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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Sep 21. 2023

“어제 서울 왔다는 할머니, 사실은 62년 전 일이었다

경찰관인 필자가 112 신고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서울의  경찰서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이다. 며칠 전 저녁 9시쯤 112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앞 광장에 할머니 한 분이 몇 시간째 앉아 계시는데 걱정된다.’라는 신고 내용이었다. 후배경찰관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했다.

    

 평범해 보이는 80대 할머니 한 분이 실제로 공원 중앙광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관내 경찰관입니다. 댁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한참 동안 우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만 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저 경찰관 맞아요. 이거 경찰 옷이랑 무전기 보시면 아시잖아요”라며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먼저 119 구급대에 공동대응을 요청하고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10여 분 뒤 소방관들이 도착해 간단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할머니는 지구대로 함께 순찰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구대에 도착하고 물 한잔을 마신 뒤에야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여기 어디예요?”라는 말씀을 하신 뒤 “내가 길을 잃었나 보네”라며 한숨을 내쉬셨다.

     

 “할머니 여기 지구대예요. 경찰서요”라고 말을 건네자 할머니께서는 “내가 어제 친구랑 같이 서울에 왔어요. 초행길이라 길을 잃었나 봐요. 미안해요”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집이 어디신데요?”, “전남이지”라며 짧게 대답하셨다. “아니 거기서 서울까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자녀분들 연락처는요?”라고 물었고 할머니께서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친구는 취직했나?”라며 혼잣말을 하셨다.

    

 할머니께서 들고 계시던 손가방을 열어보니 손수건과 손자가 크레용으로 그려준 것으로 보이는 그림 한 장과 약봉지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은 없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치매 환자였다.

     

해당 사진은 문안순찰 중에 촬영한 것으로 이번 이야기와는 무관

 경찰 112 신고시스템을 통해 치매 노인의 실종자 조회를 하던 중에 인접 경찰서에서 4시간 전쯤에 신고된 이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을 접수한 파출소에 전화로 할머니가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30여 분이 지나 할머니의 50대 후반 아들이 지구대에 도착했다. “어머니 집에 계신다더니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라며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할머니는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냐? 기특하네”라며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어머니께서 어제 서울에 오셨다는데 맞나요?”라고 물었다.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62년 전에 서울에 오셨어요. 시골에서 친구분과 함께 취직하려고 와서 지금까지 계속 서울에 살고 계세요”, “아니 근데 왜 어제 서울에 오셨다고 할까요?”라고 묻자 “어머니께서 치매가 있기 전부터 그때 이야기를 종종 하셨어요. 17살 여자가 낯선 서울에 상경해 별별 일을 다 하시고 아버지와 결혼한 뒤에 자식들을 넷이나 키우셨거든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가장 많이 남아 있나 봅니다”라며 안타까워하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60살이 다된 아들의 손을 잡고 지구대를 나섰다. 그리고 한참 동안 필자는 멍하니 할머니께서 앉아 계시던 의자를 바라보았다.

     

‘시골에서 성장하시다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신 할머니께서 그 당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치매를 앓고 있는 지금의 기억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경찰에서는 치매 노인들의 실종에 대비해 ‘지문 사전등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종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지문과 사진, 보호자 인적사항 등을 등록해 놓고 실종되었을 때 등록된 자료를 활용해 실종자를 발견하는 제도다. 사전등록의 대상은 18세 미만 아동, 지적, 자폐성 정신장애인(연령 무관)과 치매 환자 등이다.

     

 신청 방법은 지구대나 파출소를 방문해 신청하는 방법과 ‘안전 Dream(드림)’ 모바일 앱을 이용해 가능하다. 치매 노인의 경우 사전등록 제도로 정보를 등록해 두면 별도의 실종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경찰에서 신원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 가족 인계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하루에도 한두 건 이상은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경찰서에서 발생한다. 그만큼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2022년 4월 기준 치매 환자의 사전등록 현황은 32.4%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현저히 낮다. 그러다 보니 치매 노인을 찾더라도 신원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고 가족들은 그 시간 애타게 찾게 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치매 노인의 지문 등 사전등록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무리 큰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이번 일과 같은 일을 했을 때 큰 보람과 함께 필자 자신이 경찰관이라는 것에 감사하곤 한다. 오늘도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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