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러닝 기록
나는 요즘 인생 처음으로 자발적 달리기를 하고 있다.
러닝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고, 러닝코어라는 수식어로 예쁜 러닝복들이 잔뜩 내 인스타그램을 도배할 때쯤 내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러닝을 하는 게 보였다.
그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러닝 라이프도 막을 열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내 육체로는 즐길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리기라는 것은 내게서 멀리 떨어진, 약간의 두려움과 동경의 마음이 느껴지는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너무 속이 답답할 때면 아주 짧게라도 ‘숨이 터지게 달리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고, 충동적으로 짧은 달리기를 했다. (아주 가끔, 아주 짧게)
달리기에 대한 욕구와 로망을 처음 심어준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많은 러너들이 읽지 않았을까? ㅎㅎ)
오래전에 읽었던지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는 정말 꾸준하고 규칙적인 러너였고 책에서 그는 달리기를 하며 느끼는 것, 달리기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많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일임에도 끝까지 해내는 그의 인내심, 끈기, 성실성 이런 것들이 달리기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도 그런 강함과 단단함을 지닌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물론 이 둘은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건강함은 매일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하루하루 꾸준하게 삶을 지탱하는 작은 것들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 그냥 하는 힘.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은 참 주변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래서 지금 내가 하지도 않던 웨이트를 매일 하고, 야외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가장 큰 요인은 내 욕구와 의지다. 거기서 스타터의 역할을 한건 주변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훨씬 더 쉽게 하게 만든다.)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 러너이지만, 나는 이번에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놀랬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달리기를 싫어했고 잘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달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달렸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잘 달리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훨씬 잘 달렸다.
그동안 러닝머신에서 했던 인터벌과 천국의 계단을 오르내린 덕분인지 많이 힘들지 않고 기분도 좋았다.
한 번만 뛰어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앞으로 계속 달리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뒤로도 러닝화를 신고서 여러 번 뛰었는데 기록에 욕심을 내며 달리다 보니 많이 고통스럽긴 했다. 그 시간을 견디고 견디며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할 수 있다. 일단 한발 내딛자’ 하는 말을 많이 했다.
고통이 느껴지면 내가 지금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묻고, ‘이렇게 힘듦을 느껴버리면 내가 앞으로 안 뛰고 싶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서면 다시 달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다.
나는 어쩌면 생각보다 나를 잘 모르고, 뭐든 해봐야 진짜 알게 된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달리기의 시간을 쌓던 중 나는 제주도 여행에서 성산일출봉까지 올레길을 따라 달리게 되었다.
늦은 밤의 어두운 길이였으며 처음 가는 길이라 불편하게 지도를 보며 달려야 했다.
게다가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달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짝꿍을 먼저 보내고서 천천히 그 어두운 길을 혼자서 달려 나갔다.
그날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를 한발 한발 내딛으며 너무 힘들면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닷바람을 따라 향기가 훅 퍼져왔다.
길 옆 돌담에는 허브계열의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래서 정말 정말 향긋한 허브냄새와 꽃냄새가 바닷바람을 따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행복함을 알아차렸다.
너무 소중한 순간이고 경험이었다.
지금을 아주 오래 기억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달렸고 주변을 느끼며 나아갔다. 어렴풋이 보이는 식물의 형체와 색감, 그리고 꽤 강하게 닿아오는 냄새.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감각에 집중하며 달려 나갔다.
많이 즐겼던 시간이었다. 아마 처음으로 그렇게 즐기며 달렸을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달리기의 형체가 조금 뚜렷해졌다.
내 한계를 극복하고 인내하며 빨리 달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내가 오래 지속하고 싶은 달리기는 명상도 하고 주변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달리기다. 그래서 나는 아직 혼자 달리는 게 조금 더 좋다.
곧 다시 한번 초록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그것들을 마구 감상하며 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