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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수업은 '코칭'이다

- 교사 전문성

by 무상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을 해서, 거점학교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


내가 있는 지역은 작은 도시라 그나마 몇 개 있는 고등학교끼리 힘을 모아 각 학교에서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강좌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쳐보자는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일명 ‘거점학교’라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구별로, 또는 인접한 학교들끼리 역량 있는 교사들을 선발하여 대처하였던 방식인데, 나름 작은 지역에서 해볼 수 있는 바람직한 노력입니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교사들이 별로 없다 보니 각 학교별, 그리고 교과별로 반강제적인 강의를 배정받게 되었나 봅니다. 강의를 배정받은 고등학교 근무 9년 차 교사가 난색을 표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자인합니다. 오직 수능만을 위한 지식 주입 수업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또 현 제도가 그런 수업만을 강조하다 보니 생긴 폐단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윤리과 1정 연수를 받을 때 내가 같은 팀에 있었던 교사들의 수준을 알고 깜짝 놀랐던 상황이 뇌리를 스칩니다. 자유로운 주제를 선정하고, 관련 내용들을 조사, 선별, 논문식으로 구성하여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최고 대학을 나온 젊은 교사들이 주축이 된 팀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의외였던 점은 첫 번째 미팅에서 발표수업의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젊은 교사들 어느 누구도 주제에 대하여 어떤 내용을 탐구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접근을 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아마 윤리과라고 해서 윤리사상 관련 내용들을 탐구하는 것에 주력했을 뿐 이를 아이들과 펼쳐내는 과정, 방식에 대한 학습, 경험은 아예 없는 듯합니다. 아니면 고등학교 때 굳어진 암기식 수업방식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은 아예 접해보지 않았거나 내용을 알면 어떻게든 가르칠 수 있겠지 하고 제쳐두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교사들이 부실한 교사양성과정에서 성장한 결과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반영됩니다. 아이들과 주제 탐구 및 토론 수업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오는 동안 무슨 '능력'을 길러온 거지?’라는 강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고 3이 될 때까지 토론 수업, 탐구 수업, 발표 수업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고 3이 되어서도 자기주장 하나 제대로 구성하고 전달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왔고, 무엇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몰아쳐왔나 하는 회의가 듭니다.


수업(授業)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생들에게 ‘업(할 일)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교사는 수업과정에서 필요한 개입 및 예리한 지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채 적절한 수업자료를 제공하고, 이를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교사들이 가장 열심히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교사 중심의 교육 환경에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 환경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돼야 한다는 소리를 20여 년 전부터 들어왔던 것 같은데 우리는 아직도 교사들 스스로 학습자 주도의 수업환경을, 그리고 이를 이끌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습자 주도의 수업이란 그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판단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인 폴 김 교수가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교사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교육자는 ‘티칭’이 아니라 ‘코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부족한 점과 잘하는 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단순 지식 전달 차원에서 가르침을 이끌어 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하위 1%에 속하는 성적을 보였던 김 교수가 미국 유학 가서 영어를 거의 못할 때 음악수업을 선택하여 들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5장 써오라는 것인데, 영어를 못하니 ‘this music is good’ 한 문장만 써서 제출하였다 합니다. 담당 교수가 다시 불러 본인이 자신 있는 언어인 한국말로 5장짜리 다시 써오라 한 뒤, 그 내용을 영어 사전으로 찾아서 번역하여 설명하라 했답니다. 띄엄띄엄 겨우겨우 이루어진 그 설명을 1시간 이상 경청한 교수는 ‘이 수업은 영어 수업이 아니고 음악 감상 수업이니 A를 받을 자격이 있다.’하면서 A 학점을 주었답니다. 이후 김 교수도 공부에 자신감을 얻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서 그 담당 교수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였다고 존경을 표하였습니다. 이것이 ‘코칭’입니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학습동기를 부여하면서 학습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의 전환입니다.


일제 치하 교육자 김교신 선생의 학습자 중심 수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폭넓은 식견과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교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교수방법은 학생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게 돕는 것입니다. 수업 서두에 관련된 지식이나 방법을 가르친 다음 아이들에게 자료를 주고 모둠학습이나 스스로 공부하게 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지리 과목에서 지리와 연관된 철학, 문학을 통합해서 가르쳤고, 지식과 외부적 사실, 현상들을 연관해서 가르침으로써 단순한 지식 전달을 뛰어넘어 역사의식까지 심어주는 등 지식의 내면화를 꾀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김교신 선생님은 교육을 통하여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이미 알고 행하신 듯합니다. 이러한 김교신 선생의 교수 방법이 우리가 강조하는 '코칭'입니다.


많이 가르치고, 많이 배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탐구하고 익히는 것이, 그리고 교사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끄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수업입니다. 배우는 학습보다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이 흥미를 높일 수 있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도 있으며 다른 영역에 대한 흥미와 욕구까지 증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미국에 있을 때 자주 보아온 교육 관련 방송(아마 우리의 EBS와 같은 기능을 가진)에서도 우수한 교사들의 수업 모습을 녹화하여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차이점은 우리 교사들은 교재 내용에 대한 철저하고 알기 쉬운 설명에 주력하는 한편 미국 방송에 나온 우수 교사 모습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거나 가치 있는 좋은 과제를 던져주고 탐구하고 생각하게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수업 모습은 학생 주도적이고, 탐구하면서 궁금한 내용이나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하여 던지는 아이들의 질문과 교사의 답변 및 개입, 그리고 다시 탐구를 자극하는 이어지는 교사의 질문.. 대부분 이런 모습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교사 일방적인 강의 위주의 모습은 어느 녹화 수업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교사가 가르친다는 것은 ‘코칭’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깨우침’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탐구 과정을 통해 얻어진 내용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지식의 가치를 인식, 확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수업들의 공통점은 '과정 지향적' 교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육학에서는 지식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결과 지향적 교사(product- oriented teacher)보다는 개인의 개별적인 학습과정을 더 중시하고 이를 촉진할 수 있는 과정 지향적 교사(process-oriented teacher), 또는 학습자 중심 교사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정 지향적 교사란 산출 지향적 교사와는 달리 미리 결정된 목표 없이 학생들에게 학습자료나 내용을 가볍게 소개하고 학생과 함께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교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교사는 전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아이들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 과정에 자연스럽게 개입, 지원하며 녹아들 수 있어야 합니다.




미성숙한 아이들을 지식에 대한 ‘깨우침’까지 이끌려면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교사의 참을성과 인내심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교사의 다양한 관점과 전문적인 교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교직 경험에 의하면 교사의 성향과 그 교사가 펼치는 수업방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통제와 지시에 종속적으로 움직이는 교사들, 외적인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교사들 대부분 교사 주도적인 수업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이들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 과정을 지켜볼 믿음이나 인내심보다는 직접 지시적인 수업이나 일방적인 교과서 내용을 전수하기에 급급한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만의 수업방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변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학생 중심적 학습은 비효율적인 학습방법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학생 중심, 그리고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교수방법에 대한 교사의 인식이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문제는 교사 인식 변화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내가 더욱 기이하게 생각하는 점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주 연수이자 자주 듣는 입시 연수에서도 교과 담당 교사가 기록하는 생활기록부 교과별 세특, 즉 수업 시간에서 아이들의 수업자세 및 학습 능력 등에 대한 기록이 수시 입시 결과에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 입시에 상당히 중요한 영역임에도, 그리고 그렇게 입시 연수를 듣고서도 여전히 아이들의 수업 특성을 관찰할 수 없는, 그래서 아이들의 특기사항을 기록할 수 없을 ‘일방적’ 강의식 수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령 있는 교사는 강의식 수업을 내내 하다가 학기 중간에 1번쯤 과제를 주고 발표하는 등 1회성 변칙 수업을 통하여 교과 세특을 겨우 기록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교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단편적 지식을 암기하게 하고 이것을 묻는 시험에 좋은 성적을 내게 하는 것이 우리 교사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학습이나 학업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우리 입시 제도하에서는 교사의 능력이 전문적일지라도 교과서 지식을 우선적으로 전달하는 수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 수업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실제 문제풀이 시험에는 도움 되는 방식이 아닌지라 대부분의 교사들이 하지도 않고, 실제 전개하지도 못합니다. 물론 아이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입시 위주의 수업에서 최적의 전략은 얼마나 설명을 잘하고, 빨리빨리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저 시험에 나올 정도의 지식만을 가르쳐 주기를 원합니다. 제대로 된 가르침을 펼쳐 보이기 위하여 다양하면서도 전문적인 교사의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제도도 아이들도 받쳐주질 않습니다. 그러니 교과서의 방대한 내용을 서둘러 가르치고 외우게 하는데 급급한 교사 탓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도의 문제이자 동시에 교사의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알량한 교과서 지식만을 전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현 입시제도가 교사들을 무능하게 만들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입시제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업 여건으로는 제대로 된 수업을 펼쳐 보이기가 녹록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된 결과 학력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교사들은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감축 정책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공부한 바로는 위에서 언급한 바람직한 수업들을 제대로 전개하고, 수업 효과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15명 전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수업시수 감축, 교원업무 경감 등이 교사들의 본연의 업무인 수업과 아이들 생활지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당연하면서 간절히 원하는 정책입니다만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교사 감축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책이 항상 학교 현장의 바람과는 반대로 그래왔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입시제도 덕분에(?) 교과서에만 의존하는 안일한 수업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수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입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수업을 펼쳐낼 수 있는 준비, 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라는 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자기 교과뿐만 아닌 다양한 교수방법에 대한 통찰, 그리고 자기 교과와 관련된 영역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식견들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편협되고 단편적인 자기 교과 지식에만 의존하는 교사들이 더 이상 나아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 교사들은 자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 과연 지금의 지식위주의 입시제도가 없어지고,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등 수업 관련 모든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나는 최상의 수업을 해 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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