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변한다
‘후문을 폐쇄합니다.’
‘아이들 복장을 내일부터 단속합니다.’
교장이 바뀌었습니다. 더불어 학교 문화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의례 있었던 일들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왜 교장이 바뀔 때마다 학교문화가 바뀌는 거지?’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교육제도 하에서 비슷한 학교들을 운영하는 것일진대 왜 일관된 교육적 학교 운영 철학을 공유하지 못하는 거지 ?’하는 의구심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답이야 뻔합니다. 교장 맘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적 기관이라는 전제가 당연히 최우선이어야 할 학교일진데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교육철학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단위학교별로 학교장이 마음대로 하고자 한다면 교장의 학교 운영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러니 각 교장의 철학(?), 소신(?), 아니 법이나 공문을 위배하지 않는 한 당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교장의 주관적인 관점, 수준에 의해 학교 운영이 달라집니다. 최악으로는 '교복을 입지않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시요.'라는 교장도 생겨납니다.
교장 자격 연수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바람직할 것이라는 일관된 교육철학을 심어주기보다는 대부분의 연수가 행정과 안전 관련일 것이고, 나머지는 각자의 교장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일 것입니다. 단지 공통적인 것은 공문에 의한 교육, 그리고 사고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과 교육철학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새로운 교장을 맞이할 때마다 매번 학교문화에 대한 운영방식이 달라질 리가 없습니다.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교장들 간 공통적이면서 바람직한 교육적 원칙과 교육철학이 존재하지 않고 있어 학교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나 바람직한 학교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교장의 개인적 특성(?), 또는 리더십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철저히 행정 위주 관점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 둘째, 관리자로서 행정적, 관리적 관점을 우선하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또는 우선적으로 교사들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고자 하는 교장, 셋째, 무사안일로 굳이 적극적으로 개입 안 하고 사고만 안난다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관찰자 입장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교장, 넷째, 보신주의적 자세로 일관하면서 나름 자신의 철학을 자신있게 펼치고자 강요하는 교장 등입니다. 어차피 교사 자질을 향상시킨다거나 보다 나은 교사로 업그레이드해 줄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교장은 거의 없습니다. 해서 그나마 나은 교장은 둘째 유형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형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 번째 유형의 교장도 그리 많지 않지만 그나마 교사들이 가장 편하게 여기는 교장입니다. 그래도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자 하는 활동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네 번째 유형입니다.
'아니, 무슨 의도로 이렇게 합니까? 교복자율화는 학교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복 자율화에 대한 아이들과 교사들의 의견수렴 결과가 교장의 의도와는 크게 차이가 나왔는지 메신저를 보내자마자 교감이 내가 근무하는 2층 교무실로 득달같이 달려오며 내뱉는 소리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교문에서 교복 착용 문제로 교사와 아이들이 부딪치는 나날이 반복됩니다. 교사 초임 시절에 보던 모습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머리나 치마 길이 등 용모를 가지고 난리 치던 모습은 사라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봅니다. 보다 못해 학생회와 함께 아이들이 교복을 안 입는 이유와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 교복은 있으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교복 자율화 항목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교복이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죠. 특히 3학년 아이들은 커지는 덩치를 교복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꾸 교복을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하는 교감 및 담임들과 심하게 부딪칠 수밖에요. 아이들도, 그리고 교사들도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고 갈등을 유발케하는 교복 문제에서 교복 자율화를 대다수 원하고 있지만 관리자 자신들의 방향성과 반하는, 아니 자신들만의 교육철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이에 반하는 아이들과 교사들의 의견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장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한 교장들이 네 번째 유형에 많이 속하며, 그중 최악은 교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학교 운영 철학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오직 자신만의 신념으로 자기만의 학교를 만들어가고자 기를 쓰는 교장입니다. 교육적 철학이 결여된 채 교장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왜곡된 승진체제를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관리자는 교사들과의 관계를 오직 수직적 관계로만 인식할 뿐 ‘역할만 다를 뿐 동반자’라는 인식을, 교사들과 단위 학교를 운영하는 교육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학교에서의 교장 임기는 길어야 4년입니다. 짧게는 1년 만에 이동하기도 합니다. 한 학교에 전보되어 근무하는 교사들의 근무기간 5년보다 짧고, 그 학교의 아이들이 재학하는 기간보다 짧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내 학교인 것처럼, 영원히 그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학교 운영을 강조하고 심어주려고 기를 씁니다. 잠깐 왔다가는 교장들의 일관성 없는 교육철학에 학교들은, 그리고 교사들은 교장이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게 됩니다.
교장 자리에 오른 교사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무조건 승진 점수만 기쓰고 채워서 교장 자리에만 오르려고 했던 교사와, 교장이 되고 나서 자신이 갖고 있던 바람직한 교육철학을 펼쳐 보이고자 노력하는 교사입니다. 즉, 교장 자체가 목표였던 교사와 교장 이후의 목표가 있던 교사들로 나누어집니다. 아쉬운 것은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교장들이 그저 교장이 되려고만 했던 것이지, 교장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철학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 철학이 없는 교사들, 관리자들과 생활한다는 것은 참 끔찍합니다. 오히려 교장 집단이 학교 개혁에 짐이나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 학교 현장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관리자들 밑에서는 교사들이, 나중에 교장이 될 수 있는 교사들이 바람직한 학교 운영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껏 교사들이 바람직한 교육적 마인드로 무장되었을지라도 교장의 철학이 초를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교사 양성과정이나 교장 승진 과정에서 교육 본연의 교육철학, 그리고 바람직한 학교 운영에 관한 일관된 철학이니 의식 형성 과정이 결여되었거나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학교가 교육정책이나 시대적 요구에 의해 발맞춰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장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냐에 의해 방향성 없이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작 필요한 학교 자치는 없고, 교장 자치만 있습니다.
교육변화를, 더 나아가 교육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교육부도 교육청도 도움이 안 되고, 교사들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면, 학교 개혁에 가장 먼저 앞장서야 하고, 가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집단은 교장들입니다. 또한 학생지도부터 수업혁신 모든 분야에서 단위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우선 방법은 교장이 롤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적이고 전문적 자질이 전제될 수 있을 경우입니다. 분명한 것은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 학교 밖에서 기대하는 학교 개혁은 우리 제도 하에서는 거의 90% 이상이 교장의 교육철학에 달려 있습니다. 역으로 교장의 철학과 능력 이상으로 학교가 발전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미국의 교사들은 전문적인 심화 과정을 거친 후 본인들이 다양한 능력과 경력을 쌓아 교장 자리에 지원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학교 자체의 몫입니다. 단위 학교 자체적인 심의 위원회에서 자기 학교에 지원한 예비 교장들을 충분히 심사해서 적격자를 뽑게 됩니다. 당연히 바람직한 교육적 철학을 공유하지 못하거나 역량 없는 어설픈 지원자는 선발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처럼 교육적 철학, 역량과는 상관없이 진정한 교사 기준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승진 점수만 차면 교장 자격을 얻고, 교육청이 의무적으로 발령하는 방식과는 천지차이입니다. 비교육적이고 개인만의 소신으로 무장한 관리자나 교사에 의해, 그 결과 비교육적인 잣대에 의한 교육 활동들이 만연한다면 학교는 쉽게 망가질 수 있으며, 교사들과 아이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