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직은
아이가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귀에 꽂히는 대사가 있었다.
주인공이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아직은’이란 말 좋아해.”
“난 수영을 못해, 아직은.” “난 달리기는 못해, 아직은.” “난 춤을 못 춰, 아직은.”
그 대사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아직은’은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설렘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단어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한 ‘아직은’은 그냥 ‘뒤처졌다’는 소리와 똑같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고,
그 숙련의 시간을 견뎌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직은’이라는 단어를 빼고 말했다.
“난 글 못 써.”
“난 그림 못 그려.”
“난 노래 못 불러.”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리는 말들.
마침표를 찍듯 생각을 거기서 끝내버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문장과 장면들을 포기하며 살았다.
그러다 AI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하나씩 해볼 때마다 신기한 경험이 쌓였다.
“어? 이게 되네?” “이것도 되네?”
지루한 숙련의 시간을 AI와 함께 가로질러 가다 보니,
어느샌가 내 입에서 “나도 되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AI는 내가 찍어두었던 마침표들을 하나씩 지우고 그 자리에 다시 길을 내주었다.
이제 내 일상은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로 채워진다.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를 내가 직접 만들고,
잠들기 전 아이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동화책을 내가 직접 그려서 읽어준다.
예전 같으면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해?”라며
돌아서버렸을 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못해’라고 닫아걸었던 문들을 하나씩 열며 나아간다.
문이 열린 자리에는 다시 ‘아직은’이라는 설렘이 돋아난다.
예전의 ‘아직은’이 나를 멈추게 하는 말이었다면,
지금의 ‘아직은’은 다음엔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게 만드는 시작의 말이 됐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못해,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