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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Dec 11. 2023

아들 쓰러진 것도 모르고 바나나 드시는 치매 아버지

[112신고 출동 이야기] 쓰러진 아들의 심폐소생술 옆 치매 아버지 모습

서울의 최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경찰관이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한 필자는 어제도 남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교제폭력 현장과 교통사고가 발생한 현장도 출동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지구대 3층 구내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뒤 다시 신고 출동을 한다. 오후 1시 40분쯤 이었다. ‘남자가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 저는 요양보호사입니다’라는 신고를 접수하고 후배 경찰관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했다.

   

신고 발생지인 3층 가정집으로 2분 50초 만에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80대 후반의 중증치매 아버지와 50대 후반 아들 둘이서 살고 있었다. 자치단체의 도움으로 치매 어르신은 ‘치매환자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어 지정된 요양보호사가 1주일에 5일 동안 매일 방문해 어르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최초 신고자인 요양보호사는 치매 어르신 집에 정기 방문했다가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다. 처음 경찰관이 도착했을 때 치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요양보호사는 방안 침대에 누운 상태의 의식이 없는 아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

    

필자와 함께 출동한 후배 경찰관이 인계 받아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에게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어르신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아드님께 인사하려고 안방을 봤는데 의자에 앉아 있어 인사를 해도 말이 없어 가까이 가보니 의식이 없어 자신이 침대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119와 112에 신고했다”고 했다.

   

현장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방과는 119로 다시 전화를 걸어 후배경찰관이 실시중인 심폐소생술의 강도와 속도를 지시에 따라 실시했다. 그리고 무전으로 AED(자동심장충격기)를 요청했다. 단1초라도 빨리 조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무전을 받고 다른 동료가 가져온 자동심장충격기를 의식이 없는 아들의 몸에 부착하고 안내 멘트에 따라 실시하던중 119소방구급대가 도착했고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자동심장충격기가 우리 일생생활 주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두면 유용하다.

그렇게 한발 물러난 후배경찰관과 필자는 방안 아들의 생활반응에 대한 이미지 촬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낡은 소파의 가장 끝자리. 얼마나 그 자리에 앉았는지 충분히 짐작될 만큼 푹 꺼진 쇼파에 앉아 있던 중증치매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일도 일어나고 않고 있다는 표정. 다급한 요양보호사의 전화.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경찰관들의 큰소리와 행동. 쉴새없이 움직이는 소방관들의 모습. 그분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다소 평온하다 못해 인자한 얼굴 아래 양손에는 바나나 한 개를 들고 있었고 천천히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입을 베어 물었다.

    

필자는 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행동을 한동안 묵묵히 지켜봤다. 처음에는 ‘아니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치매가 심해도 저렇게 모를까’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가급적 신고 출동 현장에서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한다. 아마도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경찰관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참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홀로 살아가야할 저 어르신은 어찌할 것이며, 아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또 뭔가. 필자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아버지를 보세요. 제발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몇입 더 베어물던 바나나의 끝이 보인다. 어르신의 얼굴 표정에도 조금전과는 다른 아쉬움이 묻어 있다. 다시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이 상황을 어르신이 모르는게 나을 수 도 있겠다. 아니 차라리 잠시라도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돌아 온데도 모른척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이 더 힘들테니까요’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제 만난 치매 어르신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상황을 전혀 인지할 수 없을 만큼의 중증 치매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던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난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채 병원으로 이송하고 몇시간 뒤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느때와 같이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이제야 고작 3년여 최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동안 직접 심폐소생술을 4번 실시했고 그런 현장에는 10여차례 출동했었다. 물론 생명을 구한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때도 있다. 분명한건 모든 현장은 각각의 사연과 다양한 상황이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도 생명을 구하지 못한 아쉬움은 여느때보다 크다. 그래서 자신이 원망스럽다.


끝으로 홀로 남겨진 치매 어르신의 건강과 하늘나라로 떠난 아드님이 좋은곳에서 아무걱정 없이 편히 쉬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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