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식물 깔라만시, 비타민이 된 걱정 열매.

키워서 먹는 비타민.

by 민영


화분텃밭이있는 마당 정면에는 두 그루의 깔라만시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들이 복을 가져와 줄 것 같다며 지인분들이 선물해 주신 나무들이다.


한국에서는 개그맨 정찬우씨가 소주에 타먹는 액상형 제품을 광고해서 유명세를 탄 적이 있는 과일.


다만 한국에서 판매한 깔라만시는 겉껍질이 진초록에 오렌지 빛 과육을 가지고있어서, 겉껍질이 노란 나의 깔라만시와는 조금 다르다.



걱정 나무가 왔다.


라임종류의 나무를 화분에서 키우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인터넷 자료들과 유튜브를 부단히 검색했었다.


여러 영상과 글에서 배운 대로 흙의 산성도를 맞춰주기 위해 피트모스 흙도 추가해 주었지만 일반인인 내가 토양의 산성도를 Test 해 보기는 쉽지 않았다.


뿌리는 활착하는데 문제가 없을지, 새 잎은 돋아 날지, 열매들은 언제 익을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사는 이곳의 기후 특성상 매년 6개월간 이어지는 우기철을 견뎌 낼는지, 간간히 떨어지는 우박이 나뭇가지를 상하게나 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퇴근 후 매일 나무들을 살펴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폭우가 떨어지는 날에는 몇 안 되는 열매들이 바닥에 나뒹굴까 겁이 나서, 열매에 노란빛이 살짝 비추기만 해도 허겁지겁 따서 부엌에 모셔두었다가, 아까운 마음에 입으로 털어 넣는 지경이었으니 집착이 심하긴 했다.

청귤처럼 익은 줄 알았으나 아직 너무 어렸던 깔라만시

성장기 & 이해기


깔라만시를 키우던 첫 해에는 레몬의 4배에 달하는 신맛을 가진 열매인 것을 모르고, 익지도 않은 깔라만시를 입속으로 보내기 바빴었는데, 이내 시고 쓰고 아린 맛 때문에 위와 장이 괴로웠다.


나무가 화분에 적응하는 동안 나는 나대로 바쁘게 녀석을 챙겼다.

가지마다 몽글몽글하게 붙어있는 깍지벌레들을 일일이 떼어내는 수고와, 마른 가지들을 소심하게 전지해 주기를 반복하며 한 해를 보냈다.


비와 벌레, 물주기에 바빴던 날들이 지나고, 이듬해에는 연둣빛 새잎들이 전년도에 전지해 주었던 자리에서 와글와글 돋아났다.


까탈스러워보이던 깔라만시 나무가 새잎을 가득 올렸다는 것은 뿌리가 화분에 자리 잡는 것에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기특하게도 새 잎이 돋고 얼마뒤 하얀 꽃망울이 눈꽃처럼 이곳저곳에서 올라왔다.



늦은 퇴근 탓에 빛나는 초록잎과 하얀 깔라만시꽃의 가장 예쁜 시기를 관찰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달빛아래서 나를 반겨주던 깔라만시의 팝콘 같은 하얀 꽃을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칠흑처럼 어둡던 밤에도 달빛에 비친 하얀 깔라만시 꽃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꽃에서도 라임 향이 은은하게 느껴져서 '토실하게 열릴 깔라만시들은 얼마나 향긋할지'하는 기대에 설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만지기도 조심스럽던 하얀 꽃들은 얼마지나지않아 올망졸망한 초록 열매들을 가득 품어냈다.




열매


작디 작던 열매들은 매일 물을 흡수하고 강한 햇빛을 느끼며 살을 찌워나갔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 초록이 성성하던 깔라만시 나무에 노란빛이 돌기 시작하더니, 몇주에 걸쳐 진한 주홍빛을 띈 깔라만시로 익었다.


잘 익은 깔라만시 열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깔라만시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가득해지자 식집사는 욕심이 생겼다.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수확하기 싫어진 것이다.

그저 탐스런 열매 그대로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깔라만시는 익을수록 신맛이 덜해지고 라임 특유의 향이 진해지는데, 이 모습을 그대로 두어 화분텃밭의 마당 공간을 화려하고 상큼하게 꾸며두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식물 키우기는 식집사의 소망대로 되지 않았다.


마당에 종종 출몰하던 낭만 없는 검은 새들이 잘 익은 깔라만시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많은 열매들이 쪼임을 당했다.


아까워서 만지지도 않던 열매들이 새들의 공격에 파여나갔고, 파인 자리는 이내 검게 변색되어 흉물스럽게 변해갔다.


새들이 얼마나 영특한지, 개중에 씨알이 굵고 곱게 잘 익은 녀석들만 골라서 흠집을 내두고 떠났다.


야무지게 먹어버리기라도하면 속이라도 덜 상할텐데, 손톱으로 파낸듯 얌채같은 생채기만 남겨두고 마당 곳곳에 깔라만시 열매를 떨어트려 둔 것이었다.



경쟁자를 물리치는 법 = 먼저 움직이기.


이대로 새들에게 소중한 열매들을 뺏길 수만은 없었다.

큼직한 소쿠리를 들고 노랗게 익은 열매들을 닥치는 대로 수확해 냈다.

가위가 신이나서 사방을 활개하니 300알은 넘어보이는 깔라만시들이 소쿠리 가득 쌓였다.


'아이고, 이걸 다 어쩌지?'


후회해도 이미 벌어진 일.

수많은 열매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마침 나와 남편은 올리브 오일과 라임즙을 매일 아침 공복에 마시고 있었기에, 집에서 키운 깔라만시로 라임즙을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간편하게 수확했던 깔라만시들을 하나하나 닦아내고 씨를 걸러 집을 짜내는 일은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사 먹는 게 싸다.)


그럼에도 새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오기에 시큼한 깔라만시즙을 온 몸과 얼굴에 튀겨가며 열심으로 즙을 짜냈다. (사 먹는 게 정말 싸다.)


마트에서 사 오는 라임즙과는 비교도 안 될만한 색감과 향을 가진 깔라만시 즙.

이 상큼한 액체를 얻으려고 한시간 남짓 손이 시큼할 만큼 즙을 짜냈다. (사 먹는 게 정말 정말 싸다.)



루틴이 된 삶


신선한 깔라만시 즙은 매일 아침 출근 전 올리브오일과 함께 식집사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사먹는 라임즙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맛과 향.


일반 라임즙보다 단맛과 신맛 모두 강해서 양 조절이 조금 어려웠지만, 깔라만시 즙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일반 라임즙은 입에 대기가 싫을 만큼 신선도와 맛이 월등하게 좋았다.


덕분에 매주 주말이면 가지가득 열린 깔라만시를 수확해서 즙을 만들어두는 루틴이 생겼다.



식집사의 재미와 기대


새로운 식물을 키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언제나 새롭다.


막연히 화분에서 키워내기 어려울 울 줄 알았던 깔라만시가 1년 새 우리 집 환경에 적응하고, 고운 꽃도 펴내더니 소중한 열매까지 맛보게 해 주었다.


화분텃밭 놀이를 하는 재미가 날로 더해간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새잎을 돋운 나무를 바라보고, 라임향 품은 하얀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함께 한 시간들.

자그마한 열매들이 주황빛 깔라만시로 변하는 과정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된 하루에 대한 보상이었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 주는 희망이었다.


선선한 12월과 1월, 2월을 보내고 매년 봄, 가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깔라만시.


올해도 식집사의 노고를 싱그러운 라임향과 신선한 과즙으로 보답해 줄 것이라 믿는다.


초록의 향을 기대한다.


https://www.youtube.com/shorts/uCkm4wvqT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