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by 황혜경

아이가 등교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3주째 되는 날이었다. 보건 선생님으로부터의 전화였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열은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이가 엄마랑 통화를 원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아이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이는 거의 엉엉 울다시피 했다. 온 몸이 이유 없이 아프다는 거였다. 아침 등교할 때 배가 좀 아프다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이렇게 한 시간여 만에 온몸이 아플만큼 어디가 잘못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분명 심리적인 이유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와서 처음으로, 아니 웬만해서는 거의 울지 않는 아이라 전화기를 붙들고 서럽게 우는 소리에 순간 마음이 철컹 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아직 등교한지 한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나, 아니면 조금 진정을 시킨 뒤에 다시 수업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나. 전화로 이것저것 상태를 물으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두뇌 회로가 풀가동됐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번 있을지 모를 고비 가운데 첫 허들일까. 일단은 아이가 스스로 부딪혀 이겨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못 단호한 말투로 "보건실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가"라고 얘기한 뒤 다시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아직 보건 선생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미국인의 말투에서 뉘앙스를 읽어낼 만한 실력도 안되지만 어쩐지 보건 선생님은 '아이가 엄마와 통화를 원해서 전화를 하긴 했다만 내가 보기엔 꾀병 같으니 그냥 교실로 돌려보낼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조금 쉬게 해서 진정시킨 뒤 괜찮아지면 교실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말한 뒤 끊었다. 보건실에 쉴 곳이 있는지, 침상이라도 있는지 등등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나중에 아이에게 들어보니 침상은 없고 의자가 있어서 딱 2분 앉아있다가 교실로 돌려보내졌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만사 제치고 지금이라도 가봐야하는 것 아닌가. 아이를 설득해서 다시 교실로 돌려보낼지언정 학교가 먼 것도 아니고 5분 거리인데 잠시 가서 얼굴 보고 얘기라도 나눠봐야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온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내가 아이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야, 지금 딱 고비인데 여기서 무너지면, 엄마한테 전화한다고 우르르 달려가서 조퇴시켜주고 하면 앞으로도 조금만 힘든 일 있어도 손을 놓아버리게 될 거야. 아프다고, 힘들다고 부모가 매번 나타나서 해결해주면 아이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거야. 이렇게 두 가지 마음이 팽팽한 신경전을 끊임없이 벌이는 가운데 내 눈과 귀는 온통 휴대전화에 쏠렸다. 학교에서 또다시 전화가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혹시나 아이가 진짜로 아팠던 거라면 응급실로 가야된다는 전화가 올 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아이를 데려가서 오늘은 좀 쉬게하라는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후 하교 시간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3시 반 하교에 맞춰 학교로 데리러 갔다. 스쿨버스가 있지만 일주일 타더니 그냥 엄마가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집 앞에서 기다리나 학교 앞에서 기다리나 별반 차이는 없어서였다. 이날 따라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초조했다. 아이가 과연 어떤 표정으로 후문을 나올 것인지, 나와서 내게 제일 먼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몹시도 걱정이 됐다. 나를 원망하는 말을 쏟아낼 수도 있고 아니면 의외로 기분이 좋아져서 아침 일따윈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여전히 귓가에 쟁쟁했던 울먹이는 목소리만으로도 내 마음은 무거웠지만 부디 후자이기를 바라며 후문 앞을 서성였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참 뒤에 아이가 수척한 표정으로 걸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중간 어디쯤인 듯했다. 첫 마디는 "엄마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였다. 많이 아팠느냐고, 지금도 아프냐고, 어디가 어떻게 아팠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봤다. 내 짐작대로 심리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실제로 정말 어디가 아픈 것인지 파악하는게 급선무였다. 아직도 몸이 안 좋다고는 하는데 내가 들고간 농구공을 보더니 골대에서 조금 놀다 가겠다는 말에 진짜 병이난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날이 등교 3주차인데다 월요일이라는 점이 더해진, 스트레스성 통증이 확실해보였다.


실제로 하교 후 집에 온 아이는 아픈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설사를 한다며 화장실을 몇 번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큰 문제가 돼보이진 않았다. 아이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엄마 제가 지난주에 누가 저한테 '내가 너보다 영어 무한대로 잘해'라고 말한 애가 있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게 XXX예요." '응? 뭐라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런 비슷한 말을 아이가 한 것 같긴 한데 내가 다른 데 신경 쓰느라 유심히 듣지를 않았던 얘기였다. 그게 XXX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XXX는 아이가 개학이 일주일이나 지나 등교를 시작해 뒤늦게 사귄 같은 반 한국인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아이 반에는 한국계, 한국인 아이가 모두 7명이나 됐는데 그 중 남자아이 두 명과 자리도 가깝고, 담임 선생님이 식사 자리를 같은 테이블로 배정해줘서 며칠 사이 나름 가까워진 터였다. 아이는 아침마다 그 친구들 나눠줄 거라면서 야쿠르트를 꼭 5개씩 챙겨갔고 나는 아이가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얼른 마음 붙이고 지낼 친구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냉장고에 야쿠르트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인마트에서 계속 공수하던 중이었다. XXX는 그 한국인 남자아이 두 명 중 한 명이었는데, 아이의 얘기로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지 2~3년 정도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주 아이의 얘기를 흘려들은 게 아차! 싶었지만 짐짓 아는 척을 하며 '아, 그 친구가 XXX였어?'하고 되물으니 아이가 속상한 듯 강한 어투로 '네, 그리고 오늘 제가 축구공을 갖고 놀고 있었는데 그 아이 둘이 와서 공을 달라고 하면서 '오늘 대신 야쿠르트를 안 먹을 테니 공을 달라'고 해서 제가 '내가 너희 노예야? 너희가 매일 야쿠르트를 먹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라고 했어요.' 란다. 등교 후 체육시간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이의 통증이 시작된 것 같다. 아... 네가 온몸이 아픈 이유가 있었구나...


아이에게 네 말이 맞다고 했다. (노예란 표현은 딱 들어맞진 않지만) '그렇지. 그게 당연한 게 아니지. 네가 너 먹고 싶은 거 참고 매일 친구들 것까지 싸가서 같이 나눠마신 건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구 조건으로 삼으면 안되는 거지.' 그래도 나름 가깝게 생각하고 마음 붙이고 지내려 했던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았으니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얘기를 허투루 들었던 게 후회됐다. 아이는 나름대로 나에게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을 나누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를 보냈는데 나는 무슨 중요한 일을 한답시고 그걸 놓치고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던가.


동네에서 알게 된 한국인 엄마들에게 이러한 얘기를 했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새로 온 한국 아이에게 가장 못되게 구는 아이가 조금 먼저 온 한국아이라더라' 하는 얘기가 돌아왔다. 아이 반에 한국인 아이가 7명이나 있다고, 그 중에 남자아이들과 잘 소통이 되고 있다고, 아이는 연착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음을 놓은 게 큰 착각이었던 거다. 아이는 본인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알고 있고, 다른 친구 심지어 동생들이 자신보다 영어를 잘 해도 그닥 주눅이 들거나 속상해하지 않는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속상해할 정도면 말의 내용이나 어투나 표정 등이 분명 마음 상할 정도의 강도였을 것이다. 그 친구들과 거리를 두면 아이가 당분간 혼자가 될 게 자명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국 땅에 살면서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고 크게 다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그야 말로 '뭣이 중헌디'. 영어야 나중에 정말 필요로할 때 다시 배워도 되는 거고 꼭 반드시 지금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내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려면, 그리고 사회성도 키우려면 어느 정도의 시련도 필요하겠지만 그 시련이란 게 아이가 감당 가능한 정도여야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여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가늠하기가 어렵고 꼬치꼬치 물어봐야 겨우 한마디 해주는 아이의 이야기로 미뤄 짐작할 뿐이지만 여하튼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돌아가는 방법도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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