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식물 포도, 나를 살리다.

우연히 키운 포도에서 희망을 찾다.

by 민영


시도해 본 적 없는 식물을 키우면서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원대한 무언가를 바라는 바 없이 시작한 식물 키우기.


그저 오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작은 화원에 들렀을 때 'Uva Negra (검정포도)'라는 이름표가 꽂힌 가느다란 묘목 한 그루를 보았고,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

식물에 대한 아무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되는대로 포도나무를 화분에 심어 두고 바쁜 일상에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 퇴근하는 나날들.

별이 총총 뜬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당 끝에 자리한 포도나무를 흘낏 보다 휙 집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잠들기를 반복했다.

on/off 스위치에 반응하듯 눈뜨면 일하고 전원이 꺼지듯 쪽잠을 겨우 들었던 힘든 시간은 지금 돌이켜봐도 어떻게 견뎠는지 아득한 날들이었다.


혼자 크는 식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월화수목금토요일을 하루처럼 쓰며 달려 다녔다. 멈추면 현실에 숨이 막혔으니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 같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듯하고,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날들에 지쳐가던 어느 날, 마당에서 자라고 있던 포도를 발견했다.


언제 자랐는지도 모를 포도 넝쿨손들이 빨랫줄을 휘감고 마당을 가로질러가고 있었고, 수백 장은 족히 될 손바닥보다도 커다란 포도잎들이 넝쿨을 따라 가득했다.


그리고 그 잎사귀들 사이로 내 눈을 의심할만한 크기의 포도송이를 품고 있었다.



이게 맞아? 이게 집에서 가능한 사이즈야?



커가는 과정 사진 하나 남기지 못 한 못난 주인을 두고, 포도나무가 열매까지 맺어준 것이었다.

말도 안 되게 크게 자라났던 처음 키워낸 포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포도 열매를 까치발을 들고 수확했다.

알이 굵지 않지만 너무나도 포도였다.


못난 주인과 다르게 제 몫을 해 내며 살아내고 있었던 녀석.

포도송이를 가득 담은 소쿠리를 보며 머릿속이 멀끔해졌다.


어쨌거나 살아진다. 이 포도처럼.


혼탁했던 나날들을 헤쳐나갈 용기를 식물에게서 얻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식물 관리를 멀리하는 팍팍한 날들은 나의 현실에도, 정신 상태에도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분갈이를 하고, 화분 정돈을 하며, 넝쿨들을 잘라냈다.

무성한 잎들을 잘라내고 화단의 잔디를 깎으며 그간 무심했던 내 삶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식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화원에서 판매하는 포도 묘목으로 열매를 맺어냈으니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싶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관리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다시 포도를 키우자.


천신만고 끝에 험난했던 상황들을 헤쳐나가고 새 보금자리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 갈 곳에서 새롭게 키울 채소들의 모종을 준비하며 포도나무 묘목도 새로 구입했다.


안 좋은 기억이 있던 집에서 키우던 포도나무는 아쉽지만 그곳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좋은 기운을 담은 포도나무를 바라며 다시 화원을 찾았다.


포도를 처음 키웠던 때의 어설펐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여러 방면으로 공부를 했다.


포도 뿌리가 활착 할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화분과 지지대, 큰 열매를 위해 꽃의 대부분을 사전에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점 등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배워나갔다.


그렇게 새 보금자리에서 피어난 포도꽃에 기뻐했고,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포도 열매가 열리고 익어가는 순간들에 감사했다.

처음 포도만큼 크게 열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흰 가루병이 돌아 포도잎을 모두 잃었다가도 어느새 새순을 올려주는 포도가 대견하기만 했다.



다시 시작.


7년여간 지내던 집을 떠나 근처 다른 집으로 옮겨왔다.

새집에서 포도나무를 둘 곳을 정하지 못해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128L짜리 공간 박스로 분갈이를 해 주고 볕 좋은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역시나 분갈이 몸살이 심했던 포도는 다시 풍성한 새 잎을 내어 주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그간 잎사귀와 줄기에 벌레가 생기고 흰 가루병이 생겨서 몇 번이고 줄기를 앙상하게 잘라내야만 했다.


해가 바뀌고 선선해진 어느 날 마른 가지 끝에서 볼록하게 잎이 올라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법 포도나무 태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더 지나 기다렸던 포도꽃이 올라왔다.

(동글동글한 포도꽃은 배웠던 대로 절반 이상 제거해 주었다.)


포도 꽃이 올라온 포도나무


다시 열매.


팝콘 같은 포도꽃이 지고 나면 차오르는 자그마한 포도송이들.

이때부터 물관리가 관건이었다.


사람도 청소년기에 잘 먹어야 키가 자라나듯이, 열매가 맺히고부터는 액비만큼 중요한 것이 매일의 물 공급이다.


물을 조금이라도 덜 챙겨주면 잘 자라던 포도알이 쭈글거리다가 이내 연보랏빛으로 변하고 떨어져 버렸다.

매일 물을 챙겨주지 않으면 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특히나 습도 없이 쨍한 기온으로 매일 31도 이상의 한낮 기온을 견뎌야 해서

화분 흙의 물마름이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여물 먹이듯 매일 포도에게 물을 주니 공깃돌같이 올망졸망하게 포도송이가 채워졌다.


주렁주렁 포도송이가 열린 포도나무 화분

초록의 힘


매일매일 화분을 돌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식물에게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내일은 얼마나 더 자라날지 기대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게으르지 말라고 식집사를 채근하는 듯 매일 토실하게 과육이 차오르는 포도송이를 보면 귀찮다는 마음이 이내 사라지니말이다.


탱글탱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초록빛 포도송이들을 바라보는 낙에 물을 주는 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포도송이는 매일 물을 머금고 통통하게 과육을 찌워낸다.

도움이 필요해?


지지대를 타고 자라난 포도는 넝쿨이 뻗어나가는 대로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났다.

지지대가 없으면 갈 곳을 잃은 넝쿨손과 잎사귀들이 공중을 헤매다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불필요한 넝쿨손을 많이 만들어내서 포도 열매로의 영양 집중이 되지 않는다.


혼자서 잘 자라는 녀석도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안정적이고 곱게 자라날 수 있다.

세상에 혼자서만 잘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수확


포도 알맹이가 생기고 3개월 이상을 더 키워냈다.

그간 날이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초록빛 포도알이 라벤더 색으로 변하더니 어느새 검보랏빛으로 진해졌다.


수확의 날이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전문 농가처럼 비료를 충분히 주지 못 하여서인지 물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포도알의 크기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다만 진하게 변하는 포도색을 보며 위안을 삼았고 혹시 모를 새들의 쪼임을 피하려고 생전 처음으로 '포도망'을 사다가 송이마다 씌워주었다.


아무리 그 크기가 작다 하더라도 내가 키워낸 포도인데, 허투루 다루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결실을 만나던 날, 잎채소를 수확할 때 쓰던 한국에서 가져온 소쿠리를 들었다.


똑똑 가위소리를 내며 10송이의 포도를 수확했다.

수돗가에서 대충 씻어낸 포도를 한 알 따다가 입에 넣으니 한국에서 먹던 그 포도 맛이었다.


분명히 포도 품종은 이 나라의 것인데 이곳에서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영락없는 한국 포도맛 그대로.


열매에서는 그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고향맛이 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먼 나라에서 키워낸 포도에서 한국의 맛을 느끼다니, '이래가지고서야 흙놀이를 끊어 낼 수가 없지!?' 생각했다.

화분에서 키워낸 포도를 지인들과 나누며 또 하나의 화젯거리와 추억을 만들었다.


힘들었던 날의 포도, 숨통이 트인 날의 포도, 그리고 지금의 포도.

모두 같은 종류의 포도이지만 같은 듯 다른 생김새와 맛을 가졌다.


키워낸 사람의 마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서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식집사의 마음과 상황이 반영된 열매일까?

마음이 복잡했던 날에 만났던 포도에서 찾은 희망덕에 오늘의 식집사가 살아있다.


덕분에 살아 있다.


https://www.youtube.com/shorts/C5f0gTsun9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