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는 연습, 필사 /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Chapter 1. 나를 잃어가는 듯한 불안함을 해소하는 문장 필사

by 인셍



올해 연말도 이렇게 끝나간다


한 해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이 시간은

항상 행복하고도 괴롭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마냥 들뜨고 설레기만 했던 이 시간이,

사회인으로서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는

이유 모를 초조함과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1년을 어떻게 보냈나,

돌이켜보면 올해는 상당히 전투적인 한 해였다

상대방이 늘 바뀌었던 괴로운 전투는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나'로 잘 살아보려는

'나'와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재작년 5월, 요세미티 국립공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저서 「월든」은

내가 회사 생활과 인생의 고민들로

힘들어하고 있던 올해 초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대부분은 매일 혹은 며칠 간격을 두고

아주 조금씩 읽었고

마음이 동하는 날에는 몇 챕터를

한꺼번에 읽기도 하며

이 책을 겨우 끝냈다

중반까지만 해도 소로우의 대자연에 대한 예찬,

문명사회에 대한 오버스러운 비판이

내 마음에는 닿지를 않았더랬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맺음말까지 읽고 나서는

사실은 우리와 우리가 몸담은 사회를 향해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잔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소로우의 진심임을 깨달았고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책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월든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그동안 기록한 필사 노트를

조금씩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다시 곱씹기 위함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할 만큼은 깨어있다.
하지만 백만 명 중 한 사람만이
효과적인 지적 활동을 할 만큼 깨어있으며,
1억 명 중 한 사람만이
시적인 또는 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깨어있다.
깨어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때까지 완전히
깨어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하며
그 깨어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우리가 사물을 보는 분위기나 매체를
조각하고 색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훨씬 더 멋있는 일이며,
실제로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사소한 부분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중 (138p)



올가을, 양평 두물머리



오랫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바를

이토록 빼어난 문장으로 실현된 것을 보다니.

숲에 들어가 살면 모든 감각이 총명해져

이렇게 또렷하게 사고할 수 있게 되나 보다.

항상 깨어있고, 그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

회사를 다닌 후 나는 줄곧

죽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다.

세상의 값진 것을 온전히 느끼며

깨어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인생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어둠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숭고하고 소중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기록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자주 만드는 것이다.

2025.6.14.





​​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할 때,
오직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들만이
항구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이나 사소한 쾌락은
참된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는 항상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중 (147p)



재작년 5월, 요세미티 국립공원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하자.

오직 위대하고 가치 있으며

항구적인 것들에만 집중하자.

사소한 두려움이나 쾌락이

나를 잠식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

그렇게 하여 용기를 얻자.

그리고 이 구절은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는 나침반으로 삼자.

2025.6.15.






“나의 경험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나는 나의 일부분이면서
나의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나의 경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단지 방관자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부분은 '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삼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고독' 중 (205p)



올해 5월, 호오말루히아 식물원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중성,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방관자인 나.

나는 이걸 잘 컨트롤하지 못해

늘 괴로워하는 느낌이다.

소로우가 말한 이런 이중성이

부정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특히 타인과 있을 때 또 다른 나를

내가 방관하고 있음이 더 잘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정체성 모르겠는 또 다른 내가

횡설수설 혹은 뜸 들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을 때도 있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

그런 시간을 많이 늘리면 타인과의 공존에 있어서도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될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는 소로우의 말에 동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임을

못 견뎌하는 것도 나인데)

"덕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 논어 제4편 25절.

홀로 사색하는 것을 즐기고,

고독을 고통스러워하지 말자.

나의 덕에는 반드시 이웃이 있을 것이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소로우의 문장들과

그 구절을 읽을 당시 썼던 짤막한

나의 느낌을 함께 옮겼다.

나를 잃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누군가는 이 문장들을 꺼내어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