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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기문 Sep 29. 2015

이상(異常)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이상

지난 겨울, 친구 성현이가 딸을 낳았다. 얼마나 기뻤으면 문자로 다급하게 '딸 나아쓰 ' 4글자만 보냈을까. 성준이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영락없는 시골 소년이었다. 그는 안경 넘어 순박한 두 눈을 가졌었다. 영원히 아저씨는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친구가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딸바보가 되는 모습은 마술처럼 보였다.


동화에서의 소년은 청년이 되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와 다르다. 


2주 전, 결혼식에서 성현이를 보았다. 그는 요즘에 새벽 6시에 집을 나와서 18시간 후인, 자정에 집에 들어간다. 분명 한지붕 아래에 살고 있음에도, 이  딸바보는 깨어있는 딸을 보기가 힘들다. 요즘 사이가 틀어진 과장님과 부장님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다. 주말에는 일 욕심이 많은 부장님이 카톡으로 업무를 준다. 그래서 성현은 위궤양이 생겼다고 한다. 피지 않던 담배도  시작했다 한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힘들지?"


"처자식 생각하면 다녀야지 뭐"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살기는 편해졌다. 하지만 살기 좋아진 건 아니다. 


인류는 산업화 이후에 인간이 편해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세탁기의 발명은 여성이 세탁에 할애하는 시간에서 해방시켜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 신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자동차의 발명은 이동하는 시간을 인간에게 되찾아주었다. 그리고 PC의 발명 이후 MS의 액셀은 회사에서의 정신적 노동 시간을 비약적으로 경감시켰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산업화의 산물들은 대체적으로 인간에게 시간을 선물해 준 것들이다. 찬란한 발전의 상징이라 일컫는 21세기 대한민국. 그러나 이 사회는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다. 야근과 철야 그리고 주말 출근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수품처럼 보인다. 주판으로 계산하던 과거보다도, 지하철 노선 하나 없던  그때보다도, 동네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그 시대보다도, 우리는 더 시간이 없다.


서른두 살의 청년 두 명이 월요일 저녁 8시에 마시는 맥주가 어색하다. 퇴근하고 가볍게 한잔 하는 30대들을 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여유 있게 한잔 하는 청년들이 이상해 보인다. 일찍 퇴근하는 것이 이상해져 버린 시대다. 자정에 퇴근하고 주말에 업무를 보는 것이 정상이 되어버린 시대다. 


개그맨이자 신문방송학 박사인 '이윤석'이 "살기는 편해졌다. 하지만 살기 좋아진 건 아니다"라고 말한 대로 편해지는 것과 살기 좋아지는 것이 정비례하지는 않는 사회다. 이상하다. 이 이상한 것들을 '이상하다'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 시대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임금님이 거리 행진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체인 임금님을 말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모두가 벌거벗은 임금님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 말하지 못하니, 사람이 죽거나 배가 침몰하거나 건물이 무너져야 그제야 '이상했다' 말한다.


 동화에서는 마지막에 어린이가 임금님이 홀딱 벗고 있다고 외친다. 그제야 모두가 나체의 임금님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린이의 눈과 입이 필요하다. 


모 통신사의 광고 모델 설현은 말한다. "이상하자" 

 설현의 '이상'이 정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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