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침의 의식
오늘 아침, 당신은 어떻게 깨어났는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손이 나갔을 것이다. 침대 옆 테이블, 혹은 베개 밑을 더듬어 그 익숙한 직사각형의 물체를 찾았을 것이다. 스마트폰. 아직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화면을 켜고, 밤새 쌓인 알림들을 확인한다. 메신저 3개, 이메일 7개, 뉴스 알림 12개, SNS 반응 숫자들. 이 작은 숫자들이 당신의 하루 첫 감정을 결정한다. 많으면 안도하고, 적으면 불안하다.
욕실로 향하면서도 손에서 스마트폰은 떠나지 않는다. 양치질을 하는 3분 동안에도 뉴스 헤드라인을 훑고, 커피머신이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25초 동안에도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한다. 커피 없이는 머리가 깨지 않는다고, 우리는 농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정말 농담일까? 첫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는 안도감. 이것 없이는 불안한 그 감각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
"중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즉각적으로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폐인이 된 알코올 중독자. 패가망신한 도박 중독자. 범죄를 저지르는 마약 중독자. TV 뉴스의 선정적인 자막, 다큐멘터리의 어두운 조명 속 인물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특별히 나약하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혹은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그들'의 문제.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상이고, 그들은 비정상이라고.
하지만 잠시만.
어제 밤 11시, 자려고 누웠다가 "딱 5분만" 보려던 유튜브가 새벽 2시까지 이어진 기억.월급날이 되자마자 "이번 달은 아껴야지" 했다가도 온라인 쇼핑 카트를 채우고 있는 자신."오늘은 일찍 퇴근해야지" 다짐했지만 또다시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상.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찾게 되는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곧이어 찾아오는 자책감.
이것들은 중독이 아니라 그저 '습관'이라고, '스트레스 해소'라고, '일상'이라고 우리는 이름 붙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스펙트럼이라는 관점
중독을 이해하는 가장 큰 오류는 그것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중독자 vs 정상인. 문제 있는 사람 vs 문제없는 사람. 마치 높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중독은 선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무지개가 빨강에서 보라까지 경계 없이 이어지듯, 건강한 즐거움에서 병적인 집착까지는 무수한 단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그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서 있다. 다만 위치가 다를 뿐이다.
커피를 즐기는 것과 커피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것 사이.SNS로 소통하는 것과 '좋아요' 숫자에 하루 기분이 좌우되는 것 사이.쇼핑으로 필요한 것을 사는 것과 쇼핑으로 공허함을 채우려는 것 사이.
그 미묘한 경계는 언제 넘어서는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나는 이미 예전과는 다른 지점에 와 있다.
현대라는 배양접시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중독을 키우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는 없었다. 수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희소한 보상을 찾아 헤매도록 진화했다. 달콤한 과일을 발견하면 기억하고, 사냥에 성공하면 축하하고, 짝을 만나면 기뻐하도록. 그런데 지금은? 24시간 편의점에 가면 설탕 덩어리가 즐비하고, 스마트폰을 켜면 무한한 자극이 쏟아지고, 클릭 한 번이면 도파민을 분비시킬 모든 것이 배달된다.
우리의 뇌는 아직 이 과잉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석기시대의 뇌를 가지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 부조화가 만들어내는 틈새로 중독이 스며든다.
더구나 현대 자본주의는 이 취약성을 정확히 겨냥한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1초라도 늘리기 위해 최고의 신경과학자와 행동경제학자를 고용한다. 무한 스크롤, 간헐적 보상, 푸시 알림.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설계다.
게임 회사는 '재미'를 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파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식품 회사는 '블리스 포인트'라 부르는 황금 비율을 연구한다. 설탕과 지방, 염분의 완벽한 조합.
한국이라는 특수성
이 모든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압축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
압축 성장의 그림자가 압축 중독으로 이어진다. 빨리빨리 문화는 즉각적 보상을 추구하게 만들고, 성과 지상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한다. 체면 문화는 SNS에서의 과시를 부추기고, 집단주의는 개인의 고통을 숨기게 만든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OECD 1위인 것과 각종 중독 지표가 높은 것은 무관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압력을 견디기 위해 무언가에 기대고, 그것이 또 다른 압력이 되는 악순환.
질문으로 시작하기
오늘 하루, 나는 무엇 없이는 불안했는가?
이번 주, 나는 무엇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는가?
이번 달, 나는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썼는가?
올해, 나는 무엇을 끊으려다 실패했는가?
이 질문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미 스펙트럼 위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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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손 안의 블랙홀팬텀 진동 증후군. 의대생 68%가 경험했다.
제목: 중독 스팩트럼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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