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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Apr 15. 2024

영화가 좋았던 아이, 영화와 멀어지다.





극장 일을 선택했던 것은 영화가 좋기 때문이었다. 면접에서 갑자기 떠오른 영화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대답 역시 영화판에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영화는 원 없이 볼 수 있으니까 영화관 스태프로 일을 했고, 꽤 잘 했었다. 


그러다 학교 조교 자리가 나서 그리로 옮겨 계약된 기간인 2년동안 또 충실히 일을 했고, 출강 나오던 영화홍보대행사 교수님(후에 내 직장 대표님)의 회사로 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화 홍보 업무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보도자료를 쓰고 포스터, 트레일러, 전단 구성안도 제출했다. 기자들을 만나고 언론시사도 진행했다. 한국영화를 담당할 때면 배우들도 만났다. 첫 3개월은 내가 하는 일이 화려할 줄 알았다. 겉으로는 그랬다. 


한 편의 영화를 개봉 시키기 위해 끊임 없이 어떤 글이든 써야 했고 써내야 했다. 처음에는 신나게 글을 썼다. 빨리 쓰고 잘 쓰는 법을 그때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글이 안 써졌다. 잠을 못 자니까 사고가 멈췄다. 글자료 요청은 시간이 멀다하고 분초를 다투며 들어왔다. 그 와 중에 회사에 새로운 영화가 들어오면 마케팅 기획서도 써야 했고, 홍보 아이템 아이디어를 내놔야 했다. 잘 시간 쉴 시간도 없는데 끊임없이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짜야하니 나중에는 미칠 지경이었다. 


주말도 일은 계속됐다. 토, 일요일 아침에 편성된 영화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해놓고, 극장에 가서 내가 담당하는 영화 전단지가 잘 걸려 있는지, 다른 영화들 전단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봐야 했다. 영화관에 들러 전단을 수집하고 다음 목적지인 서점으로 향했다. 무비위크와 씨네21을 사서 각 꼭지별로 나온 기사들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워라밸 따위 필요 없다며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그 뜨거웠던 열정은 빨리 달아오른 만큼 빨리 식기도 했다. 


내가 일을 너무 만만하게 봤었나 하는 생각이 매일 나를 괴롭히면서 나는 도망쳤다. 영화홍보사를 그만두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고, 영화관에 가도 전단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무비위크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나는 또 영화가 너무 좋기 때문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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