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2017)

by 율리

통영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비진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전 항구 앞 서호시장에서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챙긴다고 부산히 뛰어다녔다.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손목에 달고 돌아 나오다 멈춰 섰다. 시장 가판에 올려진 무화과나무 묘목을 보았다. 갖고 싶다. 여행 중이지만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긴다. 배를 타야 할 시간이다.


내가 무화과나무를 처음 본 것은 이십 대 중반 봉사활동을 위해 전라도 어느 작은 섬에 머물렀을 때였다. 짙푸르고 응달 진 마당에 서서 진녹, 진보라가 섞인 열매를 몇 개 달고 있던 무화과나무, 경기도에서 살고 있던 나는 무화과는 이국적인 배경의 영화 속에나 나오는 나무였지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나는 나무라고는 알지 못했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의 주인공 ‘무이’처럼 나는 무화과나무를 품고는 녹색 그늘 아래 사진을 남겼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오랫동안 내 삶에 떠도는 상징이자 아름다움이었다. 나 외에 아무것도 없던 이십 대 시절, 내가 누구인지 여자인 내가 누구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그 시절, 나는 푸른 청무밭에 앉아 바다의 소금기가 두려웠던 ‘나비’였고 파파야 열매의 배를 가르고 그 하얀 알을 만지며 유희하던 ‘무이’였다. 해야 할 일과 필요한 일보다 꿈과 상징과 유리알 유희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특권이 있던 젊은이였다.


가난한 집의 딸이기에 남의 집살이를 하는 무이는 녹색 파파야로 밥반찬 생채를 만들면서 동시에 불룩하고 둥근 그 열매의 생김과 그 안에 가득한 유리구슬 같은 씨앗을 어르며 유희하였다. 놀듯이 살 듯, 살아가 듯 놀듯이 시간을 오롯이 소유할 수 있었다. 영화는 수태를 하고 빛나는 비단옷을 입은 무이가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황금빛, 햇빛을 머금고 생명을 품은 그녀는 더부살이를 하는 소녀에서 무르익은 여인으로 변모하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서른이 넘어 어느 시점, 나는 안목의 정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탐하고 소유하고 장식하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짚어보았다. 외국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마다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며 좋아하는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 앞에 서는 것이 과한 소비이며 굳이 미역국에 비싼 성게알을 넣어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은 나의 만족을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서른을 지나며 아이들은 셋이 되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 직업이 없어도 사교육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이 또한 직업과 같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자라남에 따라 엄마를 원하지 선생인 엄마를 바라지 않았다. 실업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등교한 뒤 남는 시간에 나는 뭘 하지? 내가 이십 대에 바랐던 것처럼 내 손으로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계절을 누리는 유희하는 삶을 살까? 산딸기가 나오면 잼을 만들고 계절이 바뀌면 커튼을 바꿔 달고 겨울이 되면 뜨개질로 옷을 만드는 삶? 아니지. 내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열정이 오롯이 나의 만족과 내 가정에 쏟아붓는 것은 단지 내 안목의 정욕 같았다. 죄의식을 느낀 나는 빵 만들기도 그만두고 재봉틀을 사고 싶던 마음을 접었다.


마흔이 넘고 맞이한 어느 오월에 친구가 글 하나를 보내주었다. 어느 시인의 노모가 아들에게 남긴 쪽지였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 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은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린다. 이는 나에 대한 소박한 관용이고 이해이며 삶에 대한 사랑이다. 그 노모는 배운 것 없이 평생을 농사와 자식 키우기로 사셨지만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 된장국을 끓이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를 얻어다 맑은 국을, 가을에는 살 찌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겨울에는 가을 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였다.


통영을 떠나기 전 보리새우를 사러 다시 서호시장에 들렀다. 수중의 현금이 딱 3만 원, 보리새우를 사고 재래 김을 사고 남은 돈은 7천 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무화과 묘목을 파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이거 얼마예요?” “만원” “제가 7천 원 밖에 없는데 작은 걸로 가져가면 안 될까요?” 할머니는 예쁜 놈으로 고르라 하신다. 세상이 나에게 주는 관용, 내가 나에게 허락한 유희다.


올 가을엔 턱없이 작아 보이고 잎만 무성하여 열매 맺지 못해 버려질까 위태로운, 아파트 베란다에 사는 무화과나무이지만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햇빛을 끌어오며 공을 들인다. 농밀하게 차오르는 과실이 나에게도 맺힐지, 언제쯤 일지 알지 못하나 나는 지금을 살고 있고 삶을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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