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란 건 그렇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이 딱 하루만에 결정되는 것.
그래서 언제나 수능을 잘 봤냐고 물어보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래서 항상 묻지 않는 것을 택하지만)
고생했다고 선뜻 말을 건네기에도 그 말이 내 마음의 무게를 충분히 담지 못할 것 같아 말을 오래 고민하곤 한다.
내가 수능을 봤던 날은 몹시 추웠다. 사실 수능을 본 것도 꽤나 오래 되어서 이제는 그날의 기억이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다. 기억나는 건 내 수능은 일주일 간 연기되었고, 수능을 보는 날 눈이 새하얗게 쌓여있었다는 사실.
아침에 난방을 틀어두지 않아 시험을 보는 교실은 매우 추웠고, 나는 손난로를 챙겨갔지만 괜히 부정행위 오해를 받는 게 두려워 손난로를 책상 위에 꺼내 놓지 않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국어 영역 시험을 봤다.
국어 시험이 끝난 이후에야 따뜻해진 교실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잠시 들었으나 부질 없는 일인 걸 깨달았고, 나머지 시험은 어떻게든 마쳤다. 시험에 대해 추가적으로 기억이 나는 점은 처음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뀐 영어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생활과 윤리 공리주의 문제에 복수정답 처리가 되지 않을까 혼자 고민했다는 점이다. 아, 사회탐구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이 미뤄져 만점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새삼 떠오른다.
수능이 끝난 직후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려는 것을 눌러두었다. 어차피 다시 고민해도 되돌릴 수 없으니, 밀려오는 여러 감정을 삭히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허무함'이었던 것 같다.
'오늘 단 하루를 위해 지금까지 공부했구나'
'그런데 평소보다 못 했는데...'
마음이 허했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위축되었다.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게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마음속 이유 모를 답답함이 커졌고, 대학에 갔지만서도 어딘가 아쉬운 마음과 열등감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대학 초반은 좀 아쉽게 흘려보내기도 했다.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길 자격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후,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기에, 오히려 열등감을 가졌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자 노력했고,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고민하곤 했다. 과거의 나보다 1cm라도 나아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1cm가 쌓이면 한 발짝을 넘고, 보폭을 넘고, 언젠간 내 키를 뛰어 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물론 주저앉아 쉬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주로 앞을 바라보며 이전보다 조금씩은 나아갔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자, 그리고 후회 없는 대학 생활을 하고자, 최대한 많은 것들을 했다. 언제나 좋아했지만 미뤄두었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교내 대중가요 동아리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꿈꿔왔던 교사라는 꿈을 간접적으로 이뤄보고자 교육기부 동아리에서 교육기부를 홍보했다. 대외 동아리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들었고, 그동안 좁은 물에서만 놀았나 싶어 시간을 내어 많은 곳을 다녔다. 진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동기들과 선배들을 인터뷰해 책도 내보고, 진로 관련 강의도 듣고, 실무 체험도 해보고…. 그동안의 내 인생에서 가장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다.
대학에서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가장 '나다운 나'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두렵기도 하다. 막학기만을 남긴 상태로, '취업준비생'이라는 머릿말을 달아야 할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공자 우대'라는 단어에 내가 포함되지 않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는 참 멋지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이런저런 잡념이 많아지기는 한다. 그럼에도 스물다섯을 앞둔 지금의 나는 열아홉의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기에, 그리고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본 바가 있기에, 잘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위안을 준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혼자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내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지난 고민이 된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다양한 이들이 걸어간 길을 돌이켜 보며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혹시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부끄럽지만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의 내가 열아홉의 내게 단 한 마디의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나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19년 간 수능이라는 목표 하나를 보고 달려온 학생들에게 수능은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세상은 넓고, 저마다의 인생은 길고, 또 제각각이다.
당신이 지금껏 해온 모든 고민과 노력은 결국 언젠가, 더 나은 당신을 만들 것이다.
지친 마음을 잠시라도 가다듬길 바라고, 결과에도 모든 운이 따르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마치고자 한다.
당신의 그 모든 노력과 마음을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동안 정말 고생많았다는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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