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채소 애호박, 한국이 그리워지는 맛.

동그란 귀여움이 있는 감초 식재료, 애호박.

by 민영

식집사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튼실한 새싹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야리야리한 새싹들이 오밀조밀 피어나는 모습만 주로 보다가,오이나 호박과의 새싹이 피어나면, 우량아 아이를 본 듯한 미소가 번진다.


당근이며 아스파라거스며, 가느다란 새싹들이 혹여 상하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길어질 때면, 나는 호박 씨앗을 파종한다.


호박은 발아율도 높고 키우는 내내 성장이 눈에 띄게 빠르기 때문에 지루한 식집사의 기다림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씨앗 파종 후 일주일이면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떡잎이 흙을 머리에 이고 올라오는데, 호박의 씨앗이 크다 하지만, 그 큼직한 잎이 어떻게 호박씨 안에서 피어나는지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Güicoyito


내가 사는 이곳에는 한국의 마트에서 판매되는 기다란 연둣빛 애호박 대신에 당구공처럼 생긴 'Güicoyito'라는 이름의 애호박이 흔하다.


크림 치즈를 자르는듯한 부드러움이 칼끝을 통해서 느껴지는 이 애호박은, 칼질의 재미가 있는 독특한 녀석이다.


생장 때는 넝쿨이 없이 가운데 줄기로만 자라나는데, 줄기를 중심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떡잎이 올라오고 3일가량이 지나면 본잎이 생겨나고, 막 세상에 나온 호박잎이지만 제법 까슬하고 도톰한 두께를 가지고 있다.


새싹이 올라온 Güicoyito 애호박

생장과 관리


본잎이 올라온 후부터는 성장세가 대단한데, 하루하루 자라나는 속도를 내 인지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이다.


'아니, 벌써 이렇게 큰다고?'

1년에 두세 번 키우는 애호박이지만 매번 놀란다.


본잎이 나온 중심부를 기준으로 잎사귀가 방사형으로 올라오면서 가운데 줄기가 점점 두꺼워진다.


잎은 공기가 통하지 않을만큼 큼직하게 겹겹이 쌓아 올라가듯 생겨난다

호박과의 식물답게,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흰 가루병이 흔하게 발생하는데, 먼저 올라온 잎사귀들이 손바닥 크기 만큼 자라나고 흰 가루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제거해 주어야한다.


꽃대가 올라오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큼직한 잎사귀들을 펼쳐서 광합성을 최대한 해 주어야 하지만, 골치 아픈 흰 가루병이 다른 잎사귀나 식물로 번지면 큰 일이기 때문에 이 녀석을 키우는 동안에는 매일 원예용 장갑을 착용하고 호박잎 앞뒤를 뒤적이며 잎 상태를 살피기 바쁘다.


30cm가량으로 길게 올라오는 줄기를 잘라보면 속이 빨대처럼 비어있다.

잎사귀를 제거할 때는 잎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제법 단단한 대롱 형태의 줄기 밑동부터 잘라서 버리는데, 가위가 지나갈 때마다 아삭하고 청량한 소리를 낸다. 마치 신선한 샐러리를 베어무는 듯 한 소리다.


새싹 때부터, 전정하는 과정까지 그 존재감이 실로 대단한 녀석이다.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호박 줄기와 잎


잎사귀가 매일 햇빛 사워를 충분히 하고, 뿌리 활착이 활발해지면 줄기에서 꽃대가 생기기 시작한다.


암수 서로 정답게 꽃대가 올라와주면 좋겠지만, 주로 일방적인 비율의 한쪽 성비의 꽃대들이 먼저 올라와서 매번 식집사의 애를 태우곤 한다.


꽃이 활짝 핀 애호박


꽃봉오리들의 암수 비율이 맞아지면, 출근 전 잠시 짬을 내어 인공 수정을 해 준다.


꽃이 만개하는 한낮에 벌 / 파리들이 해 줄 일이지만, 동 시기에 다른 종류의 호박을 주변에서 키울 경우 벌레들의 노고 덕분에 다른 종류의 호박끼리 교차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경우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혼종의 호박이 되어 버리므로 벌레들의 손을 타기 전에 식집사가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호박꽃이 성비 비율이 맞지 않게 피어나는 경우, 수꽃을 피어나기 직전에 잘라내어 냉동 보관했다가 암꽃이 피었을 때 수정에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세상에는 천재들이 너무 많다!'

감탄도 잠시, 기대감을 갖고 몇 번 따라 해 보았지만, 수꽃의 동결과 해동 과정에서 꽃가루가 제 상태를 온전히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네닷번 시도했던 냉동 보관 인공수정은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났다.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작은 애호박을 달고 올라오는 암꽃

암꽃들은 수정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꽃봉오리 아래 작은 애호박을 달고 태어난다.

꽃과 열매가 클수록 식집사의 마음이 요동 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머피의 법칙인지, 가장 실한 암꽃이 올라오는 타이밍에 꼭 수꽃이 없다.

'아, 정말 너무하잖아.'라는 독백이 절로 나오는 시기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려면 선택지가 몇 없다.

동시에 2개 이상의 애호박을 심어서 꽃대가 올라오는 시기에 성비를 맞춰 주거나, 위에서 언급한 냉동 보관한 수꽃을 꺼내와서 낮은 확률의 인공수정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물론 두 경우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동시에 2개 이상의 애호박을 파종하기에는 1m가량의 폭으로 자라나는 녀석의 크기 때문에 화분과 공간 확보가 쉽지 않고, 두 화분 모두에서 동시에 같은 성별의 꽃이 피어나기도 하며, 냉동 보관한 꽃가루를 통한 인공 수정의 성공률이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비율이 맞는 꽃대들이 제때 올라와 벌레들의 도움으로 자연 수정에 성공하고, 적당한 물 흡수와 비료의 양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뤄 토실토실 애호박을 키워내는 기적이 1년에 한 번가량 찾아온다.


그 한 번을 제외하고는 마음 졸이는 식집사의 손을 여러 번 타고 나서야 귀욤미 터지는 애호박을 수확할 수 있다.


큼직하게 자라난 애호박

잘 자라난 애호박을 수확하는 재미는 다른 채소들의 수확때와 확연히 다르다.

애호박은 제대로 된 식재료라는 인식이 강해서일까?


애호박을 수확하는 날에는 남편까지 불러내어 호들갑을 떨게 된다.


'아, 너무나 완벽하다.'

내가 키워냈지만, 감히 '완벽'이라는 말을 붙이고야 마는 결과물이다.



요리조리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기고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소문을 낸다.

할 수 있는 모든 호들갑을 다 떨고 나면 비로소 애호박을 입으로 들여보낼 준비가 끝난다.


곱게 세척을해서 안 그래도 예쁜 애호박에 광을 내어주고 반듯하게 썰어낸다.


도마에 칼 닫는 소리가 부드럽다.

애호박의 무른 속살 덕분에 칼이 닿는 곳 마다 부드럽게 들어가고 잘린다는 의미이다.


세상에나, 칼질까지도 완벽하게 즐겁다니.

이런 재미를 두 달 남짓의 기간 내내 수확하며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수확한 애호박은 볶음으로, 전으로, 국으로, 비빔밥용 고명으로 사용한다.


향과 질감이 좋아서 최대한 심플하게 구이로 먹으라는 의견이 많은 애호박이지만 한국인이 식재료를 대하는 방식은 한결같으므로 어쩔 수 없다.


이 맛있는 애호박을 고국에 있는 식구들과도 나누고 싶은데 씨앗과 함께 입국이 안 될 테니 마음을 접는다.




동그랗고 고운 이 열매가 내 손에 올라오는 날을 상상하며 매년 파종하기에, 애호박은 올해도 나의 '화분텃밭'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전부터 본잎이 커지고 있고, 두번째, 세번째 줄기들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비료와 물을 챙기며 쑤욱 자라날 줄기를 위한 지지대도 준비한다.

결과물을 알기에 단계단계마다 놓치는 것이 없는지 마음을 쓰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게으를 틈을 주지 않고 움직이다보면, 고소한 풍미의 이 아름다운 열매를 곧 만나리라 기대하는 식집사의 삶.

내일은 얼마나 더 자라나서 나를 놀라게 할 지 기대가 크다.


https://youtube.com/shorts/hcgTeCcS6RE?si=ytZNWW1zTHxiNK-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