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오타쿠의 자기 기만

by sun

작년 이맘때 읽었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이어지는 책이다. 이 책은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렇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어떠한 문학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인공 환경의 문학(데이터베이스로부터 형성된 인공 환경에 의거하여 만들어지는 문학)으로서 이야기가 살아남을 것이며, ‘반투명의 언어’와 ‘메타 이야기성’에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환경 분석적 독해를 통해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를 대상으로 새로운 비평이 가능해진다고도 말한다.


대부분 라이트 노벨 작가들과 미소녀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은 비평적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제작하지 않으며, 소비자들도 그러한 의도를 파악하며 소비하지 않는다. 오타쿠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은 본인들의 압도적 불능감을 뒤집어, ‘시선으로서의 나’의 전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몇몇 작품들이 무의식적으로 장르의 조건이나 한계를 폭로하며, 오타쿠들의 자기 기만을 도려내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그 작품들을 ‘비평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오타쿠의 자기 기만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오타쿠의 삶’은 보다 큰 문제의 축소본일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으로 인해, 주체성의 근거가 소실되게 되면서, 라이트 노벨이나 미소녀 게임의 작품 소비가 증가하였다. 이는 사회에서 얻을 수 없는 주체성을 그러한 작품들이 부여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체성은 아주 빈약한 주체성인데, 왜냐하면 압도적인 불능감을 정반대로 뒤집어 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불능감을 무비판적이게 전능감으로 변환하는 것이 ‘오타쿠의 자기 기만’이며, 이러한 기만을 일깨워주는 일부 작품들은 비평적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분열-“우리는 안 되는 놈들이니까 아버지가 될 리는 없겠지만 아버지적인 욕망은 억누를 수 없다.”-을 묻어두고 빈약한 주체성을 얻는 것이 아닌, 불능성에 대한 비평적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화두를 던지며 책이 끝난다.


‘오타쿠의 삶’이 보다 큰 문제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듯이, ‘오타쿠의 자기기만’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염증이 일어나는 다양한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을 보면, 사회적 환경이나 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주체성의 근간이 너무나 쉽게 흔들린다. 불능감에 따른 패배주의가 팽배해진다. 그 패배주의는 전능해지고 싶은 욕망과 그렇기에 생기는 무력한 패배감의 분열로 지탱되는 것 같다. 이러한 해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배감을 무비판적으로 전능감으로 변환하려는 것. 어느 유명인이 실수를 하면, 그것에 달려들어 도덕 심판관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도 ‘오타쿠의 자기기만’의 한 형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불능성에 대한 비평적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비평적 사고 자체가 불능이 되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인 차원에서 또 구조적인 차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