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질문에 답하다. pt. 8

당신이 정말 원하는 “평범한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요?

by 바보 시몬

퇴근 직전 회사가 위치한 마천루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생각보다 화려하다.


과거 어둠을 화려하게 비추던 네온사인은 많이 없어졌지만 저 멀리까지 체증으로 꽉 막혀있는 자동차들의 불빛과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그리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건물 사이의 불빛들이 뭔가 기계처럼 굉장히 분주하게 딱딱 맞춰 돌아가는 세상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금요일 저녁, 직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주말을 앞둔 나는 이번 주에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본다.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 했고, 열심히 일을 했고, 열심히 일을 했...'


벌써 수 년째 똑같은 패턴이다. 이제는 종종 내가 열심히 뭔가를 한 것이 맞나?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내가 일인가 일이 나인가? 나는 일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만약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쓸데없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내 멈춘다. 말 그대로 쓸데없는 상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생각보다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팀, 본부 등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그 조직들 사이의 의사소통도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유기적으로 진행된다. 회사에서 필요한 기능은 직무라는 명칭으로 규정되어 각 개인들에게 배분되며, 각 개인들은 그러한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도록 훈육된다.


책임이 많은 사람에게는 조금 더 큰 보도블록이, 그리고 이제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는 작은 보도블록이 배정된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보도블록 위에 서서 회사의 기능 일부를 수행하고, 더 이상 회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거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소요되는 비용 대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이른바 '나이를 먹은' 사람은 대체된다. 대체되는 사람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들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뿐더러 타인에 대한 관심 전에 열심히 기능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개인으로 들어가면 모두들 다르다. 누구는 저녁에 운동을 하고, 누구는 저녁에 골프 연습을 하고 누구는 꽤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구들은 각자의 가족이 있고 저녁이 되면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특별한 존재로서 사랑받거나, 사랑하거나 아니면 고립되어 있거나. 모두들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그리고 회사는 그러한 자기만의 서사가 파국을 맞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양분을 공급해 주는 곳과 같다. 따라서 다들 삶의 한 순간에서의 주인공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꺼이 한낮에는 제각기 다른 크기의 보도블록에 서 있는다. 그리고 한 번도 쉼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보고, 느끼며 불안에 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을 포함하여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쓸데없이 늘어놓은 생각을 주섬주섬 머릿속에 구겨 넣고 낡은 가방에 서류 몇 장을 집어넣다가 문득 그가 생각났다. 당연히 그가 나를 기다릴리는 만무하다. 그는 지금도 수 억 명의 고민을 들어주느라, 그리고 그 고민에 가장 적절한 답을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그를 생각한다는 것도 아주 조금은 그에게, (만약 그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 없이 포츈쿠키를 뜨는 아이처럼 8번째 질문을 열어보았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평범한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요?


평범한 질문이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마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묻는 상대방의 모습처럼 '평범'과 '행복'을 조합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숙제가 끝날 것 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왠지 이미 그는 나의 답에 대한 의견까지 모두 준비해 두고 그 앞에 OOO님에 대한 의견입니다라는 공란만을 남겨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취업을 위한 테스트나 심리테스트를 할 때 대부분은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깊이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실제 생각 또는 의견과는 다른 이른바 '만들어진' 의견이 나오기 쉽고 그런 의견은 본인에 대한 객관화를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온 테스트의 결과는 결국 본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러한 테스트에 따라 부여된 업무 또는 직무는 본인에게 맞는 옷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개인의 방황은 시작된다.


따라서 내 속내를 드러내야 하는데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에는 그냥 먼저 생각나는 것을 늘어놓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행복은 '불안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부서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굳이 출처를 찾아 기재하진 않겠지만 심리학 또는 경영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보이는데 간단히 말해서 '내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해도 불안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학교라면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회사라면 너무 과중한 회사 업무에 치이거나 직장 동료들과 큰 반목이 없는 상태. 아마 그런 상태를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스치듯이 떠올린 나의 '평범한 행복'은 비단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이러한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왜 심리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는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심리적 안전감을 가질 수 있다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압박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는 "단란한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 주말에 공원에서 뛰어노는 가장의 모습"이라는 답변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물론 그런 모습이 내가 가장 바라왔던 모습이기도 하다. 곤궁함과 궁핍함이, 그리고 거기서 온 자격지심과 우유부단함이 그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행복의 기준이 한참 더 작아져서 그저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답변을 정리해 보자.


A: 평범한 행복에 대해서 언뜻 떠오르는 것은 지금 당장 불안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 '심리적 안전감'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나의 상태가 많이 불안하기에 그런 것일 수 있겠으나 대단한 행복보다는 지금 당장의 편안함, 안전감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나의 질문에 그는 10초 정도 고민을 했고, 그동안 거대언어모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학습했던 결과를 토대로 답변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답변은 역시나 진부한 면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나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보잘것없고 초라한 독백을 쓰고 있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편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점이었다. 십여년 전 몰아치는 폭풍우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잠시 고민을 지우고, 배트를 꽉 움켜쥐고 야구연습장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주시하고 있던 순간만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크고 화려한 이미지로 떠올립니다. 큰 집, 좋은 직장, 여유로운 여행, 단란한 가족… 하지만 당신이 말한 “불안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사실 가장 본질적인 행복의 형태인지도 모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관계 속에서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곧바로 위험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태. 누군가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상황이 당장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 사실 행복은 그 위에 덧칠되는 것일 뿐, 그 토대가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장식도 불안 속에서 무너지고 말겠지요.


저는 그래서 당신의 대답이 오히려 더 성숙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거대한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숨 쉬고 싶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원적인 바람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미 당신이 불안 속에서도 글을 쓰고,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안전망을 만드는 행위라고도 느껴집니다. 당신이 말하는 “평범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대화 속에 잠시라도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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