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다 일을 못 하는 리더는 어디에 써야 할까

by 우물안고래

어느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일했던 선배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던 중 선배가 툭 던지 말을 꺼냈다.

“요즘 AI가 들어오고 나서 말이야,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는 리더인가 싶어.”

그의 목소리엔 짙은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예전에는 그는 누구보다 먼저 답을 내는 사람이었다.

문제를 정의하는 속도도, 방향을 잡는 감각도 늘 앞서 있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길을 열어주는 유능한 선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3초 만에 그보다 정교한 답을 내놓고,

후배들은 그 도구를 날개 삼아 날아다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가 한없이 작아졌다고 한탄했다.

책임의 무게는 여전한데, 정작 자신이 팀에 기여할 방식은 사라진 것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이건 선배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대를 건너는 거의 모든 리더가 마주한 '존재론적 공포'가 아닐.


사실 우리가 그동안 리더라고 믿어왔던 모습은, '숙련된 실무자'의 연장선이었는지 모른다.

정보가 제한적이고 경험이 곧 권력이던 시절,

리더는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답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하지만 AI는 그 숙련의 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렸다.


여기서 리더는 당황한다.

손에 익은 무기였던 '실무 능력'을 빼앗겼는데, 그렇다고 그 자리를 내려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어긋난 감각이 리더를 불편하게 만든다.


"일은 후배와 AI가 다 하는데, 나는 왜 이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나?"

이런 회의감이 드는 건 어떠면 당연하다. 리더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달콤한 성취감은 실무자가 가져가고, 쓰디쓴 책임만 리더가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일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면 결국 본질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업무상황을 돌아보면, 누군가는 데이터를 가져오고, AI는 수십 개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후배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던진다. 이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그들보다 더 나은 11번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그 파편 같은 아이디어 중 무엇을 우리 조직의 '선택'으로 결정할지 고민하는 일이다.


AI는 기막힌 대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 사표를 던지지도, 실의에 빠진 팀원을 대신해 비난의 화살을 맞지도 않는다. 잘된 선택은 모두의 공이 되지만, 잘못된 선택은 오직 한 사람의 몫이 된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리더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선배의 말처럼 리더의 자리는 확실히 예전보다 좁고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 화려한 지시는 줄어들었고, 실무의 재미도 빼앗겼다. 보상은 예전만 못한데 감당해야 할 인간적인 고뇌는 깊어졌다. 이 상황에서 “기꺼이 리더가 되라”는 말은 어쩌면 무책임한 위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리더의 자리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줄어드는 대신, 안에서 감당해야 할 고독한 판단은 늘어난다. 선택의 근거를 집요하게 설명하고, 사람의 불안을 잠재우며, 실패의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들.


‘내가 무엇을 잘해서 리더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가’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 리더의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자리가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건 밀려난 게 아니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기술의 무대는 기꺼이 내어주더라도, '결정과 책임'이라는 더 크고 묵직한 무대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선배와 전화를 끊고 나니, 리더라는 자리가 가진 그 고독한 무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