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네 명의 유럽 배낭여행 메이트가 처음 도착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여행 일정의 대부분은 함께 간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주로 짰는데 워낙 야무지고 성실한 친구여서 그녀가 고른 숙소나 여행지는 모두 좋았다. 영국을 첫 번째 나라로 정한 이유는 앞으로의 여행 루트를 편하게 하면서 비용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나라는 이랬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체코, 이탈리아, 그리스 , 터키에서 여행을 마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지방 도시도 둘러보기로 해서 일주일 이상 머물기로 했다. 2000년도 초반에는 대학생들의 유럽 배낭여행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유럽 어디를 가도 한국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우리를 chinese? 혹은 japanese? 냐며 구분하기 힘들어했지만, 우리는 신기하게도 대부분 얼굴이나 패션, 제스처만 봐도 한 번에 한국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런던의 숙소는 한인민박으로 정했다. 더 저렴한 유스호스텔 같은 곳도 있었으나 조식으로 한식을 제공한다는 말에 홀려서 예약했던 곳이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여행에서 다녀온 후 몇 년 뒤에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꽤 유명했던 한인 민박집이었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20대 후반의 젊은 언니가 주인이었는데, 영국의 비싼 물가 때문에 유학 생활비라도 벌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방학 동안에만 운영한다고 했다.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이곳에는 늘 젊은이들로 복작거렸다.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나서 함께 여행 온 사람들도 있었다.
또 민박집에는 혼자서 여행 온 사람도 제법 있었다. 지금은 한인 민박집이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함께 밥 한 끼만 먹어도 금세 친해졌고, 여행 코스가 비슷하면 함께 이동했고, 야경도 10명 이상이 우르르 몰려가서 구경했다. 어행 전에 유럽에서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다니니 전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여행'이라는 공통사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됐고, 피 끓는 청춘들이 '젊음'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영국 런던의 거리를 누비니 그냥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좋았던 점은 6월 말, 영국 런던의 여름은 밤 10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았다. 10시가 되어서야 그제야 어스름이 지면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처음 목격했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니! 어디에서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 다른 의미로 영국이 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지 알게 되었다. 젊은 여행객들에게 이보다 더 큰 서비스가 있을까? 아시겠지만 20대에는 며칠 밤을 새도 체력이 끄떡없다. 오히려 재밌게 놀 때는 일분일초가 가는 것이 아까운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밤늦도록 런던 거리를 걷다가, 펍에 들러서 술도 마시고, 새벽이 되어서야 민박집에 들어갔다. 그 시절의 촉촉했던 새벽 공기의 냄새가 지금도 떠오르는 것 같다.
그렇게 젊은 20대 남녀가 모였으니, 민박집 안에서는 뜨거운 여름 거리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무수히 많은 썸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썸을 느꼈고, 함께 부여잡은 런던 지하철 안의 손잡이에서도 찌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고 필름을 인화한 후(당시에 우리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사진 속에서 나를 보고 환히 웃고 있는 썸남의 얼굴을 봤을 때 내 기분이란:) 우리는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나만의 '비포선라이즈' 같은 로맨스를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좋아했던(직접 고백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오빠는 참 착했다. 외모는 에단 호크와 0.0001 퍼센트 닮았다고 보면 되겠다. 물론 나도 줄리 델피랑 비교하자면 참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나나 오빠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리즈시절이 아니었을까? 여행 동행자로 만나서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처음엔 오빠의 관심과 배려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내 타입의 외모가 아니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냥 사소한 모든 것이 불편했다. 자꾸 신경이 쓰이고, 나를 보는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분명히 오빠도 내가 쌀쌀맞게 대하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큰 변화 없이 오빠답게 우직하고 든든하게 여행을 이끌었다.
아직도 당시에 유럽 기차여행을 하면서 오빠가 들려줬던 노래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MP3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기차여행을 하던 중에 동생들이 심심하다고 빌려달라고 할 때 선뜻 건네주었던 사람.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진 모르겠지만 오빠는 그 선한 마음 때문에 잘 됐을 것이다. 남녀의 만남에도 '시기'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남자를 볼 때 1순위로 사람의 됨됨이를 볼 것이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약간 '나쁜 남자' 혹은 '조금 있어 보이는 남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후에 그런 조건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0명이 넘게 우르르 야경을 구경하러 갔을 때, 우리는 빅뱅과 런던아이 앞에서 단독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다들 빅뱅을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기해해면서 오래도록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다섯 장이 넘는 단독 사진이 지금 앨범에 꽂혀있다. 여행을 마치고 대학교 가을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유럽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을 모두 인화했다. 사진관에서, 찾은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보는데, 내 시선은 유독 사진 한 장에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다. 빅뱅 앞에서 단독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하는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진 가장자리에는 작게, 그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