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라이언 온 로터스
해운정사에 주석하시는 전 조계종 종정예하인 진제선사님을 친견했다. 미리 약조한 곳도 아닌데 무작정 찾아가 뵌 것이다. 마침 오전 예불 직전이라 시자스님께서 시간이 별로 없다고 알려주신 데다가 오후에는 남해 성담사 불사로 내려가시면 오래 계실지도 모른 다고 해서 짧게 여쭙겠다고 하고 간신히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해 후쿠시마원전 재처리수로 걱정된 마음에 아내와 함께 친견한 후 다음이다. 나라가 불안정할 때 가장 지혜롭고 안목이 높으신 큰 어른께 지혜를 청하는 것이 무슨 큰 허물이 있을까 싶어 찾아뵌 것인데, 그럼에도 불고 하고 뭔가 한 소식이 있어, 깨달은 바를 인가받거나 공부한 수준을 점검받는 것도 아니고 화두는 온 데 간 곳 없는 채로 쪼르륵 달려간 것이니만큼 친견 후 돌아 나올 때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살펴본 작금의 사태에 대한 견해를 말씀드리고, 국가가 진 일보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리고 혹시 불교계에 전하실 별도의 수시가 있으신지도 여쭈었다. 당연히, 일국의 대통령이 계엄을 발동하고 또 구금되어 있는 이 처참한 상황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한 견해도 포함해서. 나 자신 특유의 횡설 수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사이도 없이 시간도 없다 하니 주르륵 여쭈었다.
전언을 그대로 다 옮길 수는 없지만,
현 상항이 참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결되고 미래엔 더 밝게 풀릴 것이라고 하시며,
다시 한번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참나를 찾아 대오각성해야 한다는 본분사를 남기셨다.
다음엔 공부 잘해서 찾아뵙겠다고 하고, 구순이 넘으신 선사님 옥체를 잘 보존하시길 청하고 물러났다. 조주선사는 120세까지 사셨으니, 꼭 기록 경신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동시대의 진인을 뵙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 아마, 아직 전법 제자가 출현하시지 않아서 계속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계시는 것이리라. 십수년 전에 화두와 함께 받은 책과 CD들을 부지런히 보고 그 심오한 뜻을 알아내려 했지만 불가득 불가지다. 드러나는건, 욕심 가득한 망념의 회오리니 도인들의 세계를 염탐하는 것 조차 언감생심이다.
신 냉전체제 대척점의 대리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정세는 시시각각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약 2개월간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온 마음으로 살피고 추정하고 조사하며 애달픈 마음으로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결국, 모든 국민들의 평균 의식(열망과 의지)수준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 지을 것이다.
해운정사에 갈 때마다 관음보궁에 들러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평화의 탑을 합장하며 세 번 돈다.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해 우리나라 각 명소에 있는 사찰에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다양한 불사가 오랫동안 진행 되어왔다.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도 평화통일에 대한 진실한 염원을 담은 기도를 해오고 있다. 당연히 뿌리 깊은 나무는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인 이러한 마음의 힘들은 오랜 역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 의지들과 함께 거대한 에너지를 담고 한반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30 세대들부터 눈을 뜨고, 분리되었던 그들만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온 힘을 다해 나라의 문제를 해결코저 하는 순수한 그 힘들이 여기에 더해지고 있다.
이제, 전문성과 경륜을 갖춘 지식인 혹은 전문인들이 함께 움직일 시간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각 분야마다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전문가들은 오로지 현 국가 시스템의 오류와 모순의 허물만 짚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인들의 특정 대상으로 행해 던진 말 한마디의 영향력은 그 파급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피차간에 원하지 않는 고통과 파경에 이를 수 있다.
"저 달을 보라.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흔히, 드러난 상황보다는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표현을 빗대기도 하고 보다 불법의 근본 교시측면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는 것 외에 말과 글을 쫓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여기서 우리가 별로 주목하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가리키다"이다. 왜 가르치다가 아닐까?
"가르친다"는 것은, 은연중 선민의식과 우월감 그리고 서로 다르다는 구분성을 갖는다.
하지만 너도 나도 본래 갖고 있는 서로 다르지 않은 본성을 바로 보는 것을 돕기 위해 부득이 말과 언어를 빌렸기 때문에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다.
이 커다란 소용돌이에서 흑과 백 그리고 좌 와 우로 분리된 것이 어떻게 서로의 탓이겠는가.
이건, 서로 각자의 분별로 구분짓고 끝내는 분열되어 버린 너와 내가 함께 짓는 "공업 (共業)"의 결과이다.
그래서, 지금 나 스스로도 끝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누군가를 비난하며 가르치려 할 때가 아니라, 다같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때가 아닌가 한다.
기적은,
그때 일어날 것이다.
[골든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