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숙천(2016)

by 율리

이제 며칠뒤면 정든 남양주를 떠나 먼 곳 대구로 갑니다. 본토 아비의 땅을 떠나는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을 생각했던 시간이 있기에 왠지 설레기도 합니다. 모험같이 느껴집니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내 삶은 소소한 일상일 텐데 두고 떠나는 것에 눈물이 납니다.


물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보리밭 숨바꼭질, 얼음배 놀이, 나무집 만들기, 물고기 잡기, 엄마 아빠와 놀았던 기억보다 왕숙천 개울에서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내겐 비밀스럽고 풍요로운 개울이었습니다. 딸아이 성장앨범을 만들며 무심코 서너 장의 숙천 개울풍경사진을 넣어둔 걸 보면 내게 그리운 무언가가 틀림없나 봅니다.


배를 한 척 갖고 싶었는데 세숫대야를 타고서라도 물결을 따라 한강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첫째 이름은 지을때 강물이 나아간다는 뜻을 두었고 둘째는 강물이 쉼을 누리는 바다의 배, 셋째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물버들 같은 형통함 즉 나에게 질긴 싱싱한 가지로 집을 만들어준 버드나무의 생명력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세상에도 방랑이 있고 전설도 있습니다. 삼월 일일이면 혼자 자전거를 타고 봄을 마중 나갔고 개울물이 스며빠지는 돌구멍을 어항에서 죽은 금붕어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문이라고 알았고 길 건너 산중턱 돌바위 아랜 호랑이가 산다고 알았습니다. 무지개의 끝을 찾는다며 서양동화에 나오는 황금단지도 찾아다녔습니다.


지금도 왕숙천 개울이 보이는 집에 삽니다. 홍수가 나도 끄떡없는 11층에 삽니다 어릴 적 홍수가 날듯 철벅거리던 성난 흙탕물이 기억납니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휩쓸려가지 않아 지금도 감사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그 긴 개울둑을 따라 걸어나가 학교가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버스를 놓칠까봐 초조해하며 종종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를 합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학교를 마치고 버스에 내려 어두워지면 공중전화를 걸고 엄마 아빠를 기다립니다. 물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웠던 어둔 개울둑방길. 이 모든 게 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요? 나를 만든 건 팔 할이 바람이란 시인도 있듯 나는 이 개울에서 자랐습니다.


동생집에서 하루 묵으며 주저리 기록을 남깁니다 안녕 나의 고향 왕숙천 밤나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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