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싫다.

by 백산

여름이 싫다. 여름이 싫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고 생각해 글이라도 쓰기 시작하지만, 그 사실조차도 조금 허탈하다. 나는 여름이 싫지만 내 친구 중 소수의 한두 명 정도는 여름을 좋아한다. 내 친구 한두 명은 여름을 좋아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생명체를 대상으로 여름이 좋은지 싫은지 물어본다면 어떨까?


여름. 여름은 강렬하다. 열정이 넘쳐난다. 저 아득히 멀리서 오는 태양열 에너지가 지구 상의 온 생명체를 흥분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보자. 모기가 평소보다 많다. 아마 모기에게 여름이 좋냐고 물어보면 형제자매가 평소보다 많아져서 좋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북극곰은 여름이 싫다고 말할 듯하다. 이쯤 되니 전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애매하다. 누가 한번 대대적인 연구를 해주면 좋겠다.


우주로 가보자. 우주 입장에서 지구는 이상한 놈이다. 우주 전체를 기준으로 '살아있음'은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며, '살아있지 않음'이 기본값이다. 애초에 '살아있지 않음'이라는 용어 자체가 '살아있음'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단순히 부정한 용어이기 때문에 용어 사용이 썩 적절하진 않다. 여하튼 이런 이상한 놈에서 이상한 놈이 태어나 이상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문득 살아있는 것도 아닌 자연 현상에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신나게 욕을 해대는 것이 웃겼다.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싫어하고 있는 것인가?


여름에는 더워서 땀이 많이 나고 불쾌하고 예민해진다. 소위 말하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기가 다른 때보다 어렵고, '뜨거운 감정'이 우세를 점한다. 평소 같으면 버럭 화를 낼 일이 아닌데도, 짜증 낼 일이 아닌데도, 퉁명스럽게 대할 일이 아닌데도 '여름'이라는 이름하에 비일상적인 일들을 한다.


나는 나의 기본값을, 나의 평상시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 비일상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여름이라서 그래"라는 편리한 변명거리를 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주가 아닌 지구가 나의 세상이기에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여름이 싫은 이유는 있을 수가 없다. 있지도 않은 것을 싫어할 순 없는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총을 쏴댄다고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여름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나의 평상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기 통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여름은 나의 나약함이 다른 때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계절이 온 것일 뿐이다.


이번 여름에 한층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기를. '여름'이 싫은 것이 아니라 여름에 이러는 '내'가 싫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사랑해, 널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