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 1박2일 이야기
축령산은 늘 그곳에 있었다는데 정작 오늘 초행입니다. 그것도 깊은 밤입니다. 2008년 5월 어느 날 저녁 6시 반 출발을 준비하였지만 업무가 연관된 기다림이 있어 선발대 버스는 7시경 출발하고 잔류인원은 7인승에 넓게 앉아 저녁 8시경 천천히 시동을 걸었습니다.
가는 길에 자동차에 밥도 주고 도토리 묵밥과 막걸리로 빈 가슴을 조금 채우고 여유롭게 달려갔습니다. 어둠속을 달리는 차량속의 일행은 수시로 선발대에서 걸려오는 핸드폰의 추적을 받으며 가급적 아직 멀리 있는 것으로 대답하면서 저쪽에서 벌어질 소주공격을 피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둠속의 자동차는 그 속도감이 빠르다고 했던가. 선잠이 들기도 하고 급브레이크 흔들림에 두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깨어보면 밖은 어둠속이고 주변의 자동차 속도를 느끼면서 아직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구나 상상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차가 힘차게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4주전에 약속한 그 축령산 휴양림 현장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입구 관리인은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고 우리가 도착한 3층 목조건물의 테라스에서 선발대가 손을 흔들어 환영합니다. 아직 소주기운은 덜 한 듯 목소리가 맑습니다.
선발대의 목소리가 맑은 이유를 일행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이곳은 녹음이 가득한 축령산이기 때문입니다. ‘노는 물이 다르다’고 하더니 이곳의 동식물들은 먹고사는 공기가 다르겠습니다. 코 속을 지나가는 공기의 감촉이 새콤하고 편안합니다. 여하튼 속세의 공기와는 많이 다르고 맛있고 감칠맛이 나므로 비닐가방이 있으면 맑은 공기 몇 줌 담아가서 가족에게 나누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느덧 밤 11시가 가까워 나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不問可知(불문가지), 當然之事(당연지사), 그 나무의 풍성함이야 확실히 알겠고 그것은 내일 아침 창문을 열면서 확인할 일입니다.
한 사무실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들인데도 이곳 산속 아늑한 숙소에서 만나니 새롭고 반갑습니다. 어느새 1층 로비로 내려와 일행을 맞으니 뭐 일단은 새롭고 악수부터 나눕니다. 거참 신기한 것은 사무실에서는 3일 만에 출근하여도 그냥 눈인사만 하는데 7시에 떠난 사람 11시에 만나도 산속에서는 악수를 하게 되다니. 자연의 공기가 주는 성격의 순화작용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것도 자연의 힘인가 자연의 조화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인간사일까 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 운동회, 가을 야유회를 하게 되는가 봅니다.
일단 3층 방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업되기 시작합니다. 3층 건물 전체가 둥근나무, 평평한 목재, 부드러운 재질로 지어졌습니다. 황토로 벽을 채웠고 계단도 발바닥을 편안하게 맞이합니다. 더구나 반가운 것은 푸짐하게 차려진 야참상입니다.
방안을 둘러보니 일행의 배낭과 양발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이 무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관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형식과 격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속옷 차림의 선수들도 보이고 약간 취기가 오른 프로선수도 있습니다.
쓰이는 용어가 또한 상쾌하고 샤프합니다. 형님, OO이! ~~형. 일단 이름을 부르고 상대편이 ‘쓱’하고 인상을 쓰면 ‘兄’자를 붙입니다. 대감님, 두목님, 보스님, 실장님. 여기가 산적집단인지 정치 모임인지, 기업체 야유회인지. 여하튼 모두가 즐겁습니다.
이제 17명 전원이 모였으니 술마시고 떠들면 될 일입니다. 과장도 없고 계장도 계급장 반납하고 이곳에 왔으니까요. 그렇게 술한잔 하다보니 일행중 누구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돌아가며 폭탄사를 했습니다. 찬조로 받은 양주 2명이 폭탄 속으로 나라 올라왔습니다. 모두가 취한 후 테라스(=베란다)에 나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새벽 산바람이 이가 시리도록 시원하니 거참 5월 중순에도 찬바람에도 서리발이 서겠습니다.
가방을 챙겨 숙소로 갑니다. 누구라고 지정한 방도 없으니 건너편 3층 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입니다. 술 한잔 한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편안한 잠을 자게 해준 축령산의 지신, 수신, 목신, 공기神(신)에게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정말로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아마 잠결에 미동도 하지 않았나 봅니다. 누운 채 5시간을 잔 것 같은데 몸이 하늘을 날 듯이 가볍습니다.
어제 마신 술들이 모두 숲속의 나뭇잎에 빨려 나갔습니다. 신록은 알콜을 좋아하나 봅니다. 푸른 나뭇잎은 광합성작용을 해서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영양분을 만든다고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산소를 내보내고 그 산소를 동물과 인간이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축령산 3층 방에서 엄청 많은 산소를 마셨습니다. 피부도 보드라워진 것 같습니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광고 카피가 있는데 “산소 많은 축령산”이라는 광고는 어떨지.
샤워를 하고 방방이 잠자는 모습을 디카로 찍었습니다다. (모두 지웠습니다.) 모두 편안하게 자는 모습입니다. 산소를 얼굴 가득히 바로고 가슴 깊이 산소알갱이를 머금은 모습입니다.
아침 해장국은 정갈했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해 왔는데 아주 능숙한 차림입니다. 어제 밤에 한잔했을 거라는 것을 잘도 아시는 아주머니가 준비하신 듯합니다. 정갈하고 깔끔하고 넘치지 않는 양의 해장국이 입에 맞았고 입맛에 붙어버렸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보물찾기에 나섰습니다. 미리 보물을 숨기러 올라가보니 이곳이 정말 천연림인듯 풀잎마다 거목마다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나무들에게 물어도 대답을 정확히 하지는 않았지만 거목들의 나이는 100세가 넘어 보입니다. 반말로 나이를 물어서 기분나빠 답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908년생이면 2008년 기준으로 100세일 것인데 그때면 조선말입니다. 산 중턱인데도 그 흙의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사실 보물찾기는 초중생 자녀동반을 전제로 준비한 것인데 학교 시험 때이고 해서 동료들의 학생들은 같이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물찾기를 시작할 그때 외동딸 일가족 3인이 그 길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즉석에서 이들이 보물찾기에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더구나 그 외동딸이 1등 보물을 찾았습니다. 시상식에서 1등상을 받은 딸과 4등 상을 받은 부부는 행복한 웃움을 지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뭐, 다단계 회사에서 사기 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는 아주 고맙고 재미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산 정상에 피어있을 철쭉을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우리 회사 족구대회를 연습 중이어서 선수에 선발된 동료 2명은 불참했습니다. 나이 많은 이들은 산을 오르는데 젊은이들은 불참한 것입니다. 거참, 등산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어야 체득되는 건강관리법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등산길에서 여러 번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목적지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고맙습니다. 계곡의 물은 맑았다. 북부지역 0급수 지역에는 고기가 없다고 하던데, 이곳은 1급수인지 맑은 물속에 모래와 자갈의 색깔을 입은 물고기가 보입니다. 그냥 산천어라고 부를까.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그 크기가 (모나미)볼펜 만큼은 되겠습니다.
비탈이 심한 길은 시멘트 포장이고 완만한 길은 자연 상태입니다. 몇 번을 굽이굽이 지나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참 좋은 산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축령산 정상에서도 검은 흙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산 위에도 잎사귀 큰 활엽수가 빼곡합니다. 그리하여 산 정상에 철쭉이 만개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약간 철이 지난 듯 철쭉은 왕성하게 피어난 후 일부 시들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800여m 산 정상에 오르니 크게 행복합니다. 등산길 100m와 평지길 100m는 그 맛이 다른 법이지요. 등산로에서는 무릎이 아프도록 걸어도 100m를 지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남은 길이 500m라면 이 또한 대단히 먼 등산길이라 인식해야 합니다. 산악인들은 산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늘 간직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산을 오르며 서두르지 않아야 하며 지름길이 아니라고 화를 낼 일도 아닙니다. 천천히 가도 언젠가는 정상을 내주는 것이 우리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축령산(祝靈山)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가평군 경계에 있습니다. 높이 879m입니다. 일명 비룡산이라고도 합니다. 고려 말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사냥 왔다가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였고, 돌아온 몰이꾼들이 하는 말이 “이산은 신령하니 산제를 올려야 한다”고 하여 이튿날 정상에서 제를 지낸 후 사냥을 한 사실에서 기원합니다.
철쭉이 핀 정상에 전망대랄까 관망대처럼 무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무대를 설치하신 분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설명서를 보니 한반도 모양의 철쭉 군락이라 합니다. 강원도 영월군에는 강물이 돌아가는 자리에 한반도 모형이 형성되어 있어서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 축령산에는 관리자들이 자연 상태의 철쭉군락지에 보식을 하여 한반도 형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 산 정상에 오른 이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인데, 우리의 프로님이 가져온 티카의 배터리가 배고답니다. 마지막 힘을 내어 줄 것을 기대하고 스위치를 켜 보았으나 이내 시들하면서 촬영은 못하고 서로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과정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랄까? 혹시 우리는 등산이라는 인생을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인생을 살면서 올라온 나의 길을 다시 가며, 마치 바둑기사가 복기(復碁)를 하면서 요 대목에서 이쪽 수가 나았을 것인데, 요때는 과감히 끊어 공격을 했어야 하는데...자평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박경리 선생의 영정이 생전에 살고 밥 먹고 담배 피웠던 서재를 거쳐 고향 땅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모든 나날들 또한 두 번다시 기회가 없으니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리기는 참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구나 한번 방송에 나가고 신문에 보도된 것이, 다시 알아보니 사실이 아니거나 조금은 다르고 틀린다고 하여 다시 방송에 내보내고 신문 활자를 찍어도 원래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없었으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10년 전에 그 땅을 사두었으면 지금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본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러니 오늘 하루를 고맙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평범하지만 만고의 진리인 그 말씀을 한 번 더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조금 전 올라올 때 힘들었던 그 길을 다시 내려가는데 전혀 힘든 줄 모르겠고 내려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내려간 곳은 자연식품, 웰빙 음식이 풍성한 장터. 나물이 들어간 전, 푸른 떡, 나물, 막걸리. 갓 담근듯한 김치가 벌써 맛이 들었더라. 아마도 축령산의 맑은 물, 풍성한 산소가 이같이 맛있는 김치를 만드나 봅니다.
의자와 식탁이 있지만 우리는 바닥에 앉아 즐거운 미식의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등산은 피로를 내보내고 식욕을 데려옵니다. 시각도 오전 11시. 모든 것이 맛있을 시간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한 웅큼 들어간 음식이어서 모두가 즐겁게 먹었습니다.
다음 코스는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는 이벤트 코너. 3명의 아티스트가 어린이들의 볼에 꽃 모양을 그려줍니다. 얼굴을 내밀어 꽃그림 그리기가 조금 쑥스러워 가져간 메모지에 그림을 받았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페인팅 장면을 부모의 허락을 받아 촬영했습니다.
일행은 다시 추어탕 집에 모두 모였습니다. 민물 매운탕인데, 손님이 적은지 식탁에 먼지가 끼어있고, 단체 손님을 맞이하는데 주인 부부가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경제가 좋아야 하는데, 자연만 좋고 경기가 없어 보입니다.
돌아갈 시간입니다. 일행이 버스를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는 시원시원합니다. 길도 넓어 보이고 바람도 시원한 것이 함께 마시는 맥주의 칼칼함을 더해줍니다.
20시간짜리 1박2일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짧지만 긴 여행 동안 우리가 던진 멘트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마치 강호동, 이승기, MC몽, 김C, 은지원, 이수근이 버스타고 가면서 나누는 대화처럼 선문답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표현은 OO형!
형식, 의전, 격식에 매인 사무실을 떠나 잠시 自然 속에서 自然스럽게 동참하는 모임속에 1박이 있어서 의미를 더했습니다. 아침에 떠나 밤늦게 와도 20시간이고 함께 눈뜨고 있는 시간은 더 길겠지만 역시 1박이 들어간 순간 마음을 열고 서로를 대하고 걱정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는 것을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벌써부터 다음번 1박2일은 우리가 준비한다는 예고가 나왔습니다. 다음번 1박2일에는 보물찾기보다 더 중요한 우리 조직의 단합이고 화합이고 사랑이라 말했습니다. 다음번에도 우리모두가 자연속에서 배려의 보물을 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파이팅 1박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