를 쓴 후 언니를 돌아봤다. 언니는 역시 미안하다는 내용을 쓰고 있었다. 나는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호통쳤다.


'언니, 솔직히 뭐가 미안해. 미안해 할 거면 쟤가 우리한테 미안해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내가 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응, 얼마나 그 동안 쟤 신경질 다 받아주고 얼마나 예뻐했는데! 그동안 잠도 몇 시간 못 잤는데, 응?!'


너무 사자후를 토했나.

언니가 울음을 그치더니 푹 웃었다. 장례지도사는 그런 장면이 처음인 듯 당황해 했다. 이후, 장례지도사는 우리에게 얼마짜리 관에 넣을 거냐, 얼마짜리 단지에 넣을 거냐 등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사랑이의 보호자이자 지갑인 내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꼭 그래야 할까요? 이건 사랑이가 아니잖아요. 그냥 사랑이의 몸일 뿐이잖아요. 화분에 옮겨 심을 거니까 그냥 단지에 넣어주세요.'


옆에서 이런 나의 생각에 늘 동의했던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전, 나와 언니, 그리고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셋 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대하기로 동의했다. 나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내가 유서 써놨어. 공증도 받았어. 내가 죽으면 둘 다, 아니면 둘 중 하나가 꼭 우리 가족에게 말해. 울면 귀신으로 찾아와서 혼내줄 거라고. 그쯤되면 내 몸은 이미 내가 아니니까 기증하고 웃으면서 춤을 춰. 장자인가 노자인가가, 제 아내가 죽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약속해. 꼭 웃으면서 즐겨줘. 웬만하면 사진 같은 것도 걸지 마. 사진도 내가 아니니까. 그냥 종이일 뿐이잖아.'


굳이 영혼과 마음과 몸으로 곤충처럼 삼등분해서 나누자면, 내게 몸은 그 정도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몸이 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중요하다. 하지만 영혼과 마음이 몸을 떠나기로 했으면 이후의 몸은 물성으로서의 특징 말고는 무의미하다.


사실 우리 셋이 오랫동안 동의한 형태는 '풍장'이다. 시신을 자연스럽게 들판에 방치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풍장은 불법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장례식 대신 축제를 열어달라 부탁했다. 내가 꿈 중 하나에서 깨어남을 '진심으로' 축하해달라는 의미였다.


장례지도사가 사랑이인 듯 사랑이가 아닌 뭔가를 관에 넣고 화장터로 가서 의식을 치르는 사이, 우리는 다시 대기실이라고 부르는 곳에 사랑이 사진들과 함께 남겨졌다.


우리는 다시 중생심으로 묶여서 대성통곡했다. (옆에서 보면 좀 웃겼을 것 같다.) 나는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리곤 툭툭 털고 일어나, 훌쩍이며 언니에게 말했다.


'아까 사랑이 몸... 빗질해서 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 말이에요.'

'어.'

'난 너무 예쁘고 조용해서 사랑이가 아닌 줄 알았어.'

'응, 나도.'

'언니...'

'응?'

'우리 혹시 헷갈려서 다른 애 데리고 온 건 아니지? 죽은 거 사랑이 맞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위엄을 갖추신 사랑이라 불리던 그분.


언니가 빵 터졌다. 눈물을 흘리다가 갑자기 웃었다. 나도 피식피식 웃었다. 언니가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우리는 우주와 내통하는 부처의 마음을 반쯤 깨우며 속삭였다. 언니가 느른하게 털어놨다.


'솔직히 아까 네가 뭐가 미안하냐고 소리쳐서, 갑자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응, 괜찮아, 언니. 누구 탓도 아냐. 그냥 갈 때가 된 거야.'

'어, 맞아. 그리고 네가 엄마도 금방 갈게, 하고 인사해서 정말 괜찮아졌어.'

'사실이잖아? 내가 보내주고 따라가는 게 나으니까.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애들을 남겨놓고 가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언니는 중생심으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콧물을 훌쩍이고는 늠연하게 말했다.


'언니, 그만해.'


언니는 대답도 못하고 울었다. 나는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보내야 할 애들이 다섯이나 더 있어.'


언니가 울음을 뚝 그쳤다.


그래놓고, 나 역시 집에 와선 다시 울고 불고 미친 짓을 다했고, 세 번째 남자에게 그런 괴기한 메시지까지 보내고, 나 자신을 있는 힘껏 괴롭혔다. 신파라는 이야기에 갇힌, 세속의 생물처럼 괴로워했다.




내가 진정한 건 이틀이나 지난 후였다. 나는 사랑이를 보낸 후 이틀을 정신 없이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 방 침대에 앉아 한때 사랑이라 불리던 그 무언가가 담긴 통을 물끄러미 봤다. 언니가 들어섰다. 내가 말했다.


'장례식장에 내가 예쁜 사진도 많이 줬는데, 왜 하필 저 사진을 액자로 준 걸까? 웃으라고?'


언니는 웃었다. 언니는 내가 미친년처럼 구는 동안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다 마셨다. 우리는 회복 중인 환자답게 서로를 쳐다봤다. 언니가 먼저 물었다.


'괜찮아?'

'어.'


언니의 '괜찮아?'에는 세 번째 남자에 대한 질문도 담겨 있었다. 나는 괜찮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덧붙였다.


'언니, 되게 예쁘게 생긴 유리병 안에 빛이 가득 담겨 있었어. 그 유리병은 예쁘고 귀엽고 따뜻했어, 그지?'

'응.'

'그 유리병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는데, 엊그제 그 병이 깨졌어.'

'어.'

'그래서 그 안에 있던 빛이 다 퍼졌어.'

'응....'

'어디 딴 데로 간 건 아냐. 그지?'

'맞어.'


사랑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사랑이도 어디론가로 간 게 아니었다. 한때 그렇게 불리던 모습만 바뀌었을 뿐, 내가 사랑했던 사랑이는 영구하다. 사랑이에 관련된 내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은.


우리는 그 이야기가 없는 한, 그에 대한 생각이 없는 한, 우리가 무엇이라 부르던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거나 잠에 들지 않고도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고, 온화할 수 있고, 슬픔을 자애롭게 들여다보고, 떠나보낼 수 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겪고 느낀 삶은 놀이동산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놀이동산에 들어선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놀이동산에 들어섰고, 재미있어 보이거나 사연이 맘에 드는 파트에 티켓을 밀어넣는다. 때론 사고도 일어나고 다치기도 하고, 긴 연극에 빠져 몰입한 나머지 심각하게 감정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이것 역시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익은 과일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물며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의 이야기가 인류의 역사서에 기록될 리도 없다! 물론 개인적으론 다들 억울할 것이다. 내 사연이라면 책 한 권은 나올 텐데! 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낀 공포와 분리의 슬픔(?)이, 공룡의 난데없는 등장과 멸종 같은 세기적 사건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공룡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알 게 뭔가.


앞에서 아주 스치는 인연이었던 세 번째 남자의 타격감이 가장 셌다고 썼다. 맞다, 내겐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없이 돌연 나타난 등장감이 좋았다. 놀이동산의 깜짝 쇼만큼이나 인상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 겸손한 버전으로 돌아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느 남자도 나를 파괴하진 못했다.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순간조차도 그랬다. 나는 그냥 내가 상처 입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첫 번째 남자가 떠나던 날도, 두 번째 남자의 양다리를 알게 된 날도, 세 번째 남자와 사랑이를 동시에 안녕하고 보내던 날도.


그 어느 사건도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무한한 시간 속에선 늘 그렇듯, 파문이 일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나는 일기의 마지막엔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ㅇㅇㅇ'를 적고 'ㅇㅇㅇ'에 대한 내 생각(이야기)이 없을 때의 나는 어떤가를 적었다. 바이런 케이티'작업'이라는 건데, 이건 검색만 해도 그 방법이 금방 나온다. 여러분도 괴로운 일이 있을 때 해보길 바란다.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곧 바이런 케이티 식의 '메타인지'법에 효과를 느낄 것이다. 보장한다.


각설하고.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고양이 사랑이의 이야기처럼 치환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네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이 누굴 선택하든 어디로 가든 그건 그 상대의 마음에 따른 문제일 뿐이지 않은가? 내가 그들이 떠날까봐 초조해 했다는 건 그만큼이 나에게 결핍이 존재한다는 방증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의 생각을 '조사' 혹은 '탐구'한다는 바이런 케이티의 말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계속 내 생각을 '조사'하고 '탐구'했다.


나는 그간 내가 외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프거나 죽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복'이 있는 '선물'이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내가 부담스럽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원하는 게 많아놓고도 모른 척했다. 슬픔이나 비애처럼 무시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아무 것도 결핍되지 않는 자처럼 굴었다. 여유로운 사람처럼 스스로를 기만했다.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한 것은 그 결핍을 인정하라는 신호였다.


내가 내게 없었던 부분을 인정하고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것들은 아주 천천히 희미해졌다. 슬픔이 사랑의 한 부분이듯,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듯. 중생심으로 부여잡고 있던 한낱의 것들은 품위 있게 기화했다.


돌이켜 보면, 모든 만남과 이별은 정말 좋은 때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모든 비난과 칭찬은 가장 알맞은 때에 내게 찾아왔다. 내가 한때 인생 최고의 악인으로 여긴 상대조차도 그랬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필요한 게 없었다. 뭔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주면서 그것이 떠날 때를 생각하며 늘 괴로워하고 걱정했는데...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없는 것을 희구하고 없는 것에 절망했다. 없는 것을 지키려 했고 없는 것에 골몰했다.


인간은 뭔가를 필요할 때 절실해지고 지켜야 할 책임감을 갖는 법이라 배웠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대개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거나 만족하려 누군가와의 연애를 꿈꾼다. '사랑'한다면서 왜 그러냐고 항의한다. 심하면 나중엔 조물주에게도 항변한다. 나처럼.


-이봐요, 나를 사랑한다면서요! 근데 나에게 왜 실직과 실연과 사람을 갖고 노는 남자들만 내려보내시는지요?


다음으론 이렇게 따졌다.


-나를 사랑한다면서요?!!! 그래놓고는 왜 내 고양이를 도로 데려가시려는 거예요?!!!


답은 선명하다. 나는 무언가를 가졌다가 뺏긴 적이 없다. 그 남자들도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고, 나도 그들을 정말 만난 적이 없다. 그들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는가? 하고 계속 탐구했지만 없었다. 잠깐 우리가 분리한 인세에서 고양이의 몸을 채운 '사랑이'라는 이름의 에너지가 그 병이 수명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에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뿐이다. 공기든 물이든 뭐든, 에너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사라지지 않은 것을 필요로 할 이유가 있을까? 처음부터 여기 지금에 영구히 존재하는 것을 다른 무엇으로 증명할 이유가 있는가?


내가 사랑했던 대상들 혹은 나를 사랑했던 상대들이 어디로 가든 무엇이 되든 다른 사람을 만나든 말든 진짜 사랑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찾든 다른 이를 찾든, 그 무언가를 찾았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들은 이미 내 이야기 '사랑'편에 등장했고, 그건 그들이 죽거나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거나 심지어 도로 태어나지 않는다해도 불변한다. 어떤 이름으로 있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우리는 공평하게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듯 같은 사랑에 포함되어 있다.


그들을 정말 사랑하기에, 그들의 선택을 언제나 축하한다.


나와 머물기로 했건, 떠나기로 했건, 잊기로 했건, 미친년 취급을 하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다. 그들의 이야기 속의 나일 뿐이다. 진짜 나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진짜 그들을 만난 적이 없듯이, 그들도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이 만난 건 각자의 사념 속에 있는 내 모습일 뿐이다.


내 첫 번째 고양이에게도, 내 첫 번째 남자에게도, 두 번째 남자에게도, 그의 연인에게도, 세 번째 남자와 그의 선택에도.

이제야 정확히 겸손한 버전으로 말한다.


당신들에게 늘 그랬듯, 가열찬 응원을 보낸다.

때론 그 응원들이 너무 차갑고 다정하지 않게 들렸을 수도 있었음에 사과하며, 진심으로 축복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모두 '건강'에 대한 염려를 보냈던 걸 기억할 거로 여긴다. 그 또한 인세 개념의 건강이지만, 우리는 적당히 속물로서 세상이라는 놀이동산을 즐기는 만큼 건강한 채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결론적으로 겸손한 버전의 나는,

정확히,

평화롭다.


그저 당신들을 깊이 사랑할 뿐이다. 나를 비난하건 나를 떠났건 나를 속였건 어쨌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도, 나를 홀대한 것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도.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사랑한다. 사랑하며 기원한다. 당신들의 뜻한 바를 이루기를. 인간계의 모든 것을 한 번은 즐기고 이뤄보기를. 나는 더는 그런 게 없으니까, 당신들이 날 떠난 건 너무 당연했다.


진심으로 기도한다. 당신들도 내가 느끼는 이 해방의 즐거움과 쾌감을 느껴봤으면 하고 기도한다. 당신들도 당신들 자신의 구석구석을 용서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놓아주는 방법을 알기를 기원한다.


모든 다정함을 담아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만나도 나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만큼, 또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았던 만큼, 더없이 부드럽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우리는 이전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날 그때야 막 만난 새로운 사람일게 분명하니까.



-50살, 어쩌다 미혼 (외전) 나와 고양이와 세 남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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