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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장감수성 Dec 20. 2024

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6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일기

  복숭아와 한라봉을 차별하면 인권침해일까?

  학생 선도부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다. 전북특별자치도, 경기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교육청에서 공동으로 발행한 학생인권 공동사례집의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그 이유는 초중등교육법 18조와 시행령 31조에 따라 학생 지도와 징계의 권한은 학교장이 가지고 있고, 이를 위임받을 수 있는 자는 교사에 국한한다고 보는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선도부다 교문에서 지각을 잡거나 복장 검사를 하거나 상벌점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상점이나 벌점을 부여할 수 없다. 또한 학생선도부가 다른 학생을 지도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100% 동의한다.

  지난 12월 전북교육인권센터에서 진행한 학교구성원 인권 보장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했다. 여러 교수들이 공동으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학생의 인권을 가장 많이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답변에 1위는 당연히(?)학생으로 나왔다. 이 부분도 모두가 100% 공감하고 동의할 것이라 확신한다. 학교에서는 매일 학생이 규칙을 어기고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생긴다. 첫 문단이 인권감수성을 말한다면 다음 문단은 현장감수성을 말한다. 학교 현장에는 둘 다 필요하다.


 내가 제기하는 근본 질문은 결국 이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학생이 규칙을 지킬 수 있게 지적하고 주의주고 지도하는 역할,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며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지도하는 역할은 누가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교사들은 이 역할을 부여받고 의무를 가지지만 실제 수행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성인이고, 특수목적대학을 졸업하여 정부가 임명하는 교육공무원. 한 번의 실수가 징계로 따라올 수 있고(심지어 경찰에서 무혐의가 나왔어도), 하나의 신고로 평생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하루하루 근무하지만 아무도 교사를 믿지 않는다. 이제 교사들이 말한다. 이럴거면 차라리 아무런 지도도 하지 않고, 아무런 민원도 받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똑같은 행동을 한 두 초등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복숭아도 수업 시간에 지우개를 다른 학생에게 던지고 한라봉도 그랬다고 하자. 그런데 담임교사는 복숭아를 불러 주의를 한마디 주고 맞은 학생에게 가서 사과하게 했다. 한라봉은 복도로 따로 나와서 5분 넘게 혼났고, 맞은 학생에게 사과했으며, 수업 마치고 교실에 남아 성찰하는 글쓰기를 해야 했다. 이 교사가 학생을 차별한다 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여 전담기구 회의를 할 때, 가해 행위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기 위한 기준이 5개가 있다. 행위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정도, 화해정도. 여기에 지속성이 왜 있을까? 딱 한 번 다른 학생 뺨을 때린 사안과 한 달 동안 매일 뺨을 때린 사안. 같을까 다를까? 같게 봐야 할까, 다르게 봐야 할까? 이걸 다르게 보는게 과연 차별이고 인권침해일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걸 같게 취급하는게 차별이고 인권침해일 것이다. 학생이 학생의 생활지도를 할 수 없다면 교실에 남은건 교사뿐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교사들은 이런 당연한 생활지도를 하면서도 자기겸열을 하고 있다. 이것도 누군가 문제삼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렇게도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데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이 두려움은 교사를 좀먹고 교실을 무너뜨리며 절대 다수 학생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 교실의 민낯이다.

  복숭아는 처음이고, 한라봉은 17번째였다. 누군가 문제를 삼으면 교사는 이걸 증명해내야만 한다.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누구도 믿어주지 않기에. 나도 모니터 위에 매달린 웹캠으로 수업시간 내내 교실 전체를 촬영한 적이 여러번 있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학부모와 상담도 진행했다. 히지만 공동사례집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에 교실에서 생활하는 모든 학생과 교사의 행동을 촬영하는 일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개인의 초상권과 행동자유권, 사생활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권고를 했다. 입증할 자신이 없다면 남는 길은 포기뿐이다. 하지만 교실 속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교사가 어디까지 지도하고 어디부터 포기했는지.

  복숭아와 한라봉을 지적하는 강도가 같다면 학생들은 오히려 불공정을 잠재적으로 학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보다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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