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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석 Jan 30. 2024

역지사지 타산지석

이제는 他山之石(타산지석)이라는 말은 ‘강 건너 불’과는 다르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타산지석은 그대로 풀어보면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강 건너 불은 ‘자신에게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관여하려 하지 아니함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큰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강 건너 마을의 집에 불이 나거나 큰 싸움이 벌어지는 등 위험에 처해도 이쪽 강 건너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할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강 다리가 서울구간에만 32개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최근 서울 강동구 고덕동~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33번째 한강 다리의 이름을 놓고 이웃한 자치단체 사이의 신경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도로공사는 2016년부터 구리∼안성 고속도로를 건설 중인데, 이 다리는 올해 말 완공할 예정이어서 구리시의회는 건설 중인 교량 이름을 ‘구리대교’로 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국회, 총리실, 국가지명위원회, 경기도, 한국도로공사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 교량의 87% 이상이 구리시 관할이고 이미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한강 교량 명칭에 ‘강동대교’가 있다는 점도 형평성을 고려해 ‘구리대교’로 命名(명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과거 한강 兩岸(양안)의 시민들이 교량명칭으로 논쟁이 격화되자 정부는 매번 교량을 준공하면서 그 명칭을 좌측에 한번 우측에 한 번씩 명칭 주도권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산대교와 김포대교는 고양시와 김포시가 주인격인 작명이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강 건너의 일로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는 마주하는 강가의 일로 생각되는 시대에 살면서 시대의 화두는 易地思之(역지사지)로 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일방통행식의 행동이 아니라 다른 이의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직에서 행한 바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역지사지, 타산지석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노인의 날 행사장에서의 일입니다. 당시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상황이어서 늦은 가을에 행사가 몰려서 개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일에 체육행사를 열기가 어려우니 휴일에 개최하게 되었고 현직 공무원으로서 휴일에 나가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각종 종목별 행사를 10시, 10시30분, 11시에 연이어 개최하였고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시청관계자가 한무리로 행사장을 찾아가서 개회식을 하고 인사말씀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각 체육단체는 개회식 전에 미리 경기를 시작하고 정시가 되면 다 함께 모여서 개회식 세레머니를 개최하였던 것입니다. 본부석 참석자들의 입장을 배려한 체육단체 회원들의 양해에 대해서는 지금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노인의 날 행사입니다. 그날도 기온이 높은 상황이었는데 행사시각이 다가오자 행사를 주관하는 팀장이 遮日(차일)안에 앉으신 老人(노인)들에게 운동장 가운데로 나오시도록 안내방송을 하였습니다. 이에 급히 사회자에게 다가가서 안내를 중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그늘 안 의자에 편안하게 그대로 앉아계신 상황에서 본부석의 단상과 마이크를 들고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갔습니다. 얼결에 국회의원, 시의회의장, 도의원이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이리 하지 않았다면 노인들을 오전 11시 뜨거운 운동장 한가운데 세우고 노인보다 젊거나 어린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시청 관계자들은 그늘막 아래에서 길게길게 마이크를 잡고 自畵自讚(자화자찬)을 늘어 놓을 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잘 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공직을 마무리할 즈음에 공공기관단체 합동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의 사례입니다. 이날도 각 기관의 젊은이들이 각각의 텐트를 치고 그늘 아래에서 자기가 소속한 기관의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개막식 행사시각이 되자 역시 마이크를 들고 운동장 가운데로 나가서 짧은 인사말로 개막을 알렸습니다. 이날 안산시 지역 국회의원님이 국회 일정을 다녀오느라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진행팀이 마이크를 건네며 국회의원에게도 운동장 가운데에 가서 인사말을 하도록 안내했습니다. 수행자가 국회의원에게 “이 기관의 대표인 원장님이 이렇게 하라 했답니다”라고 설명하자 국회의원은 “참 잘한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다른 업무차 회의실에서 만난 국회의원께 인사를 하자 두 번째 만남인데도 아주 친밀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선거로 당선된 분들의 공통적인 소통방식이기는 하겠습니다. 이날 두 번째 만난 국회의원님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원장님’과 함께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매사를 추진하겠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에너지·질량 불변의 법칙, 풍선속 공기량 불변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권의 경제발전을 규제해서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논리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임창열,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견해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기, 서울, 인천의 경제를 억제하면 지방으로 ‘경제효과’가 흘러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는 내려가겠지만 많은 부분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출국’했다는 것이 경기도의 주장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遮日(차일)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노인과 젊은이들은 땀을 흘리며 연설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사장에서 길게 성과 중심의 연설을 한 시장님보다 늦게 와서 짧게 “반갑습니다~~~!!!”인사만 한 국회의원에게 더 큰 박수를 받는 것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자갈돌을 옥돌로 만든다는 ‘타산지석’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만이 이 시대의 소통을 시원하게 연결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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