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제휴인가, 일방적 통보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엔 '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전광판처럼 깜빡거렸다. 이건 단순히 예금 잔액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흔 중반, 아이 학원비와 노후 준비, 그리고 끝없는 대출 이자 사이에서 '나의 턱'을 위해 천만 원을 꺼내 쓰겠다는 선언은 일종의 반란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저녁 공기가 평온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알까? 지금 내 입안에 천만 원짜리 설계도가 그려졌다는 걸.'
저녁을 먹는 내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숟가락이 식기에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프레젠테이션 순서를 짰다.
감성 호소: 나의 어린 시절 별명(주걱턱 관련)과 그로 인한 오랜 결핍.
의학적 명분: 이건 미용이 아니라 노후의 '저작 기능'과 턱관절 건강을 위한 투자라는 점.
경제적 타당성: 36개월 할부로 나누면 한 달에 약 28만 원꼴. (하루에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아니, 두 잔은 안 마셔야겠지.)
"여보, 나 오늘 치과 다녀왔는데."
드디어 운을 뗐다. 남편의 시선이 TV에서 나에게로 옮겨왔다. 나는 최대한 진지하고, 약간은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원장 선생님의 전문성과 모니터 위의 '노란 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대망의 피날레.
"그래서... 비용이 천만 원 정도 든대. 3년 동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천만 원이면 우리 집 차를 바꿀 때 보태거나, 아이 대학 등록금으로 쟁여둘 수도 있는 큰돈이니까.
"천만 원? 와... 교정이 그렇게 비싸?" "응, 나이가 있어서 근육 이완 주사도 맞아야 하고, 장치도 특수하대. 근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턱관절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이건 사실 나의 의견...)."
나는 '건강'과 '노후'라는 키워드를 필사적으로 밀어 넣었다.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거 예전부터 진짜 하고 싶어 했잖아. 거울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지금 해서 남은 인생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겠어? 근데... 그 병원 진짜 믿을만해?"
역시, 남편은 나의 콤플렉스를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초등학교 때 별명까지 꺼내지 않아도 그는 내가 왜 이 나이에 치과 의자에 누우려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니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남편의 허락보다 더 무서운 건 나 자신과의 계약이었다. '너 진짜 한 달에 30만 원씩 더 벌 자신 있어?'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부업을 해야하나....? 턱은 뒤로 물러날 준비가 됐는데, 내 지갑은 앞으로 나갈 준비가 안 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제 못 물어본 '분납'과 '현금 할인' 리스트를 들고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제 도망은 끝났다. 진짜 전쟁의 시작이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