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 알림 톡이 왔다. 여러 번 있었던 일이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었다. 첫째 아이 반에서 확진자가 생겨 첫째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밀접접촉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다음 날 아침, 가족 모두 보건소에 검사하러 갔다. 안내 직원은 우리가 ‘밀접접촉자’ 임을 밝히니 멀리 떨어지라며 앞, 뒤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누구 탓도 아니건만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다음 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족 모두 집에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엄마 나 코로나 걸리면 혼자 병원 가야 되는 거야?”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첫째를 달래긴 했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검사를 받고 와서 바로 자가진단 앱을 휴대폰에 설치해야 했다. 핸드폰이 없는 첫째 대신 내 휴대폰에 앱을 설치했다. 모바일로 제공된 코로나 자가 격리 안전수칙을 꼼꼼히 읽어보고, 첫째는 그대로 실행했다. 나는 식사를 쟁반에 차려 첫째 방에 넣어주고, 첫째는 화장실을 갈 때만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화장실을 사용한 뒤, 문손잡이, 변기, 세면대 등 소독액을 뿌렸다. 설거지도 따로, 수건 사용도 따로. 그제야 ‘자가 격리’가 실감 났다.
다음 날, 코로나 검사 결과는 가족 모두 ‘음성’이었다. 밀접접촉자인 첫째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은 모두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둘째 또한 동거가족이 자가 격리라 학교에 갈 수 없었다. 결국 남편을 제외한 나와 둘째는 자발적 자가 격리를 택했다.
나는 당장 인터넷으로 2주간 먹을 식량을 주문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에 신났고, 무슨 놀이를 할 것인지 잔뜩 계획을 세웠다.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집보다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집을 더 좋아하고, 집이 편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11살 아이가 2주간 혼자 방에서 자가 격리를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첫날은 혼자 밥을 먹으며 책도 볼 수 있다고 좋아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동생이 방해하지 않으니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을 보내고 나니 아이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엄마 나 마스크 쓰고 거실에 좀 나가면 안 돼?”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혼자 버텨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내 맘을 알았던 남편은 자신이 격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격리할게. 나는 출근해서 저녁에 오고, 화장실도 안방에 있으니까 내가 따로 씻고, 저녁도 해결하고, 와서 잠만 자고 나갈게”
드디어 자가 격리 해제일이 다가왔다. 자차이용 또는 도보로만 보건소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운전을 못하는 엄마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걸어서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야 했다. 2주 전에는 분명 반팔을 입었는데 어느새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가을 햇살은 따사로웠고, 두 다리로 걸으며 코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2주간 집에서만 있다가 오랜만에 밖을 나가 걸으니 왕복 6km의 거리는 무척 힘들었다. 특히 둘째는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어 “엄마 힘들어, 다 왔어?”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마음속에는 ‘마트나 편의점에도 못 들어가는데, 떼 부리면 어떡하지?’ 걱정됐다. 그러나 그 걱정도 잠시였다.
“우리 보물이는 할 수 있어”
“응, 엄마 다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잘 걸어가면 신비 금비 젤리 사줘”
그 와중에도 딜을 하는 둘째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떼를 부릴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왕복 2시간 30분을 잘 걸어준 둘째를 보며 흐뭇했다. 다음 날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지만, 2주간의 자가 격리는 나에게 고마운 시간이었다. 물론 삼시 세 끼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집 밥을 해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두 딸들이 붙어 있는 시간만큼 자매의 관계도 돈독해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놀이했다. 다툼 시간도 빨리 종용하지 않고 넉넉히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서였을까. 두 자매의 ‘깔깔깔’ 웃음소리는 집 안 가득 울려 퍼졌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가을볕처럼 따사로웠다. 온전히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