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인공물, 그리고 나

by 백산

4박 5일간의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다. 동생에게 여행 일정을 맡겼기에 싱가포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입국했다. 싱가포르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인구는 몇 명이고 날씨는 또 어떤지 모르는 나로서는 모든 게 신기했고, 덕분에 나중에 거대하고 화려한 인공물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경외감은 배가 되었던 것 같다.


싱가포르 물가가 이렇게 비쌀 줄 몰랐다. 한국과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전반적으로 20% 정도 더 비싼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주류의 물가가 정말 비싸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맥주 500ml 한 캔 사려는 데 6천 원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4캔에 11,000원이 정말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나는 '기분 좋은 하루의 마무리'가 비싸졌음을 느꼈다.


관광지들은 비싼 물가의 이유를 말해주었다. 특히 마리나 베이와 센토사 섬은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곳이었다. 두 공간은 인간을 뛰어넘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생물 재료로 만들었지만 완성된 순간 하나의 유기체로 변한다. 그런 공간의 인공물은 인간들이 청결하게 유지시켜주고 사람들은 먼 곳에서도 찾아와서 감상하며, 긍정적인 감정을 얻고 간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기계보다 우위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들은 기계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기계를 끄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시점에 이르렀기에 기계를 끄는 행위가 곧 인류를 끄는 행위와 동일해졌다. 그렇다면 정말로 인간은 기계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마리나 베이와 센토사 섬이 인간을 뛰어넘은 공간이라는 느낌은 이런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 같다. 마리나 베이와 센토사 섬에 일하는 수많은 직원과 찾아오는 관광객. 인공물과 인간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살아간다. 인간이 없으면 두 공간은 잊혀지고 무너질 것이고 두 공간이 없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사람들은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줄어든다.


마리나 베이 샌즈 더 샵스에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있었다. 평범한 나는 살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수많은 브랜드 이름들이 있었고, 그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최상위 브랜드로 또 분류된다고 한다. 그 공간을 가로지르고 오르고 내리며 본 가게들은 분명 문이 활짝 열려있었지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기분이 꽤 이상했다. '이상하다'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크고, 시원하고, 화려한 공간을 다리가 아플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걷는 것뿐이었다. 관광객들로 꽉 찬 공간이었지만 가계 안은 한산 했다. 여행 둘째 날 갔던 동물원이 오버랩되면서 이곳도 일종의 동물원 같다고 느꼈다. 명품 브랜드를 동물원의 동물 보듯 구경하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명품 브랜드들이 나를 구경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손을 보니 다행히 웬 원숭이 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사람 손이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손도 참 신기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것은 항상 만족스러운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들을 둘러보니 싱가포르에서 느꼈던 새로웠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난다. 예쁜 정원과 공원, 잔잔한 싱가포르 강처럼 자연을 강조한 공간도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았다. 마리나 베이와 센토사 섬, 백화점과 같은 인공적인 공간들 또한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여행을 하고 나면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그냥 변화. 나는 그런 변화를 좋아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3년 동안 한국에 있었다. 이번 여행을 그런 중립적인 변화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다음 여행이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