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야, 사랑은 사고 같은 거라 늘 예고 없이 찾아온대.
너를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너한테 한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너와 내가 아는 사람이 겹쳐서 그냥 말을 걸어본 거였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며 내 탓을 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겠지만 따지자면, 나는 너에게 특별하게 대한 적은 없다. 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네가 특별하게 받아들였다.
처음 네 감정을 느꼈던 순간은 기억도 안 나는 순간이지만, 그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어, 왜 아침마다 나한테 연락을 하지.’
그때부터 나는 아침마다 네 연락을 기다렸다. 정말 하루도 빠짐이 없었지, 평일에는.
너무 핑계가 좋았으니까. 출근 잘하라는, 잘했냐는, 일하기 싫다 등등.
그런데 어느 순간 주말에도 네 연락이 기다려졌다. 내가 딱 그 생각을 하는 주말이었는데 너한테 연락이 온 거야, 정말 뜬금없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비지엠 없는 거 알고 계셨나요?’
그 여름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쩌다 실마리도 없이 서로에게 잠식된 걸까.
당연히 알고 있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했던 영화잖아.
용기가 없어서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네 연락을 기다렸다는 마음을 들킬까 봐, 그래서 이 관계가 예상보다 더 짧아질까 봐. 이런 관계의 끝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냥 평일에만 연락하는 회사동료라는 명목으로 너와 오래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답장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주말에는 네게 답장하지 않았다. 사실 그땐 이미 내 마음을 부정하는 단계도 넘어섰던 것 같아.
그래도 너는 서운한 티도 한 번을 안 냈다. 나는 필사적으로 네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후회가 돼
내가 먼저 연락이라도 하는 날이면 너는 말 그대로 0.1초 만에 답장했다. 네가 운동할 때 빼고는 핸드폰을 달고 사는 걸 그래서 알았다. 근데도 나는 네가 운동하느라 늦게 하는 답장에, 때로는 없는 답장에 서운해했다. 어차피 다음날 아침이면 답장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난 그 서운한 마음을 숨기느라, 애써 죽이느라 억지로 너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워냈다. 근데 그건 진짜가 아니어서 결국 사랑의 또 다른 형태여서, 그게 바로 사랑 그 자체여서 그리고 그걸 지금 깨달아서 그래서 나는 지금 후회 중인 거겠지.
나는 그 바빴어야 할 여름을 너에게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네 생각만 했다. 돌이켜 보니 몇 달을 내가 핸드폰만 잡고 있는 거야, 네게 연락이 있든, 없든.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사랑에 빠져 일상도 거누지 못하는 때는. 근데 정신 차리고 싶지 않았다. 마치 20대 초반에 하던 사랑처럼 그렇게 어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마치 어린애처럼 너를 정신없이 사랑했다.
이제 나는 그 해를 생각하면 오롯이 네 생각밖에 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런 게 다 사고였다고 생각해.
하필 네 옆자리에 앉아서, 하필 네가 그 사람과 동기여서, 하필 그 사람이 내 팀원이어서, 하필 너와 내가 공통점이 많아서, 하필 너를 사랑하게 됐다. 이 중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결국 이렇게까지 너를 앓지는 않았을 텐데. 다 우연한 사고들이었다.
그 여름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한 건 뭐였을까
그 정신 빠질 것 같은 더위에 정말 정신이 나갔던 걸까
무료한 일상에 서로가 한 줄기 빛이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동시에 사랑에 빠지고도 지금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걸 눈치챘음에도 어쩌다 이렇게 멀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