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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May 20. 2021

내가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

라이프스타일에는 그렇게 된 이유와 배경과 사상이 담겨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짐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그램 감성뿐인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진짜 미니멀리스트이다. 미니멀리스트의 정의가 변질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어 보여 짚어보았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는 그렇게 된 이유와 배경과 사상이 담겨있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된 배경이 있다.


20살부터 시작한 첫 원룸 자취방에서부터 한정된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싶은 갈망이 불러온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내 라이프스타일로 굳어졌고 투 룸으로 이사 온 지금까지도 몸에 배어 있다.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죽도록 혐오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편리해 보이지만 자주 쓸 것 같지 않은 커피포트, 믹서기, 에어 프라이기, 다리미를 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끔 사용하는 거라면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가끔 물을 끓이고 싶으면 커피포트 대신 냄비에 끓이면 되고 튀길 게 있으면 에어 프라이기 대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튀기면 된다. 편리함보다 실리를 따진다.


물건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분실하는 경우가 잦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쏟는 일이 많다. 무거운 것을 싫어하기도 해서 평소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치고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변을 보면 이것저것 다 챙겨야 해서 짐이 많아 가방 한 가득 물건을 담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다. 그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고 나는 좀 다르다. 단출하게 지갑, 핸드폰, 립스틱 세 가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가면 충분하다. 출근할 때 그렇게 가는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자취를 할 때는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준 것들을 군말 없이 집 안에 다 비치하고 쓸모없는 물건들이 생겨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간 쓰겠지 싶어 쟁여두고 있었다. 혼자 살아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고 홀가분해졌다. 요즘엔 당근 마켓이 활성화되어 안 쓰는 것들을 처리하기 더욱 좋은 시대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요 없는 것들 중 혹시 팔만한 것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있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내 기관지를 위해 자주 청소해야 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한 몫했다. 가구, 장식이나 소품이 많이 없어야 청소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러그나 잡동사니를 전시하거나 늘어놓으면 일일이 하나하나 다 들어가며 닦아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아무리 맥시멀 리스트여도 구석구석 세심하게 청소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리 부지런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편한 것을 추구하는 자취 10n연차의 짬은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가끔 내가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던지는 질문이 있다.

집에 큰 불이 나 당장 급하게 몇 가지만 챙겨서 도피할 수 있을 때 과연 무엇을 챙겨서 나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친구들의 다양한 대답을 들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의 인생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재미있다. 보통은 신분증,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과 본인이 가진 물건들 중 가장 값비싼 것들 몇 가지와 사진 같은 추억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곤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 외에는 없어져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침대 없이 딱딱한 바닥에서 취침하며 온몸에 근육통을 느끼며 살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얼마나 필요 없는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하라.

-톨스토이


덜어내자. 자유로워지기 위해. 언제든지 떠날 각오가 되어있다는 듯이 내 주변을 정리하면서 필요한 것만 구비해 놓고 사는 내 라이프스타일이 꽤 마음에 든다. 지금보다도 더 단출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버릴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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