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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꾸는 나 Jan 05. 2022

나는, 엄마입니다

 나는 두 딸의 엄마이다. 첫째는 12살, 둘째는 9살이다.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랐다. 세월이 참 빠르다.


 예쁜 첫째 얼굴엔 점이 있다. 밀크 반점. 생후 80일부터 왼쪽 볼에 거뭇거뭇한 게 묻어 있더니 크기가 커졌다. 여자아이 얼굴에 점이라니. 마음이 무너진다. 첫째 36개월부터 어린이 피부과에 다닌다. 매주 한 번 레이저 치료를 하지만, 완치는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희미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릴수록 치료 효과가 좋은데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해 엄마 마음은 애가 탄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춘기가 되면 호르몬 때문에 점이 진해질 수 있다고 한다. 또 아이는 레이저 치료를 힘들어한다. 아프단다. 선크림도 두 시간마다 발라주어야 효과가 좋은데 시간 맞춰 바르기가 어렵다. 유치원 다닐 때는 선생님께 부탁했다. 그러나 학교는 스스로 해야 한다. 쉬는 시간마다 바르라고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쉽지 않은지 잘 바르지 않는다. 점이 더 진해지는 것은 아닌지 늘 조마조마하다.


  귀여운 둘째는 시력이 나쁘다. 30개월 때, 아이가 사진을 보는데 미간을 찡그리고 너무 가깝게 본다. 다음 날 동네 병원에 갔다. 엄마의 직감은 맞았다. 안과 의사는 아이가 어린데 시력이 너무 낮아 이상했는지 여러 번 검사했다. 검사 후 대학병원에 가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다. 아이는 이미 ‘-5디옵터’였다.


  1년 동안 ‘-2디옵터’가 떨어졌다. 안과 의사는 심각히 말했다. 이 속도로 나빠지면 20대에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 같은 노인성 질환이 올 수 있다고. 의사는 시력이 나빠지는 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는 ‘아트로핀’ 안약 치료를 권유했다. 우리나라는 12세 이상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약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료하지 않으면 아이가 약시가 될 가능성이 컸다. 안약 치료 부작용의 불안함을 안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큰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늘 동공이 확장된 상태라 아이는 가까운 곳을 잘 보지 못했다. 가깝게 있는 책상, 모서리 등에 부딪히고, 넘어졌다. 다리는 늘 멍이 들었다.


  아이들 질병이 완치되기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질병에 완치가 없다는 막연함은 늘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였기에 최선을 다했다. 첫째 피부과도 열심히 다녔고, 둘째 안약도 빼먹지 않고 넣어주었다. 엄마로서 잘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버텼다.


  시간이 흘렀다. 첫째가 ‘성조숙증’ 진단을 받았다. 둘째는 ‘ADHD’ 란다. 화가 났다. 하나님께 대들었다. 그 정도면 되었지 너무 하시는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질렀다. 좀 편안하게 살면 안 되겠냐고 삿대질을 했다. 무너진 나의 마음은 아이들에게 분노의 눈빛과 공격의 언어로 표현되었다. 아이들은 불안해했고, 둘째의 틱은 더욱 심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들이 보였다.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였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 힘도 나지 않았던 나는 기도했다. 내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그리고 내 아이들이 가진 아픔을 통해 엄마로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응원해 주는 엄마가 되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마라톤 경주를 시작했다. 멀고도 험난한 길이겠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나를 너무 채찍질하지 말고 잠시 쉬어 가야겠다.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 봐야겠다. 혼자 아닌 척하지 말고. 지금은 결승점이 보이지 않지만, 나와 늘 함께하는 하나님이 있기에 완주할 것이라 믿는다. 최고의 연출가인 하나님이 어떤 작품을 만들지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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