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당신은 잘나가는 중견기업 대표였다. 운 좋은 당신은 승승장구했고, 날개를 얻은 당신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러운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당신에게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를 맞았고, 그 와중에 이혼까지 당하는 불행한 경험을 했으며,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동안 당신은 열심히 구인광고를 챙겨 보았다. 그러다 D 회사의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고,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 부랴부랴 서류를 제출했다. D 회사는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급여가 많은 편이었고, 대기업이었기에 합격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싱 자격증이 있네요? 면접자가 물었다. 아, 네. 당신은 수줍게 말끝을 흐렸다. 취미가 레이싱이라서요, 당신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서류심사에 합격한 이유를 당신은 그제야 어렴풋이 알 듯했다. 백미러를 접고 운전해 본 적 있소? 네? 상식 이하의 질문에 당신은 당황했다. 면접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없, 없습니다. 황당한 당신은 말까지 더듬었다. 가도 좋소. 면접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탈락이 확실했다. 나중에 들통이 나더라도 있다고 할 걸 그랬나. 당신은 그 회사 정문을 나오면서 후회했다.
그런데 인생에는 가끔은 돌발이 있다. 다음 날 합격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당신에게는 돌발이었다. 당신은 반신반의하면서 출근했다. 당신의 임무는 부회장의 차를 운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합격이 되었음에도 당신의 업무가 바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상한 건 운전 훈련소로 출근해야 한다는 점과, 당신 말고도 훈련받는 사람이 몇 명 더 있다는 점이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지만, 대화는 금지였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계속해서 주행연습을 시키는데, 그것도 백미러를 제거한 차로 시킨다는 점이었다. 훈련은 군대 유격 체조 조교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내가 담당했다. 당신은 이 회사가 유령회사는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서도 출근은 꼬박꼬박했다.
왠지 기만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즈음 당신은 뜻밖의 고급 정보를 훈련소 화장실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이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오셨소오? 옆에서 볼일 보던 남자가 당신에게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말투로 물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같이 운전 훈련을 받고 있던 남자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당신보다는 어린 것 같았다. 잘 모르겠소. 당신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 남자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현재 부회장 기사 자리가 공석이어서 우릴 뽑은 건 아니오. 그건 알고 있소? 당신이 모호한 표정을 짓자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현재 기사가 해고당할 경우를 대비해 대기하는 것이오. 그런 점에서 우린 최종합격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곧 기회가 올 거요. 많은 사람이 부회장의 등쌀에 한 달도 못 채우고 해고당하니 말이우. 그러다 보니 1년 내내 기사를 구하고, 하루가 멀다고 사람을 갈아치운다고 합디다. 여하튼 다음이 내 차례니 내가 없어지거든 부회장 차 운전하러 간 줄 아시우. 하긴 머잖아 선생도 기회를 잡을 거요.
당신에게 기회가 온 것은 그 사내로부터 정보를 얻은 지 2주가 지난 뒤였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는 그의 말대로 부회장 운전기사로 채용되었는지 훈련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또 2주일이 지나가고 나자 유격 조교 같은 사내가 일주일 후에 부회장의 차를 운전하게 될 것이라고 당신에게 귀띔했다. 그의 예고대로 당신은 비로소 부회장 차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운전 교습소에서 훈련한 지 6주가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