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 망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론에는 실행하는 사람이 포함되지 않는다

by 이탈자 연대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에서 거의 유일했던 상승기이자 안정기는 대학생 시절이었다. 중간에 군 생활이라는 욕 나오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미래를 꿈꾸며 기회를 만드는 게 가능한 때였다. 이때부터 나는 혼자 수업 듣고 밥 먹고 공부하며 사는 게 편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조별 과제는 불편하며 성과가 없었고, 혼자서 해내는 것만 못할 때가 많았다.


혼자 공부하는 게 당장은 편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마냥 좋은 선택이지만은 않았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며 시야가 좁아지는 단점이 나를 말만 그럴듯한 놈으로 보이게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변해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체력과 정신력을 갈아 넣어가며 내 말이 맞다는 걸 입증하거나, 다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것 외에는.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서야 애초에 불가능한 것만 선택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금은 내 능력과 기질의 범위에서 한참을 벗어난 직업과 상황에 와버린 것이었다. 이제 버티는 것도,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도, 전부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졌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운 좋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사실 고3 여름방학 때까지의 내 성적은 형편없었다. 물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공부라는 걸 하는 방법을 깨달아 가긴 했어도, 최하위권에서 높게 쳐야 중간급으로 올라가는 정도였다. 그러던 놈이 막판에 빛을 발해 상위권 턱걸이에 성공해 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시선도 갑자기 달라졌고, 중요한 건 나 자신도 일종의 ‘뽕’이 생겨버렸다. 그 와중에 모욕에 가까웠던 내 군 생활은 사회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 비슷한 감정이 생기도록 부추겼다. “공부하고 취업해서 다 뒤집어 버리겠다”라는 다짐으로 밤새워 공부했다. 그럼에도 성적 장학금은 근처도 못 가봐서 근로장학생과 알바로 자체 용돈벌이하느라 시간을 많이 뺏겼다.


컴퓨터공학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과 하드웨어 및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이론을, 경영학은 회사가 여러 자원을 굴려서 회사를 관리하는 이론을, 자연과학은 자연과 환경의 여러 규칙에 대한 이론을 정리한다. 이런 학문이 탐구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그 깊이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어졌다. 다만, 그 깊이는 각자의 학문이 탐구하는 대상에게 적용되며, 얼마나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에 따라서만 학문 간에 연계한다.


자연과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문은 실행 주체가 사람, 인간이다.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탐구하는 대상이나 현상 같은 게 벌어지는 출발점 말이다. 공학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관리한다. 사회학이나 인문학도 사람이 하거나 행했던 일과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이다. 학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시작해야 일이 벌어지는 현상이나 이론이 많으며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인간 혹은 한 명의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예상과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작 나부터도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고민할 때 이 ‘사람’이라는 변수에 대해 아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이론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없다면, 실행자 혹은 관련자가 얼마든지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생각으로 밖에는 남지 않는다. 애초에 그 정의도 애매한 탓에 주변에서 작정하고 개입하거나 가정하지 않았던 변수나 상황이 생기는 순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이론은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 가능할 뿐이라서, 그 ‘상황’이 달라지는 순간 처음의 의도와는 아예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릴 뿐이다.


공부만 잘했던 사람이 사회로 나와서 적응을 못 해 어려움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현실 검증이 안 된 나만의 이론을, 생각 안에 잔뜩 집어넣고서는 세상에 외치고 있었다. 그 이론은 아쉽게도 나한테 조차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진실도 모른 채 진리라며 망상 속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모양새였다. '뇌피셜'이 멈추고 나니, 뭐 하나 정리된 게 없는 뒤죽박죽인 세상 속 더 엉망진창인 내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모순도 역설도 없었다. 그저 ‘나’라는 실행자를 가정하지 않은 근거 없는 생각을, 내가 실행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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