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에 우리 이름이 없다
당장 프라다 가방이 가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PRADA가 부럽다. '김. 이. 박. 최. 정' 같은 이탈리아의 수 많은 한 성씨 중 하나일 뿐인데, 프라다는 강한 힘을 지녔다. 합성섬유인 나일론에 고급을 입혀낸다. 검은색 위의 로고는 자부심을 안겨준다. 머릿속에 눈이 크고 갈색 생머리를 한 '앤 해서웨이'를 쉽게도 그려내게 한다. 4월의 밀라노에 뜬 태양을 생각나게 하고,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이름 하나가 수 많은 마법을 부린다. 명품이 되기 위한 조건은 제품의 품질만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에 중요한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명품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자존감을 품고 있다. 자존감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프라다는 이탈리아의, 샤넬은 프랑스의, 버버리는 영국의 긍지를 지니고 있다. 브랜드명에서 가문과 국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것을 명품이라 부른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내 안에서 안타까움이 솟아났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명품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국 이름이 타국의 이름에 점차 밀려나는 까닭이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거리의 간판은 타국의 글자와 말로 채워진다. 세계 5위권의 자동차 회사를 가졌음에도, 우리 말 명칭을 지닌 자동차는 이제 생산되지 않는다.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서 철수보다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말은 아름다우며, 한글은 최고의 문자다'라는 캠페인은 점점 바래 져 간다.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에 모국어로 된 이름이 힘을 잃어간다. 내 나라에서 만들지고 세워진 것들에서,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을 느낄 수 없다. 이런 현실들은 가당키나 한 것일까.
단종된 우리 말 명칭 자동차들 <출처-XTM 더 벙커>
계피는 촌스럽고, 시나몬은 우아하며
마늘빵은 냄새나고, 갈릭 브레드는 향기로우며
아점은 더부룩하고, 브런치는 상큼하며
비빔밥은 구닥다리고, 퓨전은 핫 아이템이고
장화는 일해야 하고 레인부츠는 데이트 가야 하고
얼음찜질은 미지근하지만, 쿨링팩은 후레쉬하냐
몇 년전 화제가 된 한 네티즌의 댓글 <출처- http://www.slrclub.com/>
모국어 자존감: 자신의 모국어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
한국어는 가난한 이의 어머니를 닮았다.
나의 어머니가 보인다.
낳고 길러줬음에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말하는 내 어머니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언어가 가진 권위와 힘은 한국어에게 돌아 가지 않았다. 36년의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자리 잡은, 기득권들의 글자와 말은 한자였고 영어였다. 미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그때부터 영어는 성공과 출세를 위한 소양이었다. 80년 대부터 영어 조기 교육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90년 대부터는 토익 신드롬이 생겼다. 영어 사용의 능숙함이 인간가치의 척도가 되었다. 영어가 신앙이 되고, 신화를 만들고, 기회의 사다리를 밟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 이제는 중국어를 비롯한 수 많은 외국어들이 한국사회에서 권력이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의 한국어는 남루해져 간다.
이런 현실에서 모국어 자존감을 지켜내는 일은 힘든 일이다. 한국 이름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모국어 자존감 상실은 정부기관에서도 볼 수 있다. 2010년 5월,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막걸리의 영문 애칭을 공모했다. ‘Makgoelli’가 외국인에게 어려운 이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가 영문 애칭으로 선정되었지만 네티즌의 반발로 공모가 취소되었다. 오륀지 발음이 쉬워서 오랜지를 즐겨 먹는 것이 아니라 것을 생각해보면, 웃픈 일임이 틀림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농협이 NH농협이 되고 한국 수자원 공사가 K워터가 되었듯이, 수많은 공사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한국 이름을 포기하는 현실은 씁쓸함을 더해준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일제는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실시했다.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의 말살을 도모했다. 한국어 교육 폐지를 통해 모국어를 지워내려 했다. 그 만큼 모국어와 이름이 문화의 중요한 뿌리라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은 우리가 모국어를 존중하며 사랑하고 인정했을 때, 가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이름이 남루해져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