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 대하여

by 이신미

나는 나이듦이 참 좋다. 예순 여섯 번째 생일을 맞으며 이 문장을 쓸 수 있어 좋았다. 치열하게 살던 젊은 날에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노인들의 무채색 안정감, 세상을 향해 투명하도록 담담한 그 무심함의 경지, 그런가하면 그 앞에서 웬만한 것은 아무것도 숨길 수 없도록 남의 사정을 꿰뚫는 연륜과 직감. 나 자신도 그런 모습에 가까워 가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 시간과 함께 가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나이듦의 이모저모를 드디어 나도 세세히 몸소 겪으면서, 오오, 이것이었어? 아,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거구나, 정말 그렇네. 옛말들을 몸으로 경험으로 깨닫고 알아 가는 것이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소풍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세상에서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다음역을 출발한 느낌이랄까.


노력하거나 의도해서 이른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누가 보아도 나이든 사람이다. 미수 美壽, 예순 여섯은 요즘 용어로는 ‘젊은 노년’이자 노년기에 진입한 것으로 공히 인정된다. 조선시대에도 이 나이때부터는 공직에 임명하지도 않았다는 기록을 보아도, 이제는 앞에 나설 일 없는 노년이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거의 자신과 동일시하며 일했던 직장에서는 작년에 정중하게 퇴임식을 해 주었고, 직장에서 제공하던 모든 수입과 계정과 편의는 그와 함께 끊겼다. 그 대신 대중교통 무료 승차권이 나오고, 경로석에 앉아도 뭐라할 사람이 없다. 지하철에서 단정하게 생긴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해 주던 첫경험의 느낌이란. 각종 입장료 면제 또는 할인의 대상자이며 노령연금을 받을 첫번째 자격을 갖춘 자가 되었다. 공짜로 주는 것을 받는 나이라 공주님이라고 한다던가. 사회와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어르신’이다.


그러나 아주 공짜는 없는 법, 알아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있을 터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계층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는 ‘시니어senior’는 라틴어의 ‘연장자’ 라는 뜻에서 시작되었지만, 여러 세대와 문화를 거치며 단지 나이 많음뿐만 아니라 상사, 선배, 권위자 등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나이 제한이 있어 많은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라도, 잘 할 수 있고 하고싶은 일 앞에서도 주춤한다. 어른다운 노인으로 살려면 말하기보다는 경청하고,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도 사양하고 양보하며,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새로 배우며, 기존의 생각을 바꾸기도 해야 한다. 주도하기 보다는 반응하되, 그 반응은 늘 반 보 물러나 스을쩍 웃는 것에 그칠 수 있는, 그러고도 조금도 아쉬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또한 나이든 사람의 미덕이지 않던가. 무엇보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와 같은 새로 나온 격언도 남의 말인 것 만은 아님은. 말없이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는 노년, 자연을 닮았다.


이처럼 나이듦은 나를 지워가며 물감처럼 세상에 휘휘 풀어서 스며들도록 하는 과정이다. 스며들고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 배어 들기까지 나를 놓는 과정들. 집에서는 자신을 포함해서 살아있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돌보며, 외출해서는 조용히 비껴 서서 마음으로 성원해 주는 풀어짐. 나를 풀어 그들에게 스미게 하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를 닮은 자손을 남기고 안녕을 연습하는 것도 물감처럼 나를 풀어헤쳐 훌훌 자연으로 돌아가는 준비다. 나이 들어가며 자연을 보는 요즘은 산 것과 죽은 것, 생과 사의 경계가 점점 희미하고 무의미 해진다. 살아 있음도 죽음도 자연에 수렴되어 저렇게 무구하게 되는 거구나.


존재는 다 나이가 든다. 나무도 나이 들고, 산도 돌도 호수도 나이가 든다. 쇠약해진 몸과 외로운 시간의 고통도 만만치는 않으리라. 혼자서 가야만 하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 이생에서의 존재가 소멸하는 지점으로 성큼 다가가는 두려움도 서늘하다. 그러나 시간의 뒤통수를 보며 삭아만 가는 게 아니라 시간과 손잡고 세상을 구경하며 함께 섭리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임을. 죽어서 흙이 되고 물이 될 때까지 나이든 사람들은 다 그런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소설 레미제라블의 끝부분에 빅토르 위고는 마리우스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노년을 예찬한다. “은총이 주름 사이에 스며들 때 노년은 더없이 멋있는 것. 만개한 노년에는 뭔지 모를 새벽의 빛이 있다.” 패기와 객기 팽팽하던 젊은 날 경이롭게 바라보았던 노인들의 담담함이야말로 그런 새벽빛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영랑호 그윽한 물에 내 소풍의 일기 한 페이지를 또 풀어 본다. 시간의 여행에 나를 물감처럼 풀어 조금 더 깊어진 색을 물들인다. 늘 궁금히 여겨온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는 풀꽃의 의미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예순 여섯 번째 생일 아침, 나는 남몰래 발견한 이 비밀 때문에 혼자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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