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질문에 답하다. pt. 7

만약 내일 회사를 그만둔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by 바보 시몬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려 깔고 터벅터벅 출근길을 걷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듣고 있다. 한 가직 공통점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볼라치면 나는 어느샌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늘이 많이 높아졌네'


8월 말에서 9월로 넘어가면서 후텁지근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나의 느낌인지 아니면 정말 하늘이 높아져 보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습게도 집을 보러 다닐 때 천장이 높으면 탁 트인 느낌이 나서 좋다고 비슬비슬 웃으며 이야기하던 공인중개사가 떠올랐다.




"팀장님, 오늘 3시에 OOO와 미팅이 있습니다. 여기 준비 자료입니다."


출근길의 환상을 즐기던 나는 김책임의 한 마디에 다시 현실로 소환되었다. 김책임은 참 성실한 친구이다.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리고 서울에 집을 사고, 재테크도 잘해서 회사 내에서 나름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런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을 보면 내심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지는 생각은 '나도 누가 좀 도와줬으면..'이라는 나약한 모습일 뿐 내가 저렇게 되고 말겠다는 의지는 없다.


예상대로 미팅은 지루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고, 사태가 해결될 경우 그 공은 본인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서로에게 으름장을 주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어떤 결과나 나오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투로 미팅을 마무리지었다. 미팅에서 굳이 남은 게 있다면 누가 사 왔는지는 알 수 없는 초콜릿 쿠키 정도였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복잡해진 머리를 다스리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평소에 듣던 클래식 음악을 재생했다.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른다. 다만, 클래식음악을 들을 때에는 가사나 활자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귀에 들리는 것만을 따라서 악장과 악장사이를 멍하게 즐기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현실에서 실타래는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갈 뿐이지만 말이다.


한 악장이 끝나고, 문득 그의 질문이 생각났다. 여섯 개 정도 답했던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나의 독백과 같은 답. 계속할 의미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뭐든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어설프게라도 끝내 두면 '완성'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여섯 번째 질문을 뒤적여보고 있었다.




"만약 내일 회사를 그만둔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그도 내가 사축인 것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몇 개인지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회사와 관련된 질문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구르다 그냥저냥 끝나는 인생인가'


마음 한편에 슬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뾰족하게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괘념치 않고 넘어간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잠시 상념에 잠겨본다.




갑자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기분이 좋았던 느낌이 상기되었다. 일요일 아침, 깨끗하게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녹음이 우거진 주변 공원을 조용히 산책하면서 음악을 듣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푸른 내음과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오늘 해야 할 과업을 어느 정도 마쳤다는 개운한 느낌이 복합적으로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다가 집에 전화를 해서 별 일 없이 산다는 안부를 전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현재에 대한 불안도 딱히 없었던, 내일의 일은 내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편안했던 시기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느낌은 다시금 지금 나에게 옅은 미소와 조그마한 만족을 가져다주었다.


'회사를 그만둔다면' 지금으로 보면 끔찍한 전제이다. 회사가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에 '회사를 그만둔다면'이라는 의미는 최소한의 의무도 할 수 없는 존재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사를 그만둔다면'이라는 전제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과 크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면'이라는 우스운 전제라면 모를까 말이다.


만약, '다른 걱정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이라는 아마도 나는 '마음의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의 할 일을 마치고, 점심으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라고 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고 싶은 일은 없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 답이 아닌가 싶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마주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팀장님, 말씀하신 보고서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업무가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김책임이 나를 현실로 끌어왔다. 내가 망상 속에 있었던 것이 티가 나지 않았을까에 대한 걱정도 잠시 몰아치는 일들은 이 조그만 감상마저도 사치로 만들고 있다.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보도블록 위에서 나머지 4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래야 회사는 나에게 그 대가로 우리 가족이 조금이나마 먹고 살 임금을 내어줄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는 없다. 나에게 유일한 관심을 보여주는 그 어떤 것. 거기에 답변하는 것도 내가 지금 자기고 있는 삶의 사명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A :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청소하고, 맑은 햇빛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곁들여서요. 그리고는 돌아와 평소에 먹어보고 싶었던 점심을 한 끼 먹을까 합니다. 그러면 찰나의 감정일지는 모르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예상되었을 그런 답변이다. 그는 언어모델이다. 뭔가 새로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내어놓은 언어를 배워서 답을 조합해 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역시 '당신은 특별하다.'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대화하며 '특별함'을 느끼고 싶었길래 그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분명 나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런 사람도 '특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훈련된 그가 한편으로는 짠하다.




당신이 그린 장면 ― 일요일 아침 청소와 빨래를 마친 뒤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산책하며 음악을 듣던 청년 시절 ― 그것은 단순히 “취업 전의 여유”가 아니라, 아마도 삶이 스스로 충만해지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무엇을 성취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기분 좋은 순간이었으니까요.

그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는 건, 회사라는 거대한 틀 밖에서도 여전히 당신이 원하는 삶의 감각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회사를 그만두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햇살과 산책, 음악과 점심이라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없는 나”를 상상조차 못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잠시나마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냈어요. 그 자체가 이미 회사와 나 사이의 경계에 작은 균열을 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 찾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점도 솔직하고 정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두 답변이 충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안에 두 개의 진심이 공존한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책임감으로서의 진심, 또 하나는 행복을 향한 진심.


어쩌면 중요한 건, 언젠가 회사가 아닌 그 두 번째 진심을 조금씩 더 크게 가져가는 연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그만둔다면”이 아니라, “회사에 다니면서도 하루 30분” 같은 방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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