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똑, 딱」)
삶의 시작은 관계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출생과 동시에 부모⦁자식 관계가 시작되고, 한 해 두 해 연령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관계의 일원으로 다양한 관계의 시작을 경험하게 된다. ‘관계’란 나를 벗어나 상대를 수용하고, 깊게는 생각과 감정까지도 공유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의존성의 성격을 띠게 된다. 지지하고 의지하는 한편, 혼자일 필요가 있을 때 혼자일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의존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존재를 더 이상 나만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워진다면, 세상이 나의 속성 안에 누군가를 포함하여 설명하려 든다면 이러한 의존성의 관계는 불행이 되어버린다.
의존성은 다른 말로 ‘상대에 의해 규정되는 나’로 설명할 수 있다. 평등한 두 주체가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는 동안 이 세상의 중심이 점점 상대로 수렴되고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없으면 나도 사라지는 그야말로 관계에 함몰되는 관계.
그림책 「똑, 딱」은 관계에 함몰될 뻔한 두 마리 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계이거나 스냅단추 채우는 소리만이 연상되는 ‘똑, 딱’이, 등장하는 두 마리 새의 이름인 것은 그림책을 읽는 내내 번역 작가의 뛰어난 재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계소리가 똑딱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스냅단추가 암수가 맞물려 똑딱 채워지는 것처럼 두 마리 새의 밀착된 관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면서도, 표기할 때는 사이에 쉼표를 넣어 독립적 개체임을 표현하고 있다. 관계의 속성을 이처럼 잘 드러내는 제목이 있을 수 있을까!
똑이와 딱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서로에게 가장 의미 있는 존재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꽃들과 푸르른 수목, 다른 동물들엔 채색을 허용하지 않는 그림에서 이는 더 부각되어 두드러진다. 오로지 똑이와 딱이만이 파란색과 하늘색으로 채색되어 등장한다. 이러한 견고한 관계성은 딱이가 똑이 아닌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와해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관계에 함몰될 뻔한 주인공은 똑이 혼자인 것이다.
딱이는 똑이와의 시간 외에 재미를 느끼고 도전감을 불러 일으키는 놀이를 발견하고는 심취하게 된다. 하늘을 나는 놀이, 이것이야말로 신나고 흥미롭고 자꾸 시도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딱이의 성취 욕구이자 목표이다. 한편, 똑이는 여느 때처럼 딱이와의 시간을 즐기고자 친구를 찾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어긋남에서 관계의 불안함을 감지한다. 다른 동물들에게 친구의 존재를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이를 더 애타게 하고, “딱이 없는 똑이는 본 적 없어! 넌 누구야? 넌 누구냐고?”라고 되묻는 개미들의 물음에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딱이가 없어도 난 똑이라고!” 외치지만, 여전히 딱이가 없어 슬프고 허전한 똑이다.
탄탄한 관계 안에서든, 와해되어 관계가 사라지든 여전히 내가 나일 수 있고, 나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면 상대의 부재로 인해 망연자실해지는 슬픔을 잘 다독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의미를 부여할 대상이 세상에 유일무이하지 않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
다행히 똑이도 딱이 외에 새로운 의미 세계를 찾게 된다. 딱이의 시야가 하늘로 향하고 비행하는 새들과 어울리듯, 똑이도 땅 위를 뚫고 나온 매력적인 식물에 시선을 돌리게 되고, 이 둘의 의미 세계는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된다. 똑이와 딱이는 친구의 또 다른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관계를 더욱 잘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반부에서 똑이가 식물에 물을 주고 딱이가 하늘을 나는 그림이 전반부에서처럼 두 주인공에게만 채색이 되어 있는 장면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서로 다른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이며 그 관계성이 탄탄해졌음을 느끼게 된다.
적절하게 타인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킬 수 있고, 타인과 연결되지 않고도 설명될 수 있는 내가 된다면, 그러한 관계 속의 나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건강한 관계란 상대를 구속,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개개의 자유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의 속성을 우리는 많은 관계들을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서히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그러한 깨달음을 미리 살짝 우리에게 귀띔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